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국정농단 넘어 민주공화국에 대한 배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국정농단 넘어 민주공화국에 대한 배반

조송현 승인 2016.11.09 00:00 | 최종 수정 2016.12.19 00:00 의견 0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도하는 일본 방송의 한 장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도하는 일본 방송의 한 장면. 

온 나라가 일개 강남 아줌마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건에 분노를 넘어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야당은 최순실 씨 개인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저지른 정치권력의 비리의혹 사건이라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볼 때 이번 최순실 씨 비리 의혹 사건은 박 대통령의 묵인이나 비호가 없었다며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부르는 것이 보다 사실에 부합한 명칭이지 싶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의미를 곱씹어 보면 국정농단이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는 부족하다. 이것은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사인(私人)으로 하여금 공적 영역인 국정에 개입해 이익을 챙기도록 방치하거나 묵인 혹은 지시했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민주공화국 배반’  사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간명한 답은 우리나라의 정체(통치 체제)가 바로 민주공화국이라는 데 있다. 모든 국민에게 주권이 주어진 통치 체제가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바다. 그런데 공화국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을 핵심 원리로 한다. 다시 말하면 공화국은 사적 요소가 공적 영역인 정치를 좌우하지 않는 체제인 것이다. 이 같은 정치 이념은 민주주의의 선두주자인 고대 그리스의 공화국에서 비롯됐다. 공화주의의 어원인 ‘res publica’는 사적 이익의 추구보다 공적 이익을 중시하여 사회공동체에 참여하는 시민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자연히 공화국은 그러한 시민들이 참여해 만들고 운영하는 통치 체제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탄생한 근대 공화국도 이 같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분리라는 고대 공화국의 정신을 계승했다. 현대 미국, 영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민주국가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공화국의 이념을 지키고 있다.

법의 정신을 잘 설명한 책들. 법의 정신을 잘 설명한 책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공화국의 이념에 비추어 보자. 이번 사건의 대강은 사인(私人)인 최순실 씨가 국정을 주물러 이익을 챙겼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여기에 국가 최고 권력자인 박 대통령이 몰랐다면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건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묵인 또는 비호를 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공적 영역인 정치를 사적 영역과 구분하지 못하고 정치의 사유화를 방조 내지 조장한 것이다. 이는 공적 영역인 정치와 사적인 친분 관계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는 민주공화국의 핵심 원리와 구성원 간의 약속을 망각한 것이며,  따라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곧 박 대통령의 ‘민주공화국 배반’ 사건인 것이다. 민주공화국에서 왜 공적-사적 영역의 분리가 이토록 중요할까? 그것은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의 주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주공화국은 모든 국민에게 주권이 주어진 통치 체제이다. 주권자인 국민은 자신의 주권을 통치자에게 위임했다. 주권을 위임받은 통치자는 그 주권을 국가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공적인 영역에 사용해야 한다. 만약 여기에 사적인 영역이 개입한다면 국민의 주권이 왜곡되거나 무력화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았고, 이를 받들어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국민 누구의 주권도 위임받지 못한 최순실이라는 사인(私人)이 국정을 주무르는 것을 묵인 내지 방조했다. 이는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아 국민의 허락 없이 엉뚱한 사람에게 대여한 셈이다. 주권자인 국민을 배신한 것이자, 모든 국민에게 주권이 부여된 민주공화국에 대한 배반이다. 국민에게 석고대죄하고 물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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