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인간을 살아남게 한 능력이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다 ➀신장의 염분 재흡수

인간을 살아남게 한 능력이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다 ➀신장의 염분 재흡수

조송현 승인 2017.05.12 00:00 | 최종 수정 2022.07.20 10:45 의견 0

뉴기니 섬 원주민한테 활쏘기를 배우는 재레드 다이아몬드. 그는 1961년부터 이곳의 새를 관찰하며 진화생물학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신장 177cm에 58kg이었습니다. 남들이 ‘와라바시’(젓가락의 일본말)라고 놀릴 정도로 야위었습니다. 엄청난 컴플렉스였습니다. 살이 찐 친구들을 부러워했습니다. 대학 때도 65kg을 넘지 못했습니다. 살 찌는 게 소원이라는 얘기도 한 적도 있습니다.

30대에 취직하고 결혼하니 체중이 ‘보통사람’ 정도로 불었습니다. 40대 말까지 직장생활하면서 엄청 술을 마셔댔는데도 20년간 75kg을 넘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이 ‘비만’과 ‘성인병’을 걱정할 때 ‘나는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고 자랑했습니다. “자만하지 말라”는 친구들의 충고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50대 중반이 되고, 체중이 80kg을 넘기면서 예전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현대인의 강령과도 같은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답니다. ‘적게 먹고 운동을 많이 하라.’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짜게 먹지 말라.’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반발심도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 애먼 자신의 몸에 대해서 말입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이런 겁니다. ‘충분히 먹어주지 못해서 몸 네가 야위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런데 많이 먹어주는데 몸 네가 왜 불만이냐! 쓰고 남는 것은 버리면 될 게 아니냐?!’

뇌졸중의 원인이 되는 고혈압을 유발하는 소금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소금을 많이 섭취했을 경우 신체 대사에 필요한 적정 염분만 남기고 배출해버리면 될 텐데 왜 그러지 못하고 고혈압이 되도록 방치할까요? 당뇨를 일으키는 비만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김영사, 2016)은 이런 의문에 인류학적인 해답을 주었습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와 ‘문명의 붕괴’로 너무나 잘 알려진 진화생물학자이자 인류학자입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이라는 부제가 있는 이 책의 여섯 번째 주제인 ‘건강하게 삶의 질을 유지하며 오래 사는 법’에서 염분 섭취와 고혈압 간의 관련성과 비만과 당뇨 간의 관련성에 대해 인류학적 분석을 제시합니다.

우선, 이번 글에서는 염분 섭취와 고혈압 간의 관계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염분이 뇌졸중의 원인 중의 하나인 고혈압의 주된 위험인자라는 사실은 많은 연구에서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나 염분 섭취와 무관한 이유로 고혈압에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의사들은 염분민감성 고혈압과 염분비민감성 고혈압을 구분합니다.

그런데 염분민간성 고혈압도 염분 섭취만이 원인은 아닙니다. 똑같은 양의 염분을 섭취해도 상대적으로 고혈압에 걸릴 확률이 높은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특정 유전인자가 ‘신장에 의한 염분의 재흡수를 높여준다’는 게 밝혀졌다고 합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깁니다. 왜 우리의 유전자는 신장을 통해 염분을 재흡수 하도록 할까요? 염분이 축적되면 고혈압과 뇌졸중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아지는데 말입니다.

재레미 다이아몬드는 그 이유를 인류의 역사를 통해 추론합니다. 그는 1961년부터 호주 대륙 근처 뉴기니 섬을 드나들며 진화생물학을 연구해왔습니다. 뉴기니 사람들은 힘든 과정을 거쳐 소금을 얻는다고 합니다. 특정 식물 잎을 태운 재를 물에 넣고 희석시킨 후 가열해 수분을 증발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는 방식입니다.

뉴기니 사람들이 염분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미국인의 한 끼 식사에 포함된 염분량은 뉴기니 고원지대 사람들의 1년 염분 섭취량과 비슷하다고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뉴기니 사람들의 신장은 한 톨의 소금분자도 내버리지 않고 재흡수 하도록 진화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비단 뉴기니 사람들뿐이겠습니까? 고대부터 2, 3세기 전까지만 해도 소금은 바닷가를 제외한 전 세계 어디서나 귀한 생활필수품이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신장은 염분 재흡수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진화했을 것이고, 염분 재흡수 기능이 저하된 사람들은 도태되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염분 재흡수 능력 덕택에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식탁에서 언제나 원하는 만큼의 소금을 뿌려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햄버거 하나에도 옛날 뉴기니 사람들의 한 달 치 염분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염분 과다 섭취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신장의 염분 재흡수 기능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고혈압 위험을 높이는 데도 말입니다. 옛날에 우리를 살아남게 한 기능이 이젠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염분 재흡수 기능의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염분 재흡수 기능의 역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입니다. 이들은 미국에서 유독 염분민감성 고혈압의 발병 확률이 가장 높은 인구 집단입니다. 즉, 똑 같은 양의 염분을 섭취했는데도 백인이나 히스패닉 등 다른 집단에 비해 염분민감성 고혈압에 유독 잘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직 의학적으로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추정을 내놓았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쿤타 킨테처럼 약 300년 전 아프리카에서 끌려왔습니다. 이들은 노예사냥꾼에게 붙잡혀 땡볕 아래 해안지역까지 끌려갔습니다. 땀을 엄청 흘려 염분을 상실했고, 이로 인해 적잖은 흑인들이 죽었을 겁니다. 이것은 약과에 불과했습니다. 노예선 바닥에 갇힌 흑인들은 수주일 동안 무더위와 싸우며 땀을 무진장 흘려야 했을 것입니다.

항해하는 동안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은 이질과 전염성 질병이었습니다. 이질은 설사를 유발하고, 이는 염분의 상실로 이어집니다. 결국 염분을 보존하거나 재흡수하는 기능이 뛰어나지 못한 흑인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염분 보존력과 재흡수력이 뛰어난 신장을 지닌 노예만이 살아남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그처럼 뛰어난 염분 재흡수 기능을 가진 흑인들의 후손입니다. 당연히 그런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것입니다. 선조들을 살아남게 한 염분 재흡수 능력이 이제 자신들을 염분민감성 고혈압과 뇌졸중의 발병 빈도를 높이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모는 원인이 되고 만 것입니다.

<pinepines@injurytime.kr>

최초 등록 2017.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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