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김정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 3층에서 열린 만찬에서 건배를 한 후 박수를 치고 있다. 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손 맞잡고 군사분계선 넘나든 두 정상, 65년의 거대한 장벽 무너뜨려
대부분이 예상한대로, 바람대로 남-북 정상회담은 감동적으로 치렀다. “저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 65년의 거대한 장벽이 겨우 한 발짝에 무너졌다. 손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두 정상의 모습에 울컥, 눈시울이 붉어진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60평생에 비로소 대한국민인大韓民國人임에 자긍심을 느꼈다.
그러나 이제 ‘끝의 시작’일 뿐이다. 주역의 마지막 괘인 제64괘는 ‘화수미제火水未濟’(☲/☵)이다. 불(☲)이 위에 있고, 물(☵)이 아래에 있다. 불은 위로 올라가는 성질인데 위에 있고, 물은 내려가는 성질인데 아래에 있다. 그래서 불은 불대로 놀고, 물은 물대로 놀아서 물과 불이 서로 만나지 못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건너지 못해서 ‘미제未濟’가 되는 것이다.
이 화수미제 앞의 괘는 ‘수화기제水火旣濟’이다. 수화기제는 이미 다 건넌 것이고, 화수미제는 아직 건너지 못한 것이다. 아직 건너지 못하다가 건너는 것으로 끝을 맺어야 하는데, 다 건넌 것을 먼저 놓고 건너지 못한 것을 나중에 놓아서 주역을 마무리 지은 것은 세상만사가 끝이 없다는 이치를 나타낸 것이다.
사람도 사회도 세상도 언제나 미완성이다. 만약 완성이 있다면 세상은 종말일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계속 진화하고 계속 발전해도 늘 미완성이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시종始終’이라 하지 않고, ‘종시終始’라 한다. ‘종즉유시終則有始’이다. 곧 끝에 시작이 있는 것이다. 시종始終이라 하면, 봄이 ‘始’가 되고 겨울이 ‘終’이 되어 일 년이 봄에서 시작하여 겨울로 끝나 버린다. 그래서 봄으로 ‘始’로 하고 겨울로 ‘終’해서 ‘始終’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을 ‘終’하고 봄을 ‘始’해서 ‘終始’라 하는 것이다.¹⁾
성공적인 남-북 정상회담은 그 ‘끝의 시작’
종시終始에서 시始는 우리의 삶터 한반도에 영구 평화체제가 들어설 때일 것이다. 가히 후천後天시대, 해원解寃시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끝을 끝냄에도 갈 길이 멀다. 성공적인 남-북 정상회담은 그 ‘끝의 시작’에 불과하다.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으로도 끝이 끝나는 게 아니다. 중국이나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지지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설령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성공을 이행할 수 있는 미국 의회의 비준이 필요하다. 미국 의회의 승인은 유감스럽게도 아주 불투명하다.
한반도의 도도한 역사적 흐름에 역행하는 냉전수구세력의 준동이 개운치는 않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남북정상회담을 ‘김정은과 문정권이 합작한 남북 위장평화쇼’에 불과했다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씨부렁거렸다. 나경원 의원은 판문점 선언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막말을 예사롭게 하고 있다.
그러나 저런 ‘말’이 되지 못하는 ‘소리’의 입놀림은 하찮은 변수에 불과하다. ‘한국적 보수’, 곧 냉전수구세력의 마지막 몸부림, 발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얼마지 않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인 사람들일 뿐이다. 단, 그들이 지은 업業에 상응한 과보果報가 쭈그러진 얼굴에 새겨짐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것이다.
한반도의 비핵화, 나아가 영구 평화체제 정착의 걸림돌은 무엇일까? 필자가 판단하기에는 첫째가 역대 북한 정권에 대한 오해 내지는 악의적인 왜곡에 있다. 다음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개인적인 약점이다. 이는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 내용을 이행할 의회의 승인 문제와 직결된다.
평화체제 정착의 걸림돌 ... 북한 몰이해와 악의적 왜곡, 트럼프의 개인적 약점
병이 있으면 치료할 약도 있는 게 세상의 이치이다. 본 칼럼에서는 먼저 북한 정권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 <이코노미스트 The Economist>지의 잘못된 인식을 다룰 것이다. 다음으로 북한의 비핵화 노력이 어떻게 미국에 의해 짓밟혀졌는지를 구체적 실례를 제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개인의 약점과 이를 극복하고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과 그 이행을 담보할 수단을 국내외 전문가의 분석을 참고하여 찾아볼 것이다.
2018년 4월 21일~27일자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구상의 가장 위험한 토크 쇼(talk show)'란 제하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다뤘다. 우선 그 기사(요약)를 보자.
갑자기, 모두가 은둔 왕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4월 17일 <워싱턴 포스트>는 CIA 국장 마이크 폼페이오가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만났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아베 일본 수상과의 회담에서 그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나아가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은 6월초가 될 것임을 암시했다.
완전히 헛다리 짚은 <이코노미스트>의 남북정상회담 전망
한편 트럼프는,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낼 협의를 하는 것에 대해 축복한다고도 말했다. 4월 18일 한국의 고위 당국자가, 비핵화에 관한 공동성명과 함께 영구 평화협정과 북한에 대한 안전 보장을 남-북 정상회담의 협상 테이블에 올릴 것임을 알려 주었다.
갑작스럽게, 대부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두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같다. 게다가 진정한 토론의 가능성도 높다. ‘전쟁의 끝’으로 대충 번역될 수 있는 종전終戰이란 용어가 남한의 최대 검색 엔진 네이버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SNS에서는 문재인이 ‘역대 최상의 대통령’이라는 찬사로 봇물이 터진 듯했다. 철도나 건설회사 등 ‘통일 관련주關聯株’의 주가株價도 치솟아 올랐다. 한편 노인층 보수파들은 (남-북 정상회담 등은) 공산주의자들에게 나라를 팔아넘기는 것이라고 하며 서울 지하철역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유감스럽지만, 두 정상회담은 각기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실망으로 끝날 것 같다. 남-북한은 협상에서 인권과 같은 어려운 주제는 피할 것이다. 게다가 무역과 투자는 고사하고, 국경을 넘는 관광을 재개하는 것도 북한에 내려진 두터운 국제 제재를 고려하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전문가들은 정상회담에서 미래의 정례 회담에 합의 하는 것과 같은, 좀 더 단순한 목표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한다.
뒤이은 북-미 정상회담은 거의 정반대의 결과가 일어날 것 같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 모두가 비핵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양자 모두 비핵화에 대한 기대도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다가오는 회담을 완전히 다른 렌즈를 통해 보고 있다. 트럼프는 더 센 경제제재와 군사 위협의 합작으로 김정은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냈다고 믿는 듯하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무기 철폐 계획안을 제출해야 한다고 암시하고 있다. 그 동안에는 선제적 군사적 조처 가능성을 포함하여 북한에 대한 ‘최대한 압박’은 늦춰지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해제하기 시작한 다음이라야 뭐든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십중팔구 다른 것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북한은 과거에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논의할 때마다, 북한의 핵무기 감축은 남한에서 미군 철수와 미국이 남한과 일본에 제공하고 있는 ‘핵우산’의 제거에 달렸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김정은은 의심할 바 없이 경제제재 완화를 바란다. 그리고 ‘평화를 성취하기 위한, 단계적이고 (북-미 양국이)동시에 진행하는 조처’라는 길게 이어지는 과정 속에 미국을 가둬놓고 싶어 한다.
김정은은 트럼프가 자신과 직접 대화를 하려고 하는 이유를 그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 완성에 임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미국이 인정하게 되는 셈이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조나단 폴락은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는 생각은 ‘마법적 사고magical thinking'²⁾로 간주했다.
그렇다고 김정은이 정상회담에 빈손으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폼페오가 생각할 정도로 폼페오에게 충분한 선물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김정은이 큰 양보를 했을 것인데, 이는 북한의 독재자에게 아주 알맞은, 질질 끄는 협상 속으로 트럼프를 유혹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그 선물은 사정거리가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와 미사일 실험에 대한 일시중단일 것 같다. 김정은은 경제제재의 해제와 평화조약을 위한 절차 밟기에 대한 대가로 이 무기들을 배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제안을 할 수도 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미국을 위협하는 북한 미사일을 제거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고 자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남한과 일본과의 동맹 관계를 잠재적으로 약화시킨다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북한과 그 보호자 중국은 미국과 동아시아 지역의 동맹국들(남한과 일본)의 사이가 벌어지기를 오랫동안 바라고 있었다.
북의 '핵경제' 전략적 전환에 대한 이해도 없는 <이코노미스트> 등 서방 시각
트럼프는 이런 황당한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강경파인 폼페오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조언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트럼프는 국무장관 지명자 폼페오를 좋아한다. 그 이유는 폼페오가 능란하게 보스의 기분과 천성에 영합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골치 아픈 디테일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특성이 있다.
버락 오바마의 고문이었던 개리 사모어는 정상회담에서 아무것도 얻는 게 없더라도 전쟁을 준비하는 것보다는 대화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폴락과 같은 의견으로, 정상회담에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 또 다른 오바마 행정부의 관리는 후회스러운 듯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 씨 가족(김일성, 김정일)과 대화하는 것은 타코 벨(Taco Bell)³⁾에 가는 것과 같다. 새로운 뭔가를 찾으러 가는데, 항상 같은 것만 있다.⁴⁾
자, 어떤가? <이코노미스트>의 시각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우선 남-북 정상회담에서 대수로운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아주 틀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인권 문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와 영구 평화체제 확립이라는 큰 틀을 짜는 기둥에 비하면 곁가지일 뿐이다.
다음으로 북한은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의 안전 보장을 위해 북-미 수교가 이뤄진다면, 주한미군도 용인하겠다고 공언했다. 하물며 핵우산 제거 같은 주장은 있을 법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핵·경제 병진 정책’을 공식 종료하고, 북한의 핵심 전략 축을 ‘핵’에서 ‘경제’로 바꾼, 중요한 전략적 전환에 대한 이해도 전무하다.
북-미 협상을 북한이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는 ‘왜곡된 진실’
더 상세한 판단은 독자제현의 몫이고, 필자는 이 모든 잘못된 인식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하는 문제에 주의를 집중한다. 결론으로 얻은 사실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둘러싼 북-미 협상에서 북한이 협상조건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는 ‘왜곡된 진실’이다.
미국과 대한민국의 보수 언론, 그리고 수구냉전세력은 협상을 밥 먹듯 파기하고, 협상을 핵무기를 개발할 시간을 버는 수단으로 여긴다며 북한을 ‘악마화’했다. 진단을 잘못하면 옳은 처방전이 나올 수 없다. 어차피 비핵화 문제 해결의 당사자는 미국과 북한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비핵화에 있어 과거의 북-미 협상 과정과 그 협상을 결렬시킨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 명확히 논구할 필요가 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북한 핵문제에 대한 이해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확신하다. 따라서 ‘중편’에서는 그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1)김석진, 『대산 주역강의2』(한길사, 2005), 603~604쪽. 2)마법적 사고란, 하나의 사건이 인과관계가 없이 다른 사건의 결과를 발생시킨다는 비현실적인 사고를 말한다. 출근하려 자동차 시동을 걸었는데 잘 안 걸린다. 그러므로 오늘은 직장일이 꼬이기만 할 것이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사고이다. 3)타코 벨, 미국에 본거지를 둔 레스토랑 체인점. 4)「The world's most dangerous talk show」, 『The Economist』, 2018년 4월21-27일, 2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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