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5)화개골은 역시 차의 본고장이다
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5)화개골은 역시 차의 본고장이다
  • 조해훈 조해훈
  • 승인 2018.07.02 14:10
  • 업데이트 2018.07.0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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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골 삼신마을 도로가에 있는 흔적문화갤러리 전시공간에서 김봉환(왼쪽) 사장님으로부터 전시된 흑차사발 설명을 듣는 필자.​
​화개골 삼신마을 도로가에 있는 흔적문화갤러리 전시공간에서 김봉환(왼쪽) 사장님으로부터 전시된 흑차사발 설명을 듣는 필자.​

필자가 사는 이곳 화개골에 며칠 째 장맛비가 내리고 있다. 속이 편하지 않고 울렁거려 삼신마을 도로가에 있는 흔적문화갤러리에 가 커피를 한 잔 마셨다. 30여 년간 민속미술품을 취급하고 있는 김봉환(62) 사장님으로부터 갤러리에 전시된 일본 차사발과 말차 사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사발 전체가 검은 색으로 안쪽에 붉게 흩뿌림 무늬가 있는 차사발을 만지니, 예전에 보았던 중국 차사발이 생각났다. 필자가 30대 후반 무렵으로 국제신문사 문화부 차장으로 일을 할 때였다. 문화부 대선배님으로 문화 방면에 다양한 식견을 가지고 계셨던 배승원 논설위원께서 부산을 중심으로 한 차인들과 함께 ‘한국차회’라는 단체를 만드셨다. 필자가 일찍부터 차를 마시며, 차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사실을 알고 계셨던 선배님께서 나를 그 모임의 총무를 맡기셨다.

당시 차회를 할 때마다 회원들이 소장하고 있는 차사발을 한 점씩 가지고 오도록 해 회원들끼리 반짝 전시회를 가졌다. 그 무렵 점당 수백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귀하디귀한 차사발을 제법 많이 보았다. 그중에서도 역사가 아주 오래된 중국산 흑차사발이 인상적이어서 지금도 어쩌다 그 작품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오늘 흔적문화갤러리에서 그 흑차사발을 연상시키는 차사발을 보고 만졌던 것이다.

갤러리에서 나와 밥을 먹기 위해 화개면사무소 옆에 있는 ‘장터국밥’ 식당에 가 돼지머리국밥을 시켰다. 국밥을 다 먹을 즈음 식당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필자가 목압마을에 살고 집 뒤쪽 산에 손바닥만 한 차밭을 경작하며 차를 만든다고 소개를 하였다. 국밥을 다 먹자 사장님은 “올해 만든 발효차”라며 우려 주셨다. 그는 화개골 차인들의 모임인 녹산회 회원이며, 하동야생차축제 때 품평회 심사위원도 역임했으며, 자신이 만든 차도 우수차로 선정되기도 하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다법과 좋은 차에 대한 개인적 의견도 제시하였다. 발효차를 다 마시자 자신이 만든 덖음차라며 또 우려 주셨다,

어제 오후에는 모암마을에 살고 있는 김필곤 시인 댁에 가서 차를 한 잔 하였다. 김 시인은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차 관련 책들과 원고를 보여주면서 차인 및 차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다. 지난 겨울의 혹독한 추위로 차나무에 냉해가 심해 올해는 차를 전혀 만들지 못하였다고 하셨다. 필자의 차밭은 다행히 냉해를 입지 않았으나 우전을 딸 무렵 바쁜 일이 있어 찻잎을 많이 따지 못했다고 설명해 드렸다.

​화개골 삼신마을 도로가에 있는 흔적문화갤러리 전시공간에서 김봉환(왼쪽) 사장님으로부터 전시된 흑차사발 설명을 듣는 필자.​
​녹차 잎을 덖는 필자.​

 

그는 금당 최규옹 선생이 생전에 출판한 자그마한 차 관련 책도 보여주었다. 필자가 신문사에 있을 때 문화부 대선배님이신 김규태 시인과 종종 송도에 있는 금당 선생 댁을 방문하여 마루에 앉아 차를 얻어 마시며 선생의 개인적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다. 책을 만지며 보니 “차를 많이 마시라”고 강조하시던 금당 선생이 떠올랐다. 김필곤 시인은 『좋은 시조』 여름호에 「녹원 이상범의 차시조」 제목으로 자신의 글이 실린 책을 주셨다.

화개골은 어느 집을 가든, 누구를 만나든 차 관련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차를 얻어 마실 수 있다. 화개차에 대한 민요나 전설, 설화 등도 많다.

『삼국사기』에 대렴공이 중국에서 차씨를 가져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화개골 쌍계사 인근에 우리나라 차 시배지라는 차밭과 기념비가 있다. 고려 때 이규보 선생이 화개 차에 대해 쓴 시가 있을 뿐 아니라, 조선시대에는 초의선사가 이 골짝 칠불사에서 『다신전』을 등초하기도 할 만큼 화개골은 차를 빼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 특이한 지역이다. 1,200년 동안 이어져왔다는 화개 녹차가 지난해 11월에는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서산대사 역시 화개골에서 20년 가까이 수행생활을 하는 동안 당나라 조주선사의 끽다거(喫茶去) 수행법을 실천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승병장을 맡았던 서산대사의 시 가운데 「행주 선자에게 보이다」(示行珠禪子)라는 시 3수 중 세 번째 시를 보며 글을 마치겠다.

‘흰 구름은 그대 벗이요/밝은 달은 그대 삶이지./만학천봉 속에서/만나는 사람마다 차 권하네.’

즉 그는 화개골의 암자에서 차를 마시며, 조주선사의 선다일미(禪茶一味) 수행법을 따라 생활하는 모습을 읊었다.

이처럼 화개골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차의 본고장답게 온통 차 이야기가 가득한 골짜기이다. 필자가 이 골짝으로 들어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지인들과 나눠 먹을 차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시인ㆍ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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