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 농단'을 생각한다
'양승태 사법 농단'을 생각한다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8.07.02 14:50
  • 업데이트 2018.07.0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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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도 간첩단’ 조작 사건의 희생자 박동운(73) 씨의 기막힌 사연

“사람에게는 세 가지 불행이 있으니, 소년 시절에 높은 과거科擧에 오르는 것이 첫째 불행이고, 부형父兄의 권세에 힘입어서 좋은 벼슬을 하는 것이 둘째 불행이며, 뛰어난 재주가 있고 문장에 능한 것이 셋째 불행이다人有三不幸 少年登高科一不幸 席父兄之勢爲美官二不幸 有高才能文章三不幸.”¹⁾

“국가가 벌인 범죄를 마지막으로 완성한 곳이 다름 아닌 대법원입니다.”

1981년 ‘진도 간첩단’ 조작 사건의 희생자 박동운(73) 씨는 전남 진도에서 홀로 울분을 삭이고 있었다. 농협에 다니던 그는, 아내가 셋째를 임신 중이던 1981년 봄 진도까지 찾아온 안기부 요원에 의해 서울 ‘남산’으로 끌려갔다. “북한 공작원인 아버지의 지령을 받아 간첩 활동을 한 사실을 자백하라”고 했다.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는 그는 자백을 거부하자, 고문은 60일간 계속됐다. 함께 잡혀온 어머니까지 “알몸으로 ‘통닭’처럼 매달아 고문하겠다.”는 위협에 그는 무너졌다.

18년 옥살이를 하고 쉰세 살이 되던 1988년 특별 사면으로 석방됐다. 달라진 세상에서 박 씨는 법원에 재심 절차를 거쳐 무죄 판결을 확정 받았다.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과 2심에서 법원은 ‘국가가 17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1심이 끝나고 배상금의 절반 남짓인 8억여 원을 가지급금으로 받았다. 빚을 갑고 진도에 여생을 보낼 집을 지었다.

2014년 12월 24일, 대법원은 과거엔 문제 삼지 않았던 ‘소멸시효’를 들어 박 씨가 배상금 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다. “조작간첩 사건에서도 ‘형사보상 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 안에 손해배상 소송을 내야 한다”는, 전에는 없었던 비상식적인 기준을 근거로 제시했다. 세 아이의 아빠가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18년 옥살이 한 배상이 졸지에 ‘부당이득금’이 됐다. 곧 법원은 박 씨가 받은 ‘부당이득금’에 이자까지 더해 10억여 원을 토해 내라고 판결했다. 고문만큼 잔인한 국가 폭력에 박 씨는 또 무너졌다.

최근 ‘양승태 사법 농단’ 문건이 공개되면서 박 씨는 비로소 자신에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됐다. 2015년 7월 법원행정처가 만든 문건에서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해왔음”이라고 적혀 있다. 그 노력 중 하나로 ‘과거사정리위원회 사건’에서 “부당하거나 지나친 국가배상을 제한하고 그 요건을 정립”한 것을 강조했다. 18년 무고한 옥살이를 한 박 씨 같은 이에게 배상금 한 푼도 주지 말라는 판결의 다른 표현이다.²⁾

지난 6월 5일 대법원은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을 보여주는 문건 98건을 공개했다. 판사 사찰, 청와대와의 재판 거래 의혹, 심지어는 재판 개입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까지, 공개된 문건 내용은 충격적이다.

'양승태 사법 농단'과 대법원장의 '무기' 상고법원

상고법원은 양승태 대법원의 최대 역점사업이었다. 대법원은 대법관 1명이 1년에 3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과부하 상태다. 상고법원은 대법원으로 오는 소송 중 비교적 사안이 단순하고 사회적 의미가 크지 않은 사건을 가져가 처리하는 법원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과부하를 해소할 대안이 상고법원뿐인 것은 아니다. 판사를 늘려 1심인 사실심을 충실하게 해서 항소를 줄인다든지, 상고허가제를 도입해 대법원으로 가는 사건 수를 줄인다든지, 13명인 대법관 수를 크게 늘린다든지, 여러 대안이 있다.

하지만 양승태 대법원은 상고법원 외의 모든 대안을 기각했다. 특히 대법관을 증원하는 대안은 “진보인사의 최고법원 진출 교두보”가 될 것이며, 이것이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복심”이라고 했다.

왜 상고법원만 원했을까? 헌법으로 독립성이 보장된 법관을 대법원장이 컨트롤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선호도 낮은 지역으로 보내는 징계성 인사발령도 어렵다. 훗날 대법관이 되는 박시환 판사는 초임 시절인 1985년 인천지법에서 전두환 정권의 지침에 반하는 판결을 냈다가 춘천지법 영월지원으로 보복성 발령이 났다. 군사정권 시절인데도 대법원장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는 큰 논란으로 비화했다. 이후 ‘박시환 모델’은 사실상 봉쇄됐다. 그러니 승진 인사는 대법원장에게 사실상 유일하게 남은 법관 통제 도구다. 상고법원은 ‘승진’이라는 무기를 대법원장의 손에 쥐어준다.

판사 사회에는 ‘기획·공보법관-법원행정처 심의관-고등법원 부장판사-법원행정처 차장-대법관’으로 이어지는 출세 코스의 ‘정답’이 있다. 승진과 출세를 원하는 판사라면, 인사권자의 의중을 살필 이유가 분명하다.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은 대법원장의 의중이 실리는 분명한 경로다. 법원행정처는 출세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코스가 된다. 판사를 평가할 때 재판 경력보다 사법행정 경력을 더 쳐주는 묘한 문화가 정착됐다.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고, 사법행정처가 손발이 되는 사법부 통제 구조는 이렇게 완성된다.

이렇게 사법부 통제 구조가 완성된다 해도, 대법원장의 권력에 큰 위협이 남아 있다. ‘줄포판’ 또는 ‘승포판’이다. 출세와 승진을 포기한 판사이다. 출세를 포기한 판사는 대법원장의 유일한 무기인 승진에 구애받지 않는다. 법원의 수직적 통제에 맞서 독립성을 주장할 위험이 높아진다. ‘출포판’이라고 하면 유유자적하고 위협적이지 않다는 인상을 주지만, 법원 특유의 구조에서는 그것이야말로 최대 위험요소이다.³⁾

‘양승태 대법원’의 권력욕에 의해, 한국 사회는 법원이라고 하는 제도적·사회적 신뢰 시스템의 마지노선마저 붕괴 위험을 맞고 있다. 상고법원 신설을 위해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하고, 법원 내부를 통제하기 위해 ‘판사 사찰’을 자행한 것이다. 이 와중에 과거사 피해자들은 배상은커녕 빚더미에 올라야 했고, 케이티엑스(KTX) 해고 승무원 중에는 결국 목숨을 잃는 사람이 나왔다.

사법 신뢰가 무너지는 이 암울한 상황에서 변호사와 법학교수 등 법률가들이 지난달 5일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비판하며 대법원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법률가들은 양 전 대법원장 등 관련자 전원을 구속·수사해 엄중히 처벌하고 범국민적 참여와 시민사회 주도로 사법부를 개혁하라고 요구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피해자 단체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고소·고발했다.

'양승태 처벌, 법원 개혁' 외치는 참석자들(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28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2018.6.28 ryousanta@yna.co.kr
'양승태 처벌, 법원 개혁' 외치는 참석자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8.6.28 [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ryousanta@yna.co.kr

그러나 대법원은 대법관 일동 명의로 ‘대법원 판결에 어떤 의혹도 있을 수 없다는 데 견해가 일치됐다’며 지난 1월에 이어 또다시 무고함을 강조하는 입장문을 냈다. 국민적인 불신을 아랑곳 않는 오만한 태도이다. 더욱이 ‘사법 농단’의 핵심으로 지목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이 사용했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지난해 ‘디가우징’(degaussing. 강력한 자성을 통한 파일 영구 삭제)을 통해 복구 불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지난 26일 확인됐다. 명백한 증거인멸 아니고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제2의 양승태 대법원’ 사법 농단 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 아니 당장 발들의 불인 사법 신뢰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법률 문외한이나 건전한 상식인으로서 세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검찰 포토라인으로!”

첫째로, ‘떠드는 입’을 응원해야 한다. 역대 대법원은 이견 표출을 금기시했다. 특히 재판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는 우려가 컸다. 이제는 법원 내에서 ‘떠드는 입’이 늘어야만 독립성과 책임성의 딜레마를 풀 수 있다는 반론이 유력해졌다. 법원 내 연구회를 활성화하고, 연구회들이 법원 밖 공론장에서 치열하게 토론하도록 권장하자는 제안도 그래서 나온다. 이런 상호 관여 체제가 책임성뿐 아니라 독립성도 더 잘 보장한다고 이론가들은 본다.⁴⁾ 2004년 5월 21일 서울남부지법 이정렬 판사(현 변호사)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법 역사상 최초의 양심적 병영거부 무죄판결이었다. 이정렬 변호사는 판사 재직 시 전형적인 ‘떠드는 입’이었다는 사실은 무척 시사적이다.

둘째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이다. 법무부의 설치 방안에 따르면, 공수처의 수사 대상자는 대법원장·대법관·판사, 헌재소장·재판관 등 법관들을 포함한다. 자신들을 표적으로 삼는 수사기관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고위 법관들의 사법권 남용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긴급하고 실질적인 대책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검찰 포토라인에 세우는 일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말처럼 ‘재판은 공정해야 할 뿐 아니라 공정해 보여야 한다는 덕목에 비춰 의혹만으로도 국민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신뢰 시스템의 마지막 보루인 법원을 불신의 진원지로 만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책임은 지엄하다. 모든 재판 결과에 국민들이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게 만들었다. 이런 현실은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독실한 법관들에게는 날벼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나리에는 분명 이런 참한 법관들이 양승태류의 법관보다 훨씬 많은데도 말이다.

‘소년 시절에 높은 과거에 오르는 것이 첫째 불행’이라고 한 이천伊川 선생의 말은, 지극히 만족한 현실에 안주해 수양과 학문을 게을리 함을 경계한 것이다. 유학의 인간관이 으레 그렇듯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를 개인의 수신修身에 기댔다. 그러나 현대 권력이론은 어떤 권력자의 선의善意도 믿지 않는다. 오직 견제와 균형을 통해 책임을 강제 받는 권력만 믿는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적 경험에서 검증된 바이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 의혹’은 단지 의혹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욱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검찰 포토라인에 세워야 한다. 평범한 너와 내가 법원을 믿기 위해서, '대법원장'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그를 포토라인에 세워야 한다. 사법부의 수장까지 지낸 분이 떳떳하다면, 겨자씨만한 자존심이 있다면, 스스로 나와서 재판을 통해 저간의 의혹을 석명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만약에 기어이 꽁무니를 빼는 졸장부 행세를 한다면, 우리는 다시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어야 한다. 다음과 같이 외치면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검찰 포토라인으로!”

※1)『小學』, 제5편 「가언嘉言」 2)정환봉, 「“37년전엔 간첩조작 피해자, 이젠 재판거래 피해자 됐다」, 『한겨레신문』, 2018년 6월 15일. 3)천관율, 「대법원 문 앞에서 삼권분립이 멈췄다」, 『시사IN』, 2018년 6월 19일. 4)천관율, 「양승태 대법원이 남긴 까다로운 숙제」, 『시사IN』, 2018년 7월 3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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