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약이 아니다
세월은 약이 아니다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8.07.28 19:57
  • 업데이트 2018.07.28 20: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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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선사 '십이시진가' 해설 영상. [유튜브/Anzilin.com]
조주선사 '십이시진가' 해설 영상. [유튜브/Anzilin.com]

어느 날 유학자 한 사람이 찾아와 조주 선사에게 말했다. “부처님께선 중생들의 소원을 물리치시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그러한지요?” “그렇다네.” 선사의 대답에 유학자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제게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가?” “저는 스님이 늘 들고 다니시는 그 주장자를 갖고 싶습니다.” 이에 선사가 점잖게 타이르듯 말했다. “허어, 군자는 남이 좋아하는 것을 탐하지 않는 것일세.”

이에 질세라 유학자는, “스님, 저는 군자가 아닙니다.” 이 말에 선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도 부처가 아닐세.”1)

“어이, 아우. 잘 만났네. 지금 바쁜가?” “아닙니다. 산책 나온 참입니다.” “그럼 됐네. 나랑 이야기 좀 함세.”

해가 뉘엿거릴 무렵, 내가 동네를 나서던 걸음에 동네로 들어서는 점돌 씨와 마주쳤다. 그는 읍내 장에 마을갔다 막 버스에서 내렸고, 나는 운동 겸 산책에 나선 길이었다. 맞춤한 앉을 자리를 찾았다. 마땅한 곳이 없다. 점돌 씨는 오던 길을 되짚어 신작로에 붙은 버스정류소 벤치로 갔다. 진득이 앉아서 이야기해야 할 정도로 단단히 작심한 사연이 있는 듯했다.

점돌 씨는 내 큰형의 10년 선배다. 그 두 분은 형, 아우하며 동네에서 유별나게 잘 지냈다. 큰형은 나와 띠동갑이다. 곧 12살이 많다. 그러니까 점돌 씨는 나보다 22살이 많은 셈이다. 아버지뻘이다. 그러나 형식논리상 형님이다. 내 형님의 형님이니, 나에게도 형님이 아니겠는가.

“안 뜸에 대성이 안 있나? 농협에서 부장을 했다는 놈이 영 싸가지가 없어. 아까 읍에서 만났는데, 내 보고 형님이라 안 하나. 배운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제 아버지를 형님이라고 했는데, 제가 그럴 수 있어. 아우, 어찌 생각하노?” 상당히 격앙돼 있었다.

복잡하다. 점돌 씨는 83세이다. 농협 부장 출신 대성 씨는 64세이다. 대성의 부친은 92세이다. ‘점돌-대성’ 나이차는 19년이고, ‘점돌-대성 아버지’ 나이차는 9년이다. 점돌 씨는 이 동네에서 태어나서 동네를 벗어난 적이 없다. 오로지 흙만 파며 살아왔다. 바른 사람이라기보다는 순박한 사람이다. 바르려면 어떤 기준이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먹물과 수양이 필요하다. 착하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 순박한 사람이 아닐까? ‘착함’ 외에는 자기를 지킬 무기가 없는 사람들 말이다. 하여 이런 사람들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법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점돌 씨가 딱 그런 사람이다.

“미자 아빠하고 가까이 지내려고 ‘형님’이라 한 거지, 별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나도 형님이라 한 적이 있었다. 내 3년 선배인 대성 씨가 형님이라 불렀다고 분개하는 판이다. 어, 뜨거워라 싶어 굳이 ‘미자 아빠’라고 호칭했다. 점돌 씨의 큰딸 이름이 ‘미자’이다. 사태를 눙치려 한 내 말은 먹히지 않았다. 대성 씨를 씹으려고 아예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내가 제 깐 놈하고 잘 지내? 천만의 말씀. 제가 농협에서 끗발 부릴 때가 언젠데. 내가 아쉬워 찾아갔을 때 본 체도 안 하고, 아예 자리를 피해버려 놓고는 이제사 잘 지내자고? 택도 없는 소리다. 위아래도 모르는 후레자식 같은 놈.”

맺힌 게 많았을 것이다. 사람 사는 곳에는 어디든 돈이 권력이다. 그러므로 시골에서는 농협이 권력기관이다. 농투성이들이 거래할 수밖에 없는 금융기관이니까. 몇 해 전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겨 급전이 필요했다는 소문은 들었다. 그 소문과 지금 미자 아빠의 이야기를 보태 보면, 대성 씨에 대한 점돌 씨의 분개란 그림이 완성된다. ‘형님’이란 호칭 문제는 구실에 불과하다.

마음의 상처는 외과수술로 치유할 수 없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은 상처를 준 사람에게만 통하는 말이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세월과 함께 쓰린 기억이 더 단단해질 수도 있는 법이다.

점돌 씨는 내가 유일한 청자聽者인데도, 내가 듣는지 마는지 상관 않고 한참이나 대성 씨를 성토했다. 나도 찔리는 바가 없는 게 아니어서 마냥 들어주고만 있었다. 고인이 된 내 큰형과 형, 아우하며 잘 지냈다고 나도 더러 형님이라 호칭했기 때문이다.

그 새에 해가 꼴까닥했다. 점돌 씨는 분을 풀 만큼 풀었는지 일어서자고 했다. 나도 매듭은 지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자 아빠, 제도 형님이라 불러서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무슨 소리! 자네는 형님이라 불러도 되네. 자네 큰형님과 내가 형, 아우하며 잘 지냈는데 아우의 아우니, 아우 아닌가. 경우가 다르지.”

경우가 다른가? 다를 수 있단다. 내 3년 선배는 끗발을 부리고, 외면을 했다. 그래서 19년 연차가 나는 사람에게 형님이라 부르면 ‘후레자식’이 된다. 나는 22년이나 차이가 나도 형님 잘 둔 덕분에, 그냥 형님이라 해도 된다. 아우의 아우니까.

※ 1)홍여운 엮음, 『강을 건넜으면 나룻배는 버리게나』(고려문화사, 1996), 176쪽.

<칼럼니스트·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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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 2018-07-29 11:32:46
얘기 들어보니 세월이 약이 아니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