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無限)에의 반항
무한(無限)에의 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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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06 18:52
  • 업데이트 2018.08.06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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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무한(無限)에의 반항 /조송현

국제신문 2018-07-16   

고대 그리스 철학자 제논은 우리가 보는 현실세계의 현상이 가상이라고 논증했는데, 우화형식의 ‘아킬레스와 거북이’는 그의 대표적인 역설이다. 거북이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아킬레스에게 100미터 달리기 경주를 제안한다. 단, 자기가 10미터 앞에서 출발한다는 조건으로. 상식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아킬레스의 승리는 뻔해 보인다. 하지만 제논은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결코 따라잡지 못한다고 논증한다.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잡으려면 10미터를 가야하는데, 그동안 거북이는 몇 센티미터를 기어간다. 아킬레스가 이를 따라잡는 동안 거북이는 좀 더 앞으로 움직인다. 이런 식은 무한히 계속될 것이며, 따라서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잡으려면 그런 일을 무한한 횟수로 반복해야 한다. 곧 무한한 양의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는 결코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잡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현실과 논증의 괴리가 발생한다. 그래서 역설이다. 논증이 완벽하다면 결국 현실이 잘못된 것(가상)일 수밖에 없다. 언뜻 보면 제논의 의도는 성공한 듯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 논증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오류의 핵심은 바로 무한이란 개념에 있다. 제논은 ‘어떤 것을 무한한 수로 모으면 무한한 것이 된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이 명제는 참이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10미터짜리 줄자를 무한한 조각으로 잘랐다가 다시 이어붙이면 그 줄자의 길이는 얼마일까? 무한대가 아니라 그냥 10미터다. 유한한 크기를 무한한 횟수로 더한다고 해서 꼭 무한한 크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잡는 데 필요한 ‘무한한 횟수의 과정은 무한한 양의 시간’이라는 인식이 잘못된 것이다. 


현대물리학은 제논의 논증을 단칼에 베어버린다. 논증의 전제인 ‘무한히 작은 거리’와 ‘무한히 작은 시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공간과 시간의 최소단위, 이른바 플랑크 길이와 플랑크 시간이 존재한다. 이보다 작은 공간과 시간은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양자역학과 함께 현대물리학의 양대 기둥인 상대성이론(일반상대성이론)은 강력하면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중력이론인 일반상대성 이론도 옥에 티가 있다. 무한소인 특이점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블랙홀이다. 아인슈타인의 중력장방정식에서 블랙홀이 탄생했는데, 그 블랙홀은 중력에 의해 ‘무한히’ 수축하고 마침내 한 점(특이점)으로 붕괴한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거대한 블랙홀이 어떻게 부피가 무한히 작은 한 점이 될 수 있는가. 그러나 어쩌랴. 그 유명한 방정식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이를 치료하는 게 바로 양자역학이다. 양자역학은 물체가 무한히 수축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플랑크 크기쯤에서는 블랙홀도 불확정성 원리 등 양자역학의 지배를 받는다. 그 유명한 스티븐 호킹에 의해 블랙홀은 새롭게 태어났다. 완전히 검은 게 아니라 빛을 방출하는 블랙홀로. 존재의 근원인 우주도 무한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새롭게 그려진다. 흔히 우주는 빅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엄청난 온도와 밀도를 가진 특이점이 폭발한 것이 빅뱅이다. 하지만 블랙홀의 특이점과 빅뱅의 특이점도 물리적으로 수용하기 힘든 개념이다. 양자역학은 우주가 무한소의 특이점으로 수축하기 전에 반발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래서 빅뱅(big bang)이 아니라 빅바운스(big bounce)가 일어났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물리학자들은 이제 지난 100년간의 숙제였던 양자역학과 중력이론(일반상대성이론)을 융합하는 양자중력이론(루프양자중력이론)의 싹을 틔우고 있다. 이에 따르면 공간은 물질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물질 그 자체이며 작은 알갱이들로 구성되어 있고, 시간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무한’은 신비와 절대성의 다른 이름이자 무지의 피난처이기도 했다. 과학적 사고의 본질은 이 같은 절대성에 비판적이고 반항적인 태도이다. 옛날 아르키메데스는 ‘모래알 계산’을 통해 무한의 절대성에 과감하게 도전했다. 최근 벌어지는 무한에의 반항과 도전은 새로운 과학혁명의 촉매가 될 것이라는 예감을 갖게 한다.

가마솥 같은 여름날 양자중력이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를 읽으면서 가져본 생각이다. 

<웹진 인저리타임 대표·동아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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