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고서로 풀어내는 사람 이야기 (15)허난설헌
조해훈 시인의 고서로 풀어내는 사람 이야기 (15)허난설헌
  • 조해훈 조해훈
  • 승인 2018.09.06 23:48
  • 업데이트 2018.09.0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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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한 삶을 살다 요절한 규방 시인

허난설헌(본명 초희) 초상. 출처=허난설헌 생가
허난설헌 초상. 출처=강릉 허난설헌 생가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이란 얇은 책이 있다. 허난설헌(1563∼1589)이 8세 때인 1570년에 지었다는 상량문으로, 한석봉이 쓴 글씨를 목판에 음각하여 인출한 것이다.

그녀의 동생인 허균(1569∼1618)이 황해도 수안의 군수로 재직하던 1605년 5월에 한석봉의 글씨로 1차 간행하였다. 허균이 수안군수가 된 후 한석봉이 가까운 송도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초청했다. 초청된 석봉이 『광한전백옥루상량문』 글씨를 쓴 것이다. 허균은 같은 해 형 하곡 허봉의 시를 모아 『하곡시초』(荷谷詩抄)도 간행했다.

허난설헌의 이 문장은 신선세계에 있는 상상의 궁궐인 광한전 백옥루의 상량식에 자신이 초대받아 그 상량문을 지은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상량문은 집을 지을 때 대들보를 올리며 행하는 상량의식에 쓰이는 글이다.

이듬해인 1606년에 허균은 종사관이 되어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을 영접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이때 허균은 그에게 『광한전백옥루상량문』 목판본과 허난설헌의 시편들을 주었다. 주지번은 명나라로 돌아가 1606년에 허난설헌의 시집을 최초로 중국에서 간행했다.

허균도 공주목사로 재직하던 1608년 4월에 목판본으로 『난설헌집』을 중간했다. 허난설헌의 상량문은 여기에 덧붙여 실려 있다.

그 뒤 1692년 동래부(東萊府)에서 허균의 중간본을 저본으로 다시 그녀의 시집을 간행했다. 동래부의 이 책은 일본으로 전달돼 1711년 일본에서 분다이 야지로(文台屋次郎)에 의해 간행되기도 하였다. 1912년 서울의 신해금사(辛亥唫社)에서 다시 시집을 간행했다.

그러면 허난설헌은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펴보자.

그녀는 조선중기 문신으로 동과 서로 사림들이 붕당이 된 후 동인의 영수가 된 허엽의 딸로, 유명한 학자와 문장가를 배출한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초희(楚姬)이고, 난설헌은 당호(堂號)이다. 당대 뛰어난 문인으로 평가받은 허성과 허봉이 허난설헌의 오빠이며, 허균이 그녀의 남동생이다. 허엽은 첫째 부인이 사망하자 다시 부인을 얻어 허봉, 허난설헌, 허균 세 자매를 낳았다. 삼당(三唐) 시인의 한 사람으로 명망이 높던 이달에게서 그녀는 허균과 함께 시를 배웠다.

그녀는 15세에 안동 김씨인 김성립에게 시집을 갔으나 남편과 시집 식구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두 자녀마저 잃게 되는 등 불행한 삶을 이어갔다. 게다가 친정집마저 옥사(獄事)를 당하여 오빠 허봉이 귀양 가서 객사하는 등의 비극을 겪다 27세로 세상을 떠났다.

①허난설헌이 8세 때 지었다는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 내지 첫 장.
①허난설헌이 8세 때 지었다는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 내지 첫 장.

한편 허난설헌의 작품들을 놓고 학계에서는 그녀를 유일한 규방 시인이자 뛰어난 천재로 인정하기도 하고, 작품들 대부분은 허균이 만든 위작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필자는 그러한 논란에 대해 언급할 처지가 아니다. 그런 건 차치하고 그녀의 시편들 가운데 「규원」(閨怨), 「감우」(感遇), 「추한야좌」(秋寒夜坐) 등과 같이 규중 여인으로서의 불행했던 삶을 표현한 작품들도 적지 않다.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비통한 심경을 절실히 표현한 「곡자」(哭子) 같은 시도 있다. 신선세계를 동경하는 「유선사」(遊仙詞) 87수 등의 작품도 있다.

또한 그녀가 자신의 죽음을 예고했다는 시가 있다. 허균의 『학산초담』 등에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허난설헌이 일찍이 꿈에 월궁(月宮)에 이르렀더니, 월황(月皇)이 운(韻)자를 주며, 시를 지으라 했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碧海浸瑤海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靑鸞倚彩鸞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芙蓉三九朶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紅墮月霜寒
                                            (허경진 역)

그녀는 꿈에서 깨어난 뒤 위의 시를 지었다는 것이다.

그 뒤에 그녀의 나이 27세에 집안사람들에게 “금년이 바로 3·9수에 해당되니, 오늘 연꽃이 서리에 맞아 붉게 되었다”(今年乃三九之數, 今日霜墮紅)라는 말을 남기곤 눈을 감았다고 한다. 3·9는 27이다. 이 시의 예언이 맞았던 것인가. 그녀는 그렇게 1589년 3월 19일, 향년 27세로 세상을 버렸다.

1608년에 허균이 간행한 『난설헌시집』. 문화재청 소장본이다.
1608년에 허균이 간행한 『난설헌시집』. 문화재청 소장본이다.

<참고자료>

  • 박현규, 「1597년 허균 선록본 허난설헌 『난설시한』 고찰」, 『한문학논집』 43, 2016.
  • 王潔清, 「許蘭雪軒과 朱淑眞의 詩文學에 드러난삶의 殘影과 그 同異 - 유교적 질곡에 대응했던 韓ㆍ中 두 여류시인의시적 지향을 중심으로 -」, 『열상고전연구』 49, 2016.
  • 장인애, 「허난설헌(許蘭雪軒)과 서영수합(徐令壽閤)의 한시(漢詩)에 나타난 여성상(女性像)」, 『한문학논집』 34, 2012.
  • 구지현, 「『쇄미륵』에서 발견된 허난설헌의 시에 대하여 = 關干記載在『쇄미록』中的許蘭雪軒的作品」, 『열상고전연구』 14, 2001.

<시인·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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