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혹
마음의 혹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8.10.16 06:23
  • 업데이트 2018.10.16 06: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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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autumn). by gana7070. 출처 : 픽사베이
가을(autumn). by gana7070. 출처 : 픽사베이

도끼를 잃은 이가 있었는데, 그가 이웃집 아들을 의심했더니, 그의 걸음걸이도 도끼를 훔친 것으로 보였고, 그의 안색도 도끼를 훔친 것 같이 보였으며, 언어도 도끼를 훔친 것으로 들리는 등 동작과 태도에 있어서 무슨 일이든 도끼를 훔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골짜기를 이리저리 뒤져서 도끼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다른 날 그 이웃집 아들을 다시 보았더니 그의 동작과 태도에 도끼를 훔친 것 같은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이웃집 아들이 변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변한 것이다. 변함에는 다른 것이 없고 얽매이는 바가 있는 것이다.¹⁾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먹는 호사를 누리려 ‘장도’에 오른다. 본디 입 호사는 양에서 질로, 질에서 맛으로, 맛에서 멋으로 계층 상승을 한다. 내 주제에 멋까지 챙김은 과욕이고 양-질-맛을 한 방에 해결하려 삽짝 나섬은 가히 장도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 일이다. 삼십여 리 상거의 읍내 돼지국밥집이 목적지이다.

자동차 소유 여부에 따라 물리적 거리가 달라진다. 축지법이 따로 있나, 자동차를 모는 것이 축지법 실연實演이다. 이동수단이 정강말뿐이니 걷고 노선버스 기다리고 또 걸어야 하니, 자동차 운전자들의 백여 리 길은 족히 된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그만한 걸음 품값은 나온다.

국밥집 주인은 내 중학교 동기이다. 내가 가면 다른 손님 눈치를 살펴야 할 정도로 뚝배기가 넘치도록 듬뿍 담아준다. 비계든지 돼지껍데기든지 간에 고기 양도 많다. 내 능력 범위 내의 외식 메뉴 중에서는 돼지국밥이 가장 좋다. 아무리 접해도 물리지가 않는다. 특히 이 친구 집에서는 우선 양이 많다. 육수에 고기에다 부추 가득이니 영양분도 만점이다. 지금까지 국물 한 방울 남긴 적이 없을 만큼 맛도 좋다. 자, 양-질-맛, 이게 한 방에 해결되는데 더 뭘 바랄 것인가. 거기에 소주 한 병, 이 위에 더 얹을 게 무엇 있으리오.

오늘도 입 호사를 즐겼더니 뱃속이 든든한 게 세상 부러울 것 없다. 소주 한 병이 잡생각을 몰아내니 머리도 적당히 비워졌다. 위장도 비우고 머리도 비워야 한다고들 하지만, 경험칙으로 갈 길이 좀 먼 사람은 든든한 배에 빈 머리가 더 낫다. 동네 앞을 지나는 노선버스는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딱 좋은 시간이다. 바로 걷기 시작했다. 동네까지 걸으면 두 시간쯤 걸린다. 전부 걸어가기는 좀 무리이고 터미널과 동네 중간쯤에서 버스를 탈 요량이다.

벼는 익어 황금들판이 더넘바람에 일렁거린다. 들판 끝 야산에는 푸르른 소나무 속에 수줍은 듯 단풍이 아담하다. 그 단풍 위 청아한 가을 하늘에 둥실 뜬 흰 구름 하나. 이래서 자연은 값없는 보배라 했던가. 누가 물 좋고 산 좋은 정자에 풍류가 있다고 하더냐. 비록 국도 따라 걷지만 예서 바로 가을 정취 만끽하니 나 또한 풍류객이라. 없음과 부족과 빔(空)은 행복이나 만족의 전제조건이란 자만도 든다. 없어야 부족해야 비워야 채울 공간이 넉넉해지기 때문이다. 언젠가 시장구석 막걸리 집에서였다. 선배 한 분의 호가 만공滿空이라고 했다. 일감一感에 ‘빈 것을 다 채워버리면 좀 부자연스럽지 않소?’ 했더니, 선배는 ‘가득 차지 못하도록 매일 비운다는 뜻이네’ 라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그러면서 막걸리 잔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멋이란 저런 것이지. 멋은 펜트하우스와 부르고뉴 와인에 있는 게 아니다.

빠앙~, 빵빵. 무르익는 풍류의 산통을 깨는 외물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걷는 길은 국도변, 상념과 발길이 따로 놀아 혹 찻길을 침범했나, 더럭 걱정이 되어 우뚝 섰다. “형님, 또 걸어가요? 오늘은 고마 타소.” 동네 후배 수철이었다. 멀찍이서도 날 알아보고 옆에 차를 붙였는데도 고개를 돌리지 않자 경적을 울린 것이다. 운전대는 수철이의 동생이 잡고 있었다. 그는 나와 10년쯤 터울이 진다. 수철이의 동생을 보자 별 타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았다. 물론 버스가 올 시각도 거의 되었다.

수철이는 중졸이나 그 동생은 박사 학위 소지자다. 공기업 연구소에 근무한다. 우리가 학교 다닐 무렵 시골살림 애옥함은 어금버금했고, 대학은 언감생심이었다. 다행히 그 동생은 부모라는 식민지와 형이라는 식민지가 있었던 덕에 현재의 그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대개 식민지를 착취(?)한 당사자들은 부모와 형이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제 잘난 덕으로 여긴다. 작년 벌초할 무렵, 수철이가 동생에 대한 넋두리를 내게 늘어놓은 적이 있었다. 매년 벌초 때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서 한날은 동생에게 최후통첩을 했단다. “또 벌초 안 오면 산과 논밭, 네한테 말도 안 하고 다 팔아먹어 버릴끼다.” 뒷날 새벽 도와 달려오더란다.

“운동 하이²⁾를 즐기시는 모양입니다, 선배님.” 뒷좌석에 앉은 나를 돌아보며 동생은 인사를 겸해서 말을 건넸다.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붙이지 않았다. ‘운동 하이’란 단어를 듣고 보니 역시 박사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는 건 아니니 ‘러너스 하이’란 이름은 부적절할 수도 있을 터였다. ‘자식, 말주변은 제대로 갖췄구먼.’ 이라는 생각뿐, 예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수철이는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했다. 작년 동생을 타박할 때의 표정과 지금 싱글거리는 웃음을 연결시킬 수가 없었다. 내가 곤혹스런 눈길로 물었다.

“위채를 싹 밀어버리고 새로 짓기로 했습니다. 돈은 내가 3, 동생이 7을 대기로 했습니다. 나는 괜찮다고 하는데, 동생이 자꾸 집이 너무 구질구질하다고 우겨 싸서······.” 띵~,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이런 띠앗 깊은 동생을 내가 오해하다니. 아니면 수철이의 기심欺心에 내가 놀아난 것인가?

내 집은 바깥뜸에 있고, 수철이는 안뜸에 산다. 바깥뜸 공터에 차를 세웠다. 수철이의 동생은 차 밖으로 나와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선배님, 제 형님이 부족하더라도 잘 이끌어 주십시오. 제가 부족하여 형님을 돕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자주 찾아 뵐 겁니다. 그럼, 선배님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수철이가 탄 차가 저만치 멀어져 간다. 나는 아직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이거 원, 아닌 밤중에 홍두깨 맞은 기분이다.

이렇게 우두커니 서 있는데, 택시 한 대가 들이닥친다. 면소재지에 있는 택시다. 몇 집 건너 이웃에 사는 중학생이 내린다. 내 눈을 의심했다.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 이건 오지랖이 넓은 게 아니라는 확신도 든다.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몸도 성치 않은 홀어머니와 살면서 택시라니. 벌써 몇 번째 목격한 일인가. 벼르고 있었다. 오 리 길이 길이라고 하굣길에 택시를 타다니. “헤이, 네 오늘 또 택시 타고 오나?” 평소 살갑게 대해 주던 아저씨가 언성에 잔뜩 성깔을 묻히고 있으니, 이놈은 인사를 하다 말고 어쩔 줄 몰라 뻘쭘히 서 있다.

그 사이 택시는 방향을 돌리려 몇 미터 갔다가 돌아오면서 우리를 보았다. 택시가 섰다. 기사가 차문을 열고, “형님, 나무라지 마이소. 내가 고마워서 한 번씩 태워 줍니다.” 듣고 보니 사정은 이러했다. 택시 기사의 아들은 한쪽 발이 심하게 불편한 장애인이다. 다른 애들과는 달리 이 중학생은 장애인 급우를 끔찍이 돌봐준다. 가끔 집에까지 와 같이 공부하고, 놀아도 준다고 했다. 그래서 택시 기사는 너무 고맙고 기특하다는 생각에 손님이 없을 때는 일부러 택시에 태워준다는 것이다. ‘우두망찰하다’는 낱말은 이런 때 쓰는 것이리라.

“두 사내아이가 여름 방학 때 굴뚝을 청소하게 되었네. 그런데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굴뚝에서 내려오고, 다른 한 아이는 얼굴에 그을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네. 그대는 두 아이 가운데 어느 아이가 얼굴을 씻으리라고 생각하는가?”

사내는 대답했다.

“그야 물론 얼굴이 더럽혀진 아이겠지요.”

랍비는 틀렸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얼굴이 더럽혀진 아이는 얼굴이 깨끗한 아이를 보고 내 얼굴도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러나 얼굴이 깨끗한 아이는 얼굴이 더럽혀진 상대편 아이를 보고 제 얼굴도 더럽다고 생각할 걸세.”³⁾

※1)여불위/김근 옮김, 『여씨춘추』(글항아리, 2016), 313쪽. 2)러너스 하이(runners' high)란 통상 30분 이상 달릴 때 얻어지는 도취감, 혹은 달리기의 쾌감을 말하며, 운동 하이(exercise high), 러닝 하이(running high), 조깅 하이(jogging high)라고도 한다.(시사상식사전) 3)마빈 토케이어/신현미 옮김, 『탈무두』(다모아, 1993), 10쪽.

<칼럼니스트·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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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리 2018-10-16 13:32:30
선생님의 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