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호의 산티아고 순례기 (3)순례길의 표지판과 인생의 이정표
오동호의 산티아고 순례기 (3)순례길의 표지판과 인생의 이정표
  • 오동호 오동호
  • 승인 2018.10.16 22:17
  • 업데이트 2018.10.16 2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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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들판과 산, 바람과 함께한 길위의 순례자들.
거친 들판과 산, 바람과 함께한 길위의 순례자들.

산과 들, 강을 따라 걷는 끝없는 순례길...
그 많은 길을 두고 33년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나선 첫 걸음이 왜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이었을까? 무엇을 찾아 떠난 길일까? 스스로에게 물으며 프랑스 르퓌( Le Puy) 대성당의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의 순례는 시작되었다.

첫날의 목적지는 생 프리바 달리에(Saint Privat d'Allier). 이름도 아주 예쁘다. 시작을 반기듯이 쾌청한 프랑스의 하늘은 더 높고, 산과 들은 점점 깊은 가을로 물들어 간다.

첫 도착지 생 프리바 달리에의 신비스러운 모습
첫 도착지 생 프리바 달리에의 신비스러운 모습.

첫 순례자 친구는 파리에서 온 20대 프리안느와 50대 중년인 알랭. 일주일간 휴가를 얻어 순례길을 걷기 위해 왔다고 하여 이들을 동행으로 삼았다. 둘 다 프랑스 사람이니 이들을 따라가면 무사할 것 같았다.

첫 날 동행한 프리안느와 알랭.
첫 날 동행한 프리안느와 알랭. 

그러나, 이들을 따라 30여km를 걸어도 도착해야 할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어느새 허기도 진다. 동행한 알랭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프리안느는 발이 아파 더 이상 걸을 수 없으니, 나보고 혼자서 가라고 한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길을 헤매고 헤매다 2시간 정도 고개를 넘어가니 드디어 기다리던 마을이 나타난다. 여기가 어딜까? 목적지와는 방향도 거리도 한참 다른 마을이란다. 기진맥진하여 더 이상 걸을 수도 없다. 결국은 때마침 길을 가던 여성에게 도움을 요청해 목적지인 생 프리바 달리에 마을에 도착했다.

일요일, 마을 사람들과 저녁파티를 가기로 한 부부인데 생면부지의 순례자를 위해 차를 가져와 나를 태워준 것이다. 때로는 작은 친절이 순례자에게는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헤어질 때는 " 당신은 위대한 순례자이다"고 격려도 해준다.

경황이 없어 사진을 남기지 못해 아쉽다. 생 프리바 달리에는 신비로운 마을이다. 구름 속에 잠긴 고요한 마을이랄까? 지트(순례자를 위한 기숙사용 숙소, 스페인에서는 일베르게라
함)에 늦게 도착한 나를 위해, 먼저온 순례자들이 파티를 열어줬다. 고마운 분들이다. 힘도 새로 생겨난다.

늦게 도착한 필자를 위해 특별히 파티를 마련해준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과 함께.
늦게 도착한 필자를 위해 특별히 파티를 마련해준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과 함께.

둘째 날부터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름도 생소한 소그(Saugues), 생 탈방(Saint 'Alban), 오몽 오브락(Aumon Aubrac)을 거쳐 나스비날(Nasvinals)로 가는 5일 동안은 프랑스 중남부 산악지대를 걷는 순례길이다.

순례길을 따라 펼쳐진 광활한 목장, 덩치가 큰 소들, 간간히 보이는 늙은 농부들이 전부다. 위도가 한국과 비슷해 나무도 밤나무, 굴참나무, 소나무, 플라타너스가 주종을 이루어 생소하지 않다. 순례자에게 보이는 단조로운 풍경이지만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진다.

프랑스 사간지방 순례길의 전형적인 풍경 .
프랑스 사간지방 순례길의 전형적인 풍경 .

길을 다니며,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마을의 이름에 락(Rac)이 있으면 산간지방의 암석지대를, 생(Saint)있으면 성인(聖人)과 관계된 순례자 마을이라고 한다. 오브락, 도브락, 골리악... 바위가 많은 동네의 지명인데 오래 전에 화산이 분출한 휴화산 지대라고 한다. 마을마다 우뚝 서있는 중세시대의 교회나 순례자 조형물들을 보면 왜 '생'자가 들어간 마을이 많은지도 이해가 된다.

산간지방의 아름다운 풍경사진
산간지방의 아름다운 풍경사진.

생콤(Ssint-Oome)을 거쳐 에스팔리옹(Espalion), 에스탱(Estaing)을 가는 길은 롯강(La Lot)을 통해 걷는 길이 많다. 롯강은 산간지역의 계곡을 따라 흐르는데 운치가 섬진강이나 내 고향 지리산 자락의 경호강과 같다. 강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은 결코 강은 건너지 못한다는 철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듯하다. 산은 산대로 풍치가 있지만 강은 사람의 마음을 넉넉하게 해준다.

에스팔리옹은 고풍스런 중소도시로,고성(古城)과 시내를 연결하는 다리가 일품이다. 강도 꽤나 넓어 수상 스포츠나 캠핑이 발단된 마을이다. 내가 막 에스팔리옹을 도착했을 때 환영해주던 사람도 강가에서 낚시하던 어린 친구다.

에스팔리용의 멋진 마을 풍경
에스팔리용의 멋진 마을 풍경.

 

에스팔리옹 롯강변에 낚시하던 소년
에스팔리옹 롯강변에 낚시하던 소년.

르퓌(Le Puy) 순례길에서의 표지판들...
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과 거리를 나타내는 표지판과 이정표이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기본 표지판은 조가비와 노란 화살표다.

순례길의 이정표
순례길의 이정표.

Le Puy 순례길은 화이트 앤 레드의 "GR65"표지판이 대신한다. 순례길이 제네바에서 스페인 순례의 첫 동네인 론세바예스까지 이어지는 GR65와 같기 때문이다.

르퓌 순례길의 GR65 표지판
르퓌 순례길의 GR65 표지판.

이정표는 마을입구나 교차로에 주로 있다. 어느 정도 통일된 모양으로 예쁘게 만들어졌다. 문제는 지역의 두레길 걷는 표지판이 병행 설치되어 있는 것도 있어 혼동을 주기도 한다. 첫날 우리가 헤맸던 것도 이 때문이란걸 나중에 알았다. 이 길을 옛날 순례자들은 어떻게 찾아 갔을까? 아마 태양과 달, 산과 들을 보고 찾아가지 않았을까?

산티아고 순례길은 동쪽에서 출발해 해지는 서쪽으로 가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순례의 종착지가 스페인 북서쪽 끝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이기 때문이다. 콤포스텔라도 들판에 떠있는 별이란다. 

새벽길을 나서는 독일 청년 Timoi
새벽길을 나서는 독일 청년 Timoi.

문득, "우리의 삶에도 이정표는 필요한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 계속 같이 걸었던 26세 독일 청년 티모이( Timoi)는 삶의 방향을 정하려 이 길을 걷는다고 했다. 그는 내게 물었다.
“당신은 왜 순례길을 걷고 있느냐(Why Camino)?”

선뜻 답이 생각나지 않는다.

순례길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필자
순례길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필자.

바쁘게 하루 하루를 살다가 세월이 흘러 흘러 삶의 여러 해를 지나와 버렸다. 때로는 속도를 내며 달리기도 했고, 때로는 속도를 줄이기도 했다. 잠시 흔들리기도 했고, 때로는 이 길을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나는 뭔가 목마름을 느꼈다. 이 길을 걸으며 그 당시의 먹먹함이 되살아 난다. 끝없는 순례길을 걷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

오늘 최종 목적지를 알려 주는 이정표를 찾으려고 주위를 눈여겨 보았지만 그 이정표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삶을 살아갈 때도 가야 할 길의 표지판이 문득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누군가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달리는 데도 조금씩 지쳐가기도 한다.

새벼녁의 에스탱의 몽환적 마을풍경
새벽녁 에스탱의 몽환적 마을 풍경.

나 또한 이 길을 걸으며, 그 길을 통해 위로 받고, 새로운 삶의 길을 정해보고자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쁘게만 지나가던 날들이 스치면서, 그 가운데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다시 서서히 속도를 늦추어 본다.

홀로 무심히 고개를 넘는 순례자
홀로 무심히 고개를 넘는 순례자.

독일 청년 티모이에게 이런저런 말을 해주긴 했으나,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아니, 나도 그 답을 모른다. 그냥 걸을 뿐이다. 무엇이 되기보다는 어떻게 살아갈까가 더 중요해 보인다. 이 아름다운 청년 티모이에게 속시원한 답을 내려줄 사람 누구 없을까?

순례길의 조가비 문양 표지판
순례길의 조가비 문양 표지판

<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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