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중간선거로 본 미국 민주주의의 앞날은?
11·6 중간선거로 본 미국 민주주의의 앞날은?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8.11.14 18:29
  • 업데이트 2018.11.1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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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송원

모든 정치인들은 진실을 왜곡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닥치는 대로 거짓말을 한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그는 취임 후 5,000번이 넘게 거짓말을 했다. 그의 거짓말은 너무도 뻔뻔스럽지만 아주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트럼프 지지자들의 대부분은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비판자나 미디어보다는 트럼프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완강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11%만이 주류 미디어를 믿는다. 반면 91%는 트럼프 말을 믿는다.

트럼프는 거짓말과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을 바라는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언론이든 트럼프 비판자든 트럼프 자신이든 사람들이 누구도 신뢰하지 않게 되면, 트럼프는 자신의 편의상 거짓말에 책임질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에는, 세계에는 그러한 세상은 재앙이 된다는 사실이다. 합리적인 토론으로 논쟁에 이길 수 없다면, 민주주의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모든 정치인들은 자신의 반대자들을 공격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고의적으로 국민을 분열시킨다. 역대 대통령들은 국민적 비극의 발생 후 국민을 통합시키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생각한다. 오직 트럼프만이 비극적 사건을 미디어와 민주당을 공격할 빌미로 삼는다. ‘생명의 나무 유대교 회당’ 총격 사건이 그 예이다.

국민을 분열시켜 정치적 이득을 얻는 정치인으로 트럼프가 유일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가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분열주의자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민의 분열은 중대한 사태를 초래한다. 모든 건강한 정치의 토대인 타협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¹⁾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전국적으로 300만 표(2.1%) 뒤졌다. 하지만 승자가 각 주의 선거인단 표를 모두 갖는 승자독식제도 덕분에 이겼다. 주마다 최소 3표가 주어지기 때문에 선거인단 표 수가 인구와 완전히 비례하지 않는다. 여기에다 트럼프는 적은 표 차로 여러 큰 주에서 승리해 다수의 선거인단을 확보했다.

상원도 비슷하다. 모든 주는 2명씩 상원의원을 선출한다. 그러므로 인구가 60만 명이 안 되는 와이오밍주도 4천만 인구의 캘리포니아 주와 같은 수의 상원의원을 갖는다. 절반에 크게 못 미치는 표를 얻어도 공화당은 대부분의 작은 주에서 이겨 다수당이 된다.

하원은 인구 규모를 토대로 의석수를 배정한다. 하지만 공화당이 선거구를 조정해, 민주당이 하원을 탈환하려면 공화당보다 6~8%를 더 득표해야 한다. 시민들의 투표권 행사 제약도 문제다. 공화당은 소수자집단의 투표를 어렵게 하려는 수단들을 강구했다. 과거에 법원은 이런 장치들을 무효화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 공화당이 지명한 판사들은 이런 노골적 행동들을 승인했다.²⁾

미국의 중간선거는 외교정책이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북-미 2차 정상회담이 선거 뒤로 미뤄졌을 것이다. 본디 여느 중간선거는 현직 대통령과 행정부를 평가하는 투표가 된다. 그러나 이번 중간선거는 트럼프주의(Trumpism)의 저지냐 승인이냐를 묻는 정치행위가 되었다. 결과는 어떠한가?

이미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상원은 공화당이 다수당을 유지했고, 민주당은 하원 지배권을 탈환했다. <타임>이 지적한 대로 이 결과는 민주당의 승리(triumph)가 아니라 안도(relief)일 뿐이다. 트럼프 일방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의회에 발판을 마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트럼프와 트럼프 일방주의가 건재함을 확인해 준, 심각한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해 줄 뿐이다.

통상적으로 여당은 중간선거에서 패배한다. 투표율도 낮다. 그러나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2014년 36%에 비해 49%로 투표율이 높았다. 이번 중간선거는 여느 중간선거와는 달랐다. 분노하여 투표소로 쇄도한 사람은 민주당 지지자만이 아니었다. 공화당 지지자들도 투표소로 밀려들었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인종주의적이고 문화적 전쟁으로 핵심 지지층을 선동하는 트럼프의 전략을 승인한다는 증좌이다.

이번 선거로 트럼프는 자신이 응원한 후보를 당선시켜, 공화당도 장악하게 되었다. 하원 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청문회나 소환장 발부로 트럼프 일방주의에 제동을 걸 수는 있다. 그러나 공화당의 상원이 방해할 것이므로 탄핵할 수는 없다. 결국 이번 선거로 미국은, 사회의 병폐에 대해 시민들이 서로 네 탓이라며 삿대질을 해대는 ‘증오와 분열’의 나라임 여실히 드러났다.³⁾ 이렇게 증오와 분열의 나라에서 과연 민주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민주주의는 언제나 위태로운 제도였다. 그럼에도 미국 사회는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 헌법, 자유와 평등에 대한 확고한 믿음, 역사적으로 탄탄한 중산층, 높은 수준의 부와 교육, 그리고 광범위하고 다각화된 민간 영역이 아마도 민주주의 붕괴라는 재앙에서 미국 사회를 지켜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정치인들은 경쟁자를 적으로 여기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선거 불복을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법원과 안보기구, 윤리위원회 등 민주주의의 제도적 완충장치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권력의 자리에 앉은 이들이 선거 승리를 위해 법률을 뜯어고치고, 헌법을 수정하고, 심지어는 선거권까지 박탈하면서 민주주의의 실험실은 이제 전제주의 실험실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곧 미국 사회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가장 성공적인 민주주의의 쇠퇴와 붕괴를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

냉전이 끝나고 민주주의의 붕괴는 대부분 군인이 아니라 선출된 지도자의 손에서 이뤄졌다. 오늘날 민주주의 붕괴는 다름 아닌 투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선출된 독재자는 민주주의 틀을 그대로 보존하지만, 그 내용물은 완전히 갉아먹는다.

민주주의 기반이 아무리 튼튼하다 해도 극단주의 선동가는 어느 사회에서나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시험은 이러한 인물이 등장하는가가 아니라, 정치지도자와 정당이 나서서 이러한 인물이 당내 주류가 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이들에 대한 지지와 연합을 거부하고, 필요하다면 다른 당의 민주주의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경쟁세력과 적극적으로 연대함으로써 이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가, 이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극단주의자를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성 정당이 두려움과 기회주의, 혹은 판단 착오로 인해 극단주의자와 손을 잡을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제도만으로 선출된 독재자를 실질적으로 제어할 수 없다. 정당 체제와 시민사회는 물론 민주주의 규범democratic norms이 필요하다. 그 규범이 무너질 때 헌법에 명시된 권력분립은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민주주의 보호막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이 민주주의 규범이 허물어진 상태에서 치러졌던 2016년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대중의 불만은 물론 극단주의 선동가(도널드 트럼프)와 손을 잡은 공화당 덕분에 깜짝 승리를 일궈냈다.

지금 미국의 민주주의는 얼마나 위험한 상태일까? 미국 헌법이 트럼프와 같은 선동가를 제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정치 평론가들은 말한다. 남북전쟁과 대공황, 냉전과 워터게이트까지 이겨냈다. 그러므로 트럼프도 이겨낼 것이다. 그러나 확신할 수 없다.

미국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돌아가고 오랫동안 이어지기 위해서는 성문화되지 않은 두 가지 규범이 헌법을 뒷받침해야 한다. 그 두 가지 규범이란, 정당이 상대 정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mutual toleration과 이해understanding, 그리고 제도적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자제forbearance를 말한다.

이 두 규범은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미국 민주주의 기반을 강화해 왔다. 양당 지도자는 서로를 정당한 경쟁자로 받아들였고, 그들에게 시한부로 주어진 제도적 권리를 오로지 당의 이익을 위해서만 활용하려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다. 이처럼 관용과 절제의 규범은 미국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가드레일로 기능하면서, 당파싸움이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막아주었다. 반면 1930년대 유럽이나 1960년대와 70년대 남미에서 나타난 자멸적인 당파 싸움은 여러 국가의 민주주의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제는 미국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이 흔들리고 있다. 1980년대와 90년대 시작된 민주주주의 규범의 침식이 2000년대에 들어서 가속화되었다. 특히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많은 공화당 인사들은 민주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기 위해 자제의 규범을 저버렸다. 이러한 움직임은 트럼프에 의해 가속화되었을지 몰라도, 그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는 그 뿌리가 무척이나 깊다. 민주주의 규범 침식은 당파적 양극화에서 비롯되었다. 그 양극화는 정책 차이를 넘어서 인종과 문화에 걸친 본질적 갈등으로까지 뻗어 있다. 미국 사회가 다양화되면서, 인종 간 평등을 실현하려는 사회 노력은 교묘한 전략에 직면했고,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했다.

민주주의 붕괴에 관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분명한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극단적인 양극화가 민주주의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⁴⁾

미국이 건강하고 모범적인 민주주의로 회귀할 수 있을까? 트럼프 일방주의가 곳곳에서 저지되고, 트럼프의 거짓말이 거짓임을 공화당 지지자들 대부분이 인식하는 시점이 그때일 것이다. 태평양 건너 한반도의 한 개인의 안온을 위해서라도 2020년 대선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그 지표를 보고 싶다.

※1)Leader, 「America divided」, 『The Economist』, 2018.11.3. 9. 2)딘 베이커(미국 경제정책연구센테 공동소장), 「미국의 중간선거」, 『한겨레신문』, 2018년 10월 22일. 3)Molly Ball, 「Nation divided」,『TIME』, NOVEMBER 19, 2018. 4)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렛/박세연 옮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어크로스, 2018), 6~16쪽.

<칼럼니스트·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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