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明堂)
명당(明堂)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8.11.17 00:09
  • 업데이트 2018.11.20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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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추 : 픽사베이(spiagol56)
출처 : 픽사베이(spiagol56)

한나라 미앙궁未央宮(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에도 등장하는 한나라의 궁전 이름)에서 어느 날 저녁, 아무 이유 없이 종이 스스로 울었다. 그것을 보고 임금이 괴이쩍어 주위를 둘러보며 물으니, 마침 곁에 시립하고 있던 동방삭東方朔(원래는 한 무제 때 사람. 벼슬이 금마문시중金馬門侍中에 이르고, 해학과 변설로 이름이 난 사람이다. 속설에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 죽지 않고 장수하였으므로, 삼천갑자三千甲子 동방삭이라 일컬어진다)이, 이는 반드시 구리광산이 무너진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아닌게아니라 얼마 되지 않아 서촉 땅 진령에 있는 구리광산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왔는데, 날짜를 헤아리니 바로 미앙궁의 종이 아무 이유도 없이 스스로 울린 그날이었다.

신기하게 여긴 임금이 동방삭에게 어떻게 그리될 줄을 알았느냐고 물었다. 동방삭이 대답하기를, 무릇 구리종을 만든 구리는 바로 그 구리광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기氣가 서로 감응하는 것은 사람이 부모에게서 몸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임금이 감탄하여 이르기를, 물체의 서로 감응함이 그와 같은데, 황차 사람에게 있어서이랴, 귀신에게 있어서이랴 하고 외쳤다. 구리광산이 무너짐에 따라, 바로 그 광산에서 나온 구리로 만든 구리종이 스스로 우는 것은, 마치 돌아가신 부모의 본해本骸(뼈)가 동기同氣인 자식에게 복을 입힘과 같은 것이니, 이는 모두 자연의 이치인 것이다.

이것이 『금낭경錦囊經』이 밝힌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의 비유적 설명이다.¹⁾

오늘은 시향時享을 모시는 날이다. 별스런 준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증조할아버지는 삼형제였다. 그 삼형제 직계 자손들이 차례건으로 시향 준비를 한다. 작년에 우리 집에서 시향 준비를 도맡았다. 올해는 둘째 증조할아버지 자손들의 차례이다.

모처럼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다가, 문득 축문에 생각이 미쳤다. 올해는 축문을 한글로 읽을 기회이지 않을까? 『보학요람譜學要覽』 갈피에 고붙쳐 둔 예전의 축문을 꺼냈다. 한지에다 사인펜으로 한자 한자 정성스레 옮겨 적었다. 축문을 한글본으로 하면 연월일의 간지干支를 따질 필요도 없다. ‘유 세차무술년시월계해삭사일정미효0세손00감소고우······.’를 간단히 ‘2018년 음력 10월 4일 0세손 00는 00대부터 5대 할아버님, 할머님께 삼가 고하나이다’로 읽으면 그만이다.

20여 년 전 축문을 한글로 번역하여 웃어른들에게 제시했다. 한글세대인 자손들이 축문 내용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축문을 읽을 동안 머리를 땅에 대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외계인의 언어를 듣고만 있을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기서유역상로강불승영모근이청작이서수지천세사 상 향, 무슨 뜻인가? 시절이 화창하고 서리와 이슬이 이미 내린 때에 봉영을 우러러 어루만지니, 추모의 정이 더욱 간절하여 집니다. 이에 간소한 제수를 드리오니 강림하시와 흠향하시옵소서.

웃어른들은 우물거렸다. 7촌 아재²⁾ 한 분만 솔직하게 속내를 표출했다. ‘언문은 법도에 맞지 않다. 오로지 진서眞書로 읽어야 한다.’ 그 아재가 올해 시향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 예감이 들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재작년 겨울에 아재에게 전화를 드린 적이 있었다. 시향 제수祭需 문제로 의논을 하고 싶어서였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수 음식을 바리바리 싸서 봉영 앞에 진설하는 게 요즘에는 무척 비현실적이다. 떡이며 과일을 얻어먹으러 오는 꼬맹이도 없다. 오랜 시간 장만하고 애써서 상석床石에 진설하고는 절 몇 차례하고, 음복하고는 또 차릴 때만큼 수고스럽게 철상撤床을 할 뿐이다. 하여 시향 날은 간단히 술과 안주만 준비하여 성묘를 하고, 참석한 친척들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것으로 시향을 가름하자는 의론을 드리려 한 것이다. 그 해 시향을 지내고 얼마 되지 않은 무렵이었다.

뜻밖에 아재가 전화를 받는 곳이 병원 응급실이었다. 시향 때나 한 번씩 볼 때 아재는 무척 단정했다. 허투루 하는 말은 없었다. 골선비 티가 완연했다. 한데 전화 받을 때 아재는 영 딴판이었다. 앞으로 시향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지극 정성으로 조상을 모셨는데, 자기가 왜 이런 천벌을 받느냐며 아주 억울한 심사를 가감 없이 토로했다. 숙모가 의식불명인 상태로, 식물인간으로 6개월째 응급실에 누워있었던 것이다.

선산에 도착하니 4촌, 6촌 형제들이 여럿 와 있었다. 상석에는 이미 제수가 즐비했다. 떡은 물론 육적, 어적에다 소탕까지 진설되어 있었다. 아재가 진설을 감독하고 있었다. 어동육시, 두동미서, 조율이시³⁾하면서 상차림에 ‘지극 정성’을 쏟고 있었다. 의아했다. 아재가 시향에 참석한 것도 의외인데 저처럼 정성을 들이다니. 그새 숙모라도 살아 돌아온 것일까?

역시 답은 숙모였다, 그것도 새 숙모! 물론 불경스러운, 내 자신의 외쪽생각일 뿐인지도 모른다. 숙모는 지난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갔다. 장례식장에서 허탈해 하는 아재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데 1년이 채 안 돼서 노년의 새 길벗을 맞이한 것이다. 단아한 자태의 기품 있어 뵈는 중년 여인이 제수씨들의 상차림을 조용조용 돕고 있었다. 무척 조신해 보였다. 아재는 예전의 그 근엄함은 수그러들었고, 만면에서 밝은 기운이 떠돌았다.

나는 명당의 쓸모도 알지 못하고, 동기감응론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신심이 독실한 종교인을 존경한다. 세상인심에 흔들리지 않고, 종교적 신이건 조상신이건 누군가 절대자를 의식하면서 자신의 언동거지에 성찰의 기회를 일상적으로 갖는 사람, 경외한다. 옥룡자玉龍子 도선道詵이 세상을 주유하다가 어느 날 어머니의 산소를 모신 후 탄식하며 부른 노래 중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어와 벗님내야 길지吉地를 얻을진대
아는 것도 쓸데없고 순천적덕順天積德하여서라.³⁾

아재는 ‘유 세차...’로 시작하는 축문을 읽고 나서, 조상님들 우리 자손이 모두 잘 되게 도와주십시오, 하며 축원을 올렸다. 새 숙모가 저만치서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재는 산소 돌보는 데 정성을 쏟을 뿐 아니라, 이렇게 조상에 대한 종교적 신념을 곧잘 드러내곤 한다. 곡진한 그 성심에 종종 내 자신도 숙연해진다.

적덕이 명당이라! 아재가 노년에 신실한 길벗을 만남은 적덕이든 명당이든 조상신 덕분이든, 분명한 발복發福이리라. 부디 여생 동안 좋은 길벗과 행복한 여행이시기를······.

※1)최창조, 『땅의 논리 인간의 논리』(민음사, 1993), 120~121쪽. 2)아저씨. 부모와 같은 항렬의, 아버지 친형제를 제외한 남자. 3)魚東肉西-동쪽으로는 어류, 서쪽으로는 육류. 頭東尾西-생선의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도록 진설. 棗栗梨柿-대추, 밤, 배, 감은 반드시 상석에 올린다. 3)최창조, 앞의 책. 31쪽.

<칼럼니스트·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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