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영웅
우리 곁의 영웅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8.11.23 01:00
  • 업데이트 2018.11.25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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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네덜란드의 한 컨설턴트가 ‘과속으로 교통사고를 낸 친구가 허위증언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물었다. 진실을 말하겠다는 사람이 캐나다, 영국, 스웨덴 등에서는 90% 이상, 프랑스와 스페인은 60%대였지만, 우리나라는 26%였다. 사적 의리가 공적 정의를 압도했다.

의인인가 배신자인가? 내부고발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비리를 외부에 폭로하거나 신고하는 것이다. 미국의 역사를 바꾼 닉슨 대통령 워터게이트 사건,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조작,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을 야기한 최순실 국정농단. 모두 내부 고발로 시작되었다.

바깥에 알려지기 전까지는 은밀한 곳에 숨겨졌던 것, 내부자가 아니고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베일 속의 비밀이었다. 공익을 위한 한 사람의 위대한 용기가 이 비밀을 세상에 드러내었다. 그럼에도 내부 고발자는 공익신고자라는 사회적 평가와는 달리 조직에서는 배신자로 치부된다.

실제로 내부 고발자 상당수는 배신자로 낙인 찍혀 각종 불이익을 당했다. 조직에서 축출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쫓겨난 후에도 배신자라는 굴레가 씌워져 재취업마저 힘들다. 사회적 매장 상태, 정 맞은 모난 돌 신세가 된다.¹⁾

#2.“광주의 도시 특성을 고려하면 노선을 어떻게 편성하든 승객 확보가 어렵습니다. 적자가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날 텐데, 그 부담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신광조(61) 사람중심미래교통시민모임 홍보단장은 행정고시에 합격해 광주시 도시교통과 문화정책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관료 출신이다. 광주시에서 도시교통국장까지 지냈지만, 시청사 앞에서 1인 시위까지 벌이며 광주 지하철 2호선 신설 반대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국장까지 지낸 사람이 시가 하는 일에 앞장서 반대하는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 고민되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시가 명백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는 광주시가 지하철 2호선(41.9km·44개 역) 조기 착공을 공언한 지난해 9월, 지하철 2호선 반대운동을 시작했다. 2004년 개통한 1호선의 통행분담률이 3.2%에 불과한 상황에서, 2조579억 원(시비 40%)이 투입되는 2호선을 신설하면, 한 해 적자 폭은 1318억 원으로 폭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시의 재정 상황과 인구 추계에 근거해 세밀하게 논증했다.

신 단장은 “광주시 한 해 예산이 5조원이 넘어가더라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가용예산이 3000억~4000억 원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하철 운영적자 보전액이 해마다 1300억 원을 넘게 되면, 시가 전략적으로 투자해야 할 기회비용이 사라지게 된다.”고 했다. 지하철 건설 사업비와 운영적자 보전액이 커지면 사회복지·문화·환경 부문에 써야 할 예산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는 “적잖은 시민들이 2호선 건설비가 내 호주머니에서 나간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게 가장 안타깝다”면서도 “최근 재정문제와 결부해 지하철 문제를 바라보는 분들이 많아진 것은 희망적이다. 지하철 백지화 이후 광주에 맞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²⁾

#3.최근 개봉한 영화 <1991, 봄>은 강기훈이 겪은 터무니없는 삶의 궤적을 기타 선율에 실어 전한다. 91년 봄 분신한 김기설의 유서를 대필해줬다는 각본에 휘말려 청춘을 통째로 날린 강기훈은 이제 기타와 카메라를 둘러멘 방랑자다.

강기훈은 자살방조, 유서대필범으로 몰려 3년 옥고를 치렀다. 24년 만인 2015년에야 재심에서 무죄가 됐다. 당시 국립과할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은 허위로 판명 났다. 무죄가 확정되던 날, 그가 법원에 나오지 않은 건 아마도 그를 파괴한 세상에 대한 무언의 항거였을 것이다. 그 파괴범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이 사건은 검찰·법원·언론·국과수 등 공적 기관들이 기득권 세력의 기대와 희망, 추측을 현실로 둔갑시켜준 총체적 사기극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제대로 반성하고 사과한 적이 없다. 역사는 때론 불공평해 보여도 언젠가 그 죗값을 묻게 마련이다.³⁾

출처 : 픽사베이(spiagol56)
출처 : 픽사베이(spiagol56)

“다른 데 갈 필요 있나, 그냥 ‘그 카페’에서 보자.” 모처럼의 바깥출입이다. 한 철이 또 저물어가는 때, 아쉬운 가을볕에 좀 더 머물고 싶기도 하고, 곧 스러질 가을 산하 풍광에도 눈길을 한 번 더 주고 싶다. 물론 선기가 냉기로 변해 몸이 오싹해질 즈음엔 겨울나기용으로 준비해야 할 물목도 더러 있다. 읍내로 나들이를 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우리는 굳이 만날 시각을 정하지 않는다. 오전 중이므로 점심때까지 만나지겠지. 한가로운 쪽이 먼저 와서 기다리면 될 일, 군더더기를 덧붙일 수고가 무엇 있나! 10시30분 군내郡內버스를 탔다. 읍 터미널에 내려, 걸어서 전통시장 끝자락 ‘그 카페’에 도착하니 11시쯤 되었다. 하동전통시장 남쪽 끄트머리에 50여 평의 공원이 있다. 키 멀쑥한 소나무 두 그루, 곧게 뻗은 측백나무 한 그루, 울타리를 겸한 잡목들, 그리고 시멘트로 된 벤치 하나. 그 벤치가 ‘그 카페’이다.

아쉽게도 솔잎이 청청하지 못하고, 살풍경하게 좀 누릿하다. 그러나 시장통의 소음에 짓눌려서이든 자연 수명이든 소나무의 가고 옴에 별스런 미련은 없다. 다만, 읍내 한복판, 땅뙈기 귀한 시장통에 이만한 자연녹지 공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것도 한 미약한 공무원의 애쓴 보람으로 이 쉼터가 보존되었다면?

“오래 기다렸어? 백수가 과로사 한다더니 실감이 나네.” 친구가 자동차 시동을 끄지 않은 채로 다가와 손을 내민다. 점심때다. 친구가 식당으로 직행하자는 걸 옆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내민 손에 안겼다. 이 친구야, 카페에 왔으면 커피는 한 잔하고 가야 예의 아니겠나.

차를 몰아 섬진강 다리를 건넜다. 그 다리 정중앙이 경상남도와 전라남도의 경계이다. 두 백수가 점심을 좀 늦게 먹는다고 탈 날 일이야 있을 턱이 없다. 가을 정취 끝자락이라도 잡으려면 삶터와 멀어질수록 좋은 법이다. 격강隔江이 천리千里라 했으니, 천리 먼 길 도경계를 넘어 드라이브를 즐기는 셈이 아닌가. 광양시 진월면 들판을 가로지르고 망덕 포구에서 바닷바람도 쐬었다. 전라도 쪽 섬진강변 길을 타고 돌아오다 친구가 주유소에 들렀다.

“왜 조금 가면 하동읍내인데, 예서 기름 넣으려고?” 무심결에 이 말을 하고는 아차 싶었다. 이 친구는 평소 애향심과 지역이기주의를 철저히 구분한다. 지역색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우리 안의 지역색’ 타파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여 전라도에 들르면 반드시 전라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다. ‘관광하동’을 외치면서 기름도 하동서 넣고 담배도 하동서 사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라고 했다.

하동 전통시장의 '그 카페'. 사진=조송원
하동 전통시장 남쪽 끝자락의 '그 카페'. 사진=조송원

이렇게 부분과 전체를 통찰하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기에 군수와 대립각을 세웠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경남도의 곳곳 군에서 ‘인구 늘리기’ 정책을 밀어붙인다. 이 친구가 현직 면장일 때도 하동군에서는 그 정책을 야심차게 추진했다. 내부적으로는 각 읍면에 할당량까지 주어졌다고들 한다. 허나 이 친구는 그 정책에 미온적이었다. 인구 감소는 한국적 현실이다. 더욱이 노령인구가 많은 농촌에서는 줄어드는 인구는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그에 걸맞은 정책 개발을 해야지 서류상의 인구 증가는 아무 쓸모가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로 인해 주민들의 행정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친구의 설명을 들을 때 대한민국 공무원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

“석진아, 그러고 보니 너는 참 선견지명이 있었네.” 시장통에 돌아와 돼지국밥을 시켜놓고, 내가 넌지시 띄웠다. “왜? 무슨 말인데?”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시행한 지 꽤 오래 되었지만, 공설시장에 빈 점포는 늘어만 간다. 이 친구가 군청에 있을 때 그 사업의 담당자였다. 시장의 낡은 건물을 철거하고 깨끗한 현대식 상가로 정리·정돈했다. 이때 문제가 된 한 부분이 ‘그 카페’가 있는 자연녹지를 없애고 상가 건물을 늘리자는 거였다. 현재 있는 점포도 비어 가는데, 그 자연녹지를 없애고 상가 건물을 들이세웠다면? 결과적으로 봐 선견지명이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선견지명이라니, 과찬의 말씀이고. 나는 다만 생활공간 속에 녹지를 늘리지 못할망정 줄이자는 게 못마땅했을 뿐이네. 몇 십 년 자란 나무를 싹둑 베 넘기는 게 안타깝기도 했고······.”

돼지국밥에는 소주가 빠져서야 말이 안 되지. 친구는 차가 있으니 한 잔, 나는 차가 없으니 6잔, 이것으로 하루 나들이는 만족이다. 아참, 식사 후 ‘그 카페’에서 소나무 두 그루와 측백나무 한 그루의 생명의 은인인 친구와 또 ‘새마을 커피’ 한 잔씩으로 대미를 장식하면 더 이상 무얼 더 바라랴!

※허정도(한국토지주택공사 상임감사위원),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용기 ‘내부고발’」, 『경남도민일보』, 2018년 10월 29일. 2)정대화, 「광주시 전 교통국장이 “2호선 반대”나선 까닭」, 『한겨레신문』, 2018년 11월 7일. 3)백기철, 「1991년을 기억하는 법」, 『한겨레신문』, 2018년 11월 9일.

<칼럼니스트·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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