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최고봉 한라산 정상에 신혼부부 돌무덤…어떤 사연이
남한 최고봉 한라산 정상에 신혼부부 돌무덤…어떤 사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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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28 11:01
  • 업데이트 2018.11.2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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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정상에 조성된 '대학생 신혼부부' 돌무덤(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한라산 정상 백록담 남벽 능선에 돌무덤이 조성돼 있다. 사진 뒤쪽으로 지난 10일 성판악 코스를 통해 올라온 등산객들이 보인다. 2018.11.27
한라산 정상에 조성된 '대학생 신혼부부' 돌무덤(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한라산 정상 백록담 남벽 능선에 돌무덤이 조성돼 있다. 사진 뒤쪽으로 지난 10일 성판악 코스를 통해 올라온 등산객들이 보인다. 2018.11.27

1982년 4월 신혼 단꿈 대학생 부부 사고사, 유해 수습 조성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남한 최고봉 한라산 백록담 남벽 정상에 1982년 대학생 신혼부부의 유해를 묻은 돌무덤이 36년째 있다.

1994년 남벽 등산로가 통제된 이래 이 무덤에는 바람과 달님, 해님만이 찾고 있다.

긴 시간이 지나자 이 부부의 사연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으며 그만큼 잘 알고 있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

신혼부부의 단꿈을 간직한 이들이 어떻게 한라산 정상에서 숨졌으며 그 유해를 묻은 무덤이 해발 1천950m 백록담 능선에 있게 됐을까.

지난 10일 원희룡 제주지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답방 시 한라산을 방문할 경우를 대비해 점검 차원에서 한라산 정상을 찾았다.

기자들과 동행한 당일 산행에서는 통제된 남벽 등산로가 관련 기관의 허가를 받고 임시로 열렸다.

남벽 정상에 올랐을 때는 낮 시간대여서 신혼부부의 돌무덤은 따뜻한 늦가을 햇살을 받고 있었다.

말 그대로 오랜만에 끊겼던 사람의 발길이 무덤 주변으로 이어졌다.

봉분은 화산석으로 둘러 쌓은 모습이다.

대학생 신혼부부 사고를 다룬 옛 제주신문 기사
대학생 신혼부부 사고를 다룬 옛 제주신문 기사

무덤 앞 비석에는 김모(당시 26·홍익대 4학년)씨와 아내 김모(당시 22·서울 마포)씨 이름과 세례명이 적혀 있다. '1982년 4월 28일 신혼의 아름다움 속에 하느님 곁으로 가다'라는 글귀도 있다.

같은 해 4월 29일에 '연합통신'에는 이들의 사고를 알린 기사가 있다.

'28일 하오 1시께 한라산 백록담서 북벽 등산로에서 제주에 신혼여행 와 등산 중이던 신혼부부가 숨져 있는 것을 등산객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같은 날짜 옛 '濟州新聞'(제주신문)은 '대학생 신혼부부 등산길 변사'라는 제목과 함께 이 사고를 중요 기사로 다루고 있다. 

◇ 대학생 신혼부부 조난 사망사고 미스터리…동사? 낙뢰?

김씨 부부 시신은 1982년 4월 28일 오전 10시 다른 등산객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최초 발견자에 따르면 등산 가방을 가지런히 내려놓고 우의를 입은 채 서로가 마주 보며 쓰러져 있었다.

시신 옆에는 먹던 과일이 나뒹굴고 있었다.

숨진 김씨 부부는 시신으로 발견되기 20여일 전인 같은 달 4일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신혼여행 차 제주에 오고서 다음 날인 25일 한라산 성판악 코스를 따라 등산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근무하던 신용만(67)씨는 30대 초반이던 당시에 이들 대학생 신혼부부 시신 수습에 동참했다.

그는 "김씨 부부가 정상에 오르기 전 마지막 대피소인 사라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갔다. 이 때문에 정상에는 26일께 도착한 것으로 당시 추정했다"고 말했다.

26일부터 시신으로 발견된 28일 오전까지 사흘 사이 백록담 정상에서 어떤 사고를 당해 숨진 것이다.

한라산 정상에 있는 '대학생 신혼부부' 돌무덤(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한라산 정상 백록담 남벽 능선에 돌무덤이 조성돼 있다. 지난 10일 촬영함. 2018.11.27
한라산 정상에 있는 '대학생 신혼부부' 돌무덤(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한라산 정상 백록담 남벽 능선에 돌무덤이 조성돼 있다. 지난 10일 촬영함. 2018.11.27

당시 신문에는 경찰 조사를 인용해 김씨 부부 시신이 까맣게 타서 있었다는 신고자의 말에 따라 일단 낙뢰에 의한 사망이거나 동사로 추정된다고 보도됐다.

그때 날씨에 대해 제주지방기상청 관계자는 "한라산 기상 상황을 1994년부터 자료화하고 있어 1982년 당시 기상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신용만씨는 "당시 비 오는 날이 있었으나 낙뢰가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다"면서 "4월 말이더라도 해발고도가 높은 백록담에는 눈이 쌓이는 등 겨울 날씨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등산로가 자연적으로 생겨난 작은 길밖에 없었다. 산에서 길을 잃어도 휴대전화 등 구조를 요청할 만한 수단이 없어 조난되는 일이 잦았다.

신씨는 이들 부부가 추위 속에 내려가는 등산로를 찾으며 장시간 백록담 능선을 헤맸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시신을 수습하려고 했으나 날씨가 좋지 않은 데다 요즘처럼 헬기 등 비상 운송수단도 없어 수습작업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씨는 "당시 유가족이 정상에 와 시신을 확인하기까지 곁에서 시신을 지키고 있었고 그 이후 여러 사정을 고려해 발견 장소 근처인 남벽 정상에 무덤을 조성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한라산의 험한 날씨에 시신이 소실되지 않도록 정성껏 무덤을 조성했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쌓았다. 이듬해인 1983년에는 묘비를 세워 이들의 가련한 죽음을 알렸다.

신씨는 "이 사고를 계기로 한라산에서 조난 사고 등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당국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ko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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