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호의 산티아고 순례기 (15)에필로그
오동호의 산티아고 순례기 (15)에필로그
  • 오동호 오동호
  • 승인 2018.12.24 18:36
  • 업데이트 2018.12.3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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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순례길. 나의 순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독한 순례길. 나의 순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석양을 바라보면서 나의 순례 종착지 리스본을 떠난다. 푸른 창공이다. 비행기는, 리스본의 테주 강을 뒤로 한 채 아무 말없이 한국으로 향한다. 한 편의 영화같은 순례인데, 떠나는 순간은 너무나 단촐하다. 보내주는 이도, 맞이하는 사람도 없다. 원래 혼자 왔다가 가는 것이 순례다. 하지만 마음은 한없이 풍요롭다. 황제 대관식이라도 하는 느낌이다.

비행기 안의 승객의 얼굴들을 찬찬히 들여다 본다. 어떤 모습일까. 누구는 여행을 하고, 누구는 비즈니스를 하고, 또 누군가는 어떤 일로 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무표정한 일상의 얼굴들이다. 해맑고 순수해 보이던 순례자의 모습하고는 좀 다르다. 나의 모습도 이제 순례자에서 일상의 얼굴로 곧 바뀌어 가겠지.

근 3개월, 2000km의 순례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가을에 시작한 순례가 한 겨울이 되어서야 끝났다. 이번에 걸은 순례길은 모두 네 개의 길이다. 첫 번째 길이, 프랑스 르퓌(Le Puy)에서 생 장(Saint Jean Pied de Port)으로 가는 '르퓌 순례길(Camino de Le Puy, 800km)이다.

사진1.
항구에 지는 해를 보면서 순례길의 종착지 리스본을 떠난다. 리스본이여 안녕!

그 다음에는, 스페인 이룬(Irun)에서 히혼(Gijon)까지 '북쪽 순례길'(Camino del Norte, 600km)을 2/3지점에서 끝내고, 이어서 오비에도(Oviedo)에서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까지 '프리미티보 순례길'(Camino Primitivo, 200km)을 걸었다.

마지막 걸은 길은, 역(逆)으로 산티아고에서 리스본(Lisbon)까지 가는 '포르투갈 순례길'(Camino Portugues, 500km)이다. 2년 전 걸었던 산티아고 순례길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순례길'(Camino Frances, 800km)을 포함하면 웬만한 순례길은 다 걸은 셈이다. 순례길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격이다. 누가 훈장이라도 주지 않을까.

비행기는 어느새 다른 대륙의 창공을 날고 있다. 바깥이 점점 더 차가워 진다.

사진2.
내가 걸은 순례길이 순례지도에 선명하게 나온다. 주황색 선이 르퓌 순례길, 연두색 선이 북쪽 해안 순례길, 빨간색 선이 포르투갈 순례길이다. 세비야에서 출발하는 갈색선인 '은의 길' 말고는 다 걸은 셈이다.

사진3.
르퓌 순례길의 한 풍경. 산을 넘고 강을 건너야 마을이 나온다.

사진4.
스페인 북쪽 해안 순례길을 걷는 필자. 바다가 유일한 친구다.

사진5.
포르투갈 순례길 위의 발렌사 성곽. 미뉴강 위의 국경선 다리와 평화로운 스페인 뚜이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진6.
2년 전에 프랑스 길의 메세따 지방을 걷고 있는 우루과이 대학생들. 표정이 한없이 밝다.

사진7.
피레네 산막을 넘는 순례자들. 험준한 산맥을 넘어야 비로소 스페인의 관문 롱세바예스에 도착한다.

순례길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배운걸까. 순례길을 걸으면서,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의 산과 들, 강과 마을,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우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세 달 동안 함께했던 이국의 자연과 문화가 가장 큰 선생이었다. 산과 들, 마을과 도시, 그 속에 녹아있는 천년의 순례문화와 역사, 앞서 걸어간 순례자들의 숨결이 그렇다. 특히 그 순례의 공간 속에서 만났던 순례자들 모두는 동고동락한 동지이고, 또다른 스승이기도 하다. 일찍이 이만한 학교는 어디에도 없었다. 순례는 인생 최고의 학교인 셈이다.

배움의 으뜸은, 순례에서 얻는 '고요함'이다. 늘 꿈꿨던 고요를 느끼고 체득한 순례길이다. 순례길은 기본적으로 혼자 걷는 길이다. 끝없이 산과 들로 이어진 르퓌 순례길에서 친구는 오로지 푸른 하늘 뿐이다. 또 한없는 스페인 북쪽 해안 순례길은 어떠한가. 외로운 바다만이 순례자의 동행자다. 이 고독한 순례에서 고요를 경험해 본다. 처절한 고독이 내 안의 나를 고요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고요가 머무는 수정(守靜)의 세계고, 사색의 바다에 깊숙히 잠기는 침잠(浸潛)의 세계다. 허정(虛靜)과 무위(無爲)에서 오히려 질서가 있고 즐거움이 있다는 장자(莊⼦)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참으로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사진 8.
프퓌 순례길의 한 풍경. 고요함이 흑백으로 잘 표현됐다.

사진9.
한없이 걷다보면 누구나 철학자가 되는 걸까. 포르투갈에서 온 후안도 나와 같은 루트로 2000km를 걷는다.

고마움과 그리움의 순례이기도 하다. 순례를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서 격려와 도움을 받았다. 순례 첫날 길을 잃어 두려움에 의기소침할 때,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너를 숙소까지 태워 줄거다. 당신은 먼 이국에서 온 위대한 여행자다"라며 격려해준 프랑스의 시골 동네 어느 아주머니의 말이 가장 큰 힘이 됐다. 대만에서 온 50대 여성인 모화는 2000km를 걷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를 왈칵 껴안으면서 "당신은 나의 히어로"라고 외칠 때는 정말 영웅이 된 기분이었다.

프랑스 르퓌 길의 충실한 안내자이고 프랑스에 대한 최고의 선생이던 50대 인텔리 여성 애니타(Anita), 최고의 파스타를 만들어준 아르헨티나의 멘도사 (Mendoza)에서 온 20대 여성 오르넬라(Ornella)와 내년에 나를 아르헨티나로 초청해준 그의 약혼자 파비오(Fabio), 자기는 프랑스 출신의 순례길 호스트이기에 이국의 순례자에게 와인을 늘 대접해 주던 스위스 로잔의 국제기구에 근무하는 필리페(Philippe), 스페인 북쪽 해안 순례길을 함께 걸었던 알제리 이민자 출신으로 지중해 연안 베니도름(Benidorm)에서 온 다하(Taha), 알베르게에서 밤새워 애기하면서 청춘의 열정을 일깨워 준 체코에서 온 20대 필립(Filip) 과 모니카(Monica)... 정말 잊을 수도 없는, 참으로 고마운 순례동지들이다. 벌써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

또 이번 순례에서 다시 찾은 프랑스의 생장(Saint Jean)과 바욘(Bayonne), 스페인의 빌바오(Bilbao)와 루고(Lugo), 포르투갈의 포르투(Porto)와 리스본(Lisbon), 무엇보다도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는 과거 나의 흔적과 사유의 편린들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그리운 도시들이다. 순례에서 느낀 고마움은 내가 미쳐 알지 못했던 지난 시절의 고마움까지 되살려 준다. 늘 희생과 사랑으로 함께 하는 가족들, 33년 공직생활에서 동고동락한 동료들, 늘 내 편이 되어주는 고향과 학교 친구들... 끝없는 순례길에서 새삼 그 고마움이 무한의 그리움으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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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트에서 함께한 르퓌 순례길에서 만난 순례 동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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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가장 맛있게 먹은 뿔뽀와 비노 블랑코. 쑤마이아의 알베르게 식당에서.

청춘의 열정이 되살아난 순례이다. 늘 직원들과 비서의 도움으로 지내온 공직생활이다. 순례에는 직원도 비서도 없다.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어설프지만 해 낸다. 사실 이번 순례는 가이드 북 한권 없이 모든 것을 스마트폰 하나로만 해결하려 했다. 인터넷과 어플, SNS로 길도 찾고 숙소도 예약하고, 글도 쓰고 사진도 찍고, 소통도 한다. 'www.gronze.com'(산티아고 순례길 종합안내), 'Camino Tool' 과 'Google Map'(길 나침반), '갤럭시 노트9'(기록과 사진), '카카오톡'과 'Facebook'(소통)은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고 가이드였다. '인저리타임'(www.injurytime.kr)은 나의 생각을 외부에 전달한 또 다른 친구다. 누가 이 위대한 친구들을 만들어 냈는가? 한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순례의 주 고객은 20대 청춘들과 50대 중년들이다. 이들과 함께 걷고, 같이 먹고 자고, 또 밤새워 애기하고 지내는 게 순례다. 외국의 낯선 젊은이들과 토론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청년들에게서는 열정과 자유로운 영혼을, 중년들에게서는 동병상련의 희노애락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또 기특한 것이 있다. 3개월간 완전히 한식과 이별하고 철저히 현지식을 즐겼다. 기본식인 빵과 커피, 프랑스의 다양한 숩과 토끼요리, 엔초아와 정어리 요리, 타파스와 뿔뽀, 비노 블랑코(화이트 와인)와 포르투 와인... 지금도 군침이 절로 나는 걸 보니 난 여행자 체질인가 보다. 혼자 모든 것을 해낼 수 있고, 온 라인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젊은 청춘들과 밤새 애기할 수 있고, 현지식을 즐겨 먹을 수 있다면 이게 청춘이 아니고 무엇이 청춘이겠는가. 나의 젊은 날의 열정이 되살아 난 느낌이다. 모든 여행은 본질적으로 청춘의 열정을 동반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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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위에 놓은 재료에 따라 다양한 타파스가 만들어진다. 그 중에 최고는 엔초아 타파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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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얘기를 나눈 베를린에서 온 필립.

새로운 출발의 순례이기도 하다. 사실, 긴 순례를 떠난 것도 하나를 매듭짖기 위해선지도 모른다. 33년 공직생활의 인생 1막에 대한 매듭이다. 오래하기도 했고, 나의 모든 것이었다. 청춘을 바쳤고, 모든 정열을 쏟아부은 조국이다. 이제, 하나의 매듭을 확실하게 지어야만 다른 시작이 있을 것 같다. 길은 끝없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새로운 길이 시작되는 곳도 있다. 어떤 것의 끝은 또다른 무엇의 시작이기도 하다. 생장(Saint Jean)이 르퓌 순례길의 끝이면서 프랑스 순례길의 시작인 것처럼 말이다. 1600여km의 길을 걸어 도착한 산티아고의 어느 카페이름처럼 '내가 세상이다(EGO MUNDI)'를 외치고 싶은 걸까. 그렇다. 리스본의 항구를 보면서 또다른 출발을 기약해 본다. 대항해 시대에 거친 바다를 사로잡은 프론티어들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제 새로운 출발이다. 가자. 가자! 미지의 새로운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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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동행자였던 바다의 처연한 모습을 바라보는 필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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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가 많다. 내가 가야할 방향은 어디일까.

끝없는 창공을 날고 있는 비행기는 곧 한국에 도착한다. 되돌아 보면 아쉬움도 있다. 좀 더 고독하고,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희생하는 순례였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먼 순례길을 걸어온 순례자에게 다시 물어 본다. 왜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걸까? 무엇을 찾아 떠난 순례길인가? 먼 이국의 끝없는 순례길을 걷고 있던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아직도 그 답을 온전히 아는 것은 아니다. 걸으면서 늘 생각하던 화두이기에 조금은 손에 잡히는 것 같기도 하다. 고요를 느끼고, 고마움과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고, 청춘의 열정에 흠뻑 젖어 새로운 출발을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순례는 나에게 큰 의미가 된다.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은 앞으로 채워갈 일이다. 어쩌면 내가 영원히 가져갈 화두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순례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사진16
고독한 순례길. 나의 순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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