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현의 (과학) 강의록] 비운의 천재 앨런 튜링, 컴퓨터과학의 아버지이자 편견의 희생자
[조송현의 (과학) 강의록] 비운의 천재 앨런 튜링, 컴퓨터과학의 아버지이자 편견의 희생자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19.01.18 21:36
  • 업데이트 2019.02.06 16: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운의 천재 앨런 튜링, 컴퓨터과학의 아버지이자 편견의 희생자 
2017년 9월 부산 해운대구청 교양강좌 '과학과 함께한 인생여행'

 

 

베어 먹은 사과와 앨런 튜링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를 보여주며 ‘연상되는 게 무엇인가’고 묻는다. 십중팔구 스티브 잡스, 혹은 애플사라는 대답이 나온다. 무리가 아니다. 애플사의 로고가 바로 한 입 베어 먹은 사과이고 스티브 잡스는 애플사의 분신이니까.

이 글을 다 읽은 후 같은 질문을 받으면 다른 대답을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 입 베어 먹은 사과에는 애플사 로고 이상의 스토리가 숨어 있다.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 그 주인공은 바로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다. 잡스가 더 없이 존경했던 인물이다.

영국 패딩턴 태생(1912년)의 앨런 튜링은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를 나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논리학·대수학·수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시절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은 튜링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암호해독부대에 들어가 진가를 발휘했다. 독일의 암호기계 에니그마를 해독, 승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다. 튜링의 암호해독이 종전을 앞당기고 약 700만 명의 목숨을 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튜링이 에니그마의 암호체계를 풀기 위해 개발한 기계가 오늘날 컴퓨터의 원조이다. 1939년 봄베를 만든데 이어 1944년 클로서스라는 완전한 암호해독 기계를 개발했다. 클로서스는 프로그래밍 기능까지 갖춰 컴퓨터로 손색이 없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로 알려진 미국의 애니악보다 2년 앞선다.

튜링은 종전과 함께 컴퓨터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1950년 클로서스보다 한층 진보된 파일럿 ACE 컴퓨터를 만든데 성공, 상업화의 길을 닦았다. 승전의 영웅에다 컴퓨터의 아버지인 앨런 튜링의 앞날은 활짝 열린 듯했다.

그러나 1952년 어느 날 튜링은 갑자기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진다. 동성애를 했다는 혐의였다.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는 불법이었다. 튜링은 ‘추악한 외설행위’라는 죄목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는다. 단, 징역형 대신 화학적 거세형(약물요법)을 선택할 수 있다는 옵션과 함께.

튜링은 후자를 선택한다. 연구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약물요법은 튜링의 천재성을 급속히 감퇴시켰다. 심지어 가슴이 여자처럼 부풀어 올랐다. 튜링은 절망했다.

튜링은 유죄선고를 받은 지 2년만인 1954년 자신의 방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의 머리맡에는 한 입 베어 먹은 사과가 놓여 있었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를 좋아했던 튜링이 독이 든 사과를 베어 먹고 자살한 것이다.

영국 정부는 튜링이 동성애로 유죄판결을 받자 그의 모든 공적을 비밀에 붙였다. 동성애를 한 튜링을 ‘국가의 수치’로 여겼다고 한다. 영국은 독일 암호체계 해독과 최초의 컴퓨터 개발은 물론 앨런 튜링이라는 존재 자체를 지워버렸다.

영국 맨체스터 색빌 공원에는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를 들고 있는 앨런 튜링 동상이 있다. 발 앞 동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앨런 튜링,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이자 편견의 희생자’. 2012년 튜링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명예회복 운동이 영국에서 거세게 일었고, 이듬해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이 튜링을 사면했다. 튜링 사후 59년 만이다.

때마침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튜링은 재조명되고 있다. 그가 바로 인공지능의 개념을 맨 처음 체계화했기 때문이다. 튜링은 1950년 철학저널 ‘마인드(Mind)’에 실은 논문 ‘계산기와 지능’에서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기계의 지능을 판별하는 ‘튜링 테스트(일명 흉내게임)’을 고안했다. 튜링은 “기계가 인간을 흉내낼 수 있다면 지능을 가졌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구체적인 판별 방법을 제시했다.

튜링의 인공지능 판별법은 후배 컴퓨터 과학자들에 의해 한층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1991년부터 매년 시행되고 있는 ‘뢰브너 상’이라는 타이틀이 걸린 채터봇 게임(Chatterbot Game)이 그것.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컴퓨터(프로그램)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참, 애플사 로고는 잡스의 튜링에 대한 오마주(존경의 표시)라는 설이 있다. 애플사는 이를 부인했다. 인공지능이라는 단어가 컴퓨터만큼이나 익숙해진 시대에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는 튜링을 연상시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동아대 겸임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