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오의 '생활법률 산책' (11)상속 이야기 ... 혈연의 굴레, 혹은 횡재
이상오의 '생활법률 산책' (11)상속 이야기 ... 혈연의 굴레, 혹은 횡재
  • 이상오 이상오
  • 승인 2019.01.29 17:20
  • 업데이트 2019.02.08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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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의 동생이 죽었습니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이 외롭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동생은 1억 원의 재산을 남겼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재산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상속이 됩니다. 동생이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면 부인과 자녀가 그 재산을 나누어 가지지만, 동생은 홀로 살았고 부모도 모두 돌아가셨으므로 가장 가까운 가족은 형제들뿐입니다. 동생에게는 두 명의 형이 있었으므로 동생의 재산은 형들이 똑같이 나누어 상속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상속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납니다. 형제들의 어머니는 오래 전 아버지와 헤어지고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 어머니도 이미 돌아가셨으나 어머니와 다른 남자 사이에 난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같고 아버지는 다른, 동복이부(同腹異父) 동생이 확인된 겁니다. 평생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그 존재조차 몰랐던 남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도 형제로 봐야 할까요? 그냥 무시하면 되지 않나 싶지만, 그게 쉽지 않습니다.

우리 상속법에 따르면, 죽은 사람에게 배우자와 자녀가 있으면 그들이 가장 먼저 공동으로 상속을 받고, 배우자와 자녀가 없으면 그 다음으로 부모가 상속을 받습니다. 부모도 없으면 형제들이 그 다음 순위가 되고, 형제들도 없으면 3촌을 거쳐 최종적으로 4촌까지 상속순위가 내려갑니다. 쉽게 말해서 촌수가 가까운 순서대로 상속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면 되지만, 5촌 이하까지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같은 촌수에 여러 명이 있으면 공동으로 상속을 받게 됩니다. 상속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재산은 최종적으로 국가에 귀속됩니다. 세부적으로 복잡한 관계가 있을 수 있지만 원칙은 간단합니다.

상속에서는 혼인(법률혼)과 혈연의 힘이 절대적입니다. 30년을 부부로 살아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배우자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합니다. ‘입양’과 같이 법에서 정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피가 섞이지 않으면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와 재혼한 계모의 재산을 아들이 상속받을 수 없고, 아버지의 배다른 아들이 내 어머니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혈연이 개입됩니다. 평생 친자식으로 알고 지내다가 나중에 유전자 검사 결과 남의 자식인 것이 밝혀지면 상속권도 없어집니다.

상속에서 형제는 모두 같은 순위이고, 같은 배에서 태어났건 다른 배에서 태어났건 차별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 둘 중 하나의 피만 이어받으면 법적으로는 모두 같은 형제로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재가한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사이에 낳은 아들도 상속에서는 나의 형제가 되는 겁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기가 막힌 일이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법은 개개인의 사정보다는 사회적 안정을 더 중요하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속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 근거를 혈연에서 찾는 것이 가장 명확하고 분란의 소지가 적기 때문입니다.

위의 사례에서, 갑자기 나타난 알지도 못하는 동생은 역시 평생 본적도 없고 별로 슬플 일도 없는 형의 죽음으로 인해 수 천만 원의 횡재를 하게 됩니다. 안 줄 방법이 있냐고요? 없습니다. 설령 무시한다고 해도 나중에 알게 되면 그 동생의 상속지분만큼 모두 토해내야 합니다.

상속에서 이와 비슷한 경우가 종종 발생하지만 정 반대로, 재산은커녕 죽은 사람의 빚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죽고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란 손자가 할아버지가 죽은 후 할아버지가 남긴 수억 원의 빚을 그대로 떠안은 안타까운 사연이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재산뿐 아니라 빚도 함께 상속됩니다. 재산은 없고 빚만 있을 때에는 상속을 받을 이유가 없고, 죽은 사람이 진 빚을 남은 가족에게 갚도록 하는 것도 가혹합니다.

그래서 법에서는 3개월간 시간을 줍니다. 그 기간 안에 상속받을 재산이나 빚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해서 빚이 감당이 안 될 경우 상속을 포기하는 제도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재산과 빚을 정확히 확인하기가 곤란한 경우에는 빚을 다 갚고 남는 재산만 상속을 받겠다는 의사를 미리 법원에 신청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한정승인이라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남긴 거액의 빚을 떠안은 손자는 주변에 법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할아버지의 빚이 있는 사실을 알고도 3개월이 지나도록 빚을 상속받지 않을 수 있는 아무런 법적 절차를 취하지 못했습니다. 꼼짝없이 할아버지의 빚을 갚아야할 처지가 된 겁니다. 법적으로 파산이나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방법이 있으나, 절차와 조건이 무척 까다로워서 좋은 결과를 보장하기 어렵고, 최근에는 인정 요건이 더 까다로워 졌다고 합니다. 비교적 간단한 절차로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일이었는데, 때를 놓치는 바람에 혈연의 굴레를 벗어버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법률서비스가 사회의 구석구석에 미치지 못한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물려받는 재산보다 빚이 많은 경우, 상속포기가 모든 것을 깨끗이 잊게 하는 손쉬운 방법이기는 하지만 섣부르게 결정을 해서는 안됩니다. 혹시나 숨은 재산이 없는 지 잘 살펴야 합니다. 최근에는 법원이나 행정기관의 정보 시스템을 이용해서 죽은 사람이 남긴 재산을 확인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으나 과거에는 숨은 재산이 있는지 모르고 빚 독촉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상속을 포기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 뜻밖에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가까운 친족들이 모두 상속포기를 하면 최종적으로 4촌까지 상속권이 내려갑니다. 죽은 사람의 얼굴도 거의 보지 못한 4촌이 상속을 포기하려고 하는 중에 죽은 사람에게 빚을 갚고도 남을 거액의 숨은 재산이 발견되는 일도 있습니다.

상속을 한 번 포기하면 민법에 규정된 특정 조건 외에는 상속포기를 다시 취소할 수 없으므로, 그 특정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 한 그 재산은 최종 상속인인 4촌에게 모두 상속됩니다. 어느 날 회사를 잘 다니던 동료가 4촌이 남긴 막대한 재산을 상속 받아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극히 드문 일이겠지만 불가능한 사례는 아닙니다. 혈연의 힘은 이렇게 막강합니다.

굴레가 되었든, 횡재가 되었든 피할 수 없는 게 혈연이지만 상속은 종종 복잡한 문제를 야기하고 상속재산이 클수록 분쟁은 더 격렬해 집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격렬한 분쟁이 생겨도 상속법은 철저히 가장 가까운 핏줄을 찾아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다음에는 실제로 있었던 매우 큰 상속분쟁을 소개 하겠습니다.

<법무법인 '서면' 사무국장>(051-817-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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