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미서 시 '봄볕의 친구들' 감상문 ... 다가올 혼합현실 예시
[기고] 박미서 시 '봄볕의 친구들' 감상문 ... 다가올 혼합현실 예시
  • 창이 창이
  • 승인 2019.03.02 16:41
  • 업데이트 2019.03.23 15: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by Pedro Roldan Molina

박미서의 시 ‘봄볕의 친구들' 감상

-혼합현실 속, 봄의 친구들-

 

봄물어린 아이의 손은
흰고래의 명민한 귀 기울임,
환히 내재된 의 보드라운 두 자락

서성이는 밤하늘 섬에서
하얀 늑대 등을 타고
순진무구함의 지극한
청백색 물결의 눈을 던져주지.

햇살의 입맞춤 같은 윤기
비밀의 봄을 지으며
살아가는 아이들

하늘색 제비꽃 속에서 나오는
하얀배 아비새도
황금쟁반의 태양을 만들지.

단 한 번 광휘의 물고기떼
그 진홍자락이
고요한 집으로 가는 입가 너머
사랑스런 달음박치네.

검푸른 파도 바퀴살에
한없이 반짝이는,
하얀 민들레 타고 왔다네.

풀잎 피리소리가
나란히 자비로운 수정에 든 눈을 깨우고

오래 오래 다독였을 파편들은
차가운 복사꽃 등대 아래
청청히 안기기를

기도의 사랑 방에 깃든
진주 샛별의 물,
이끌어내어 마주 바라보기를...
신뢰의 바닷속 비어떼가
너울거리네

혼합현실의 예시

박미서 시인의 이 시는 앞으로 다가 올 ‘혼합현실’을 예시한다. 가상현실과 실재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지금 혼합된 현실, 즉 혼합현실 속에 산다. 두 현실 사이에서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 사이보그 인간과 유전자 복제 인간과 우리는 앞으로 혼재된 공간 속에서 함께 살게 될 것이다.

혼합현실을 시인은 네 가지 동물들과 네 가지 식물들로 비유한다. 그리고 이들 동물들은 바로 우리 인간들의 미래 모습들이다. 이들 네 가지들은 비어의 네 가지 변신하는 모습으로 혼합현실을 시공간적으로 연출한다.

실로 이 시는 우리로 하여금 순환하는 변화의 유혹으로 우리를 이끈다.

‘빛’과 ‘볕’의 스펙트럼

‘봄볕’이란 시제에 ‘빛’이란 말이 네 번 나온다. 이 시는 봄날의 ‘빛’과 ‘볕’이 만들어 내는 스펙트럼spectrum으로 이해할 수 있다. 빛의 스펙트럼이 변하면 ‘볕’이 된다. 예를 들어서 철을 가열하면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색깔이 ‘빨-주-노-초-파-남-보’ 순으로 변한다. 그리고 햇빛의 파장이 짧아질수록 햇볕은 따가워진다. ‘빛’은 색이고 ‘볕’은 열이다. 우리말의 이런 멋을 한껏 활용한 멋 부림이 이 시이다.

봄에서 여름까지 무지개 색깔대로 빛의 파장이 짧아지면 한 여름이 된다. 이 시에서 빛의 의미를 따라가다 보면 스펙트럼이 변하고, 이에 따라 봄볕이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시인이 온도계 측정법으로 이를 말하지는 않지만, 시에 등장하는 동물인 흰고래, 하얀늑대, 아비새, 비어떼와 식물인 제비꽃, 민들레, 풀잎피리, 복사꽃 같은 단어들이 빛의 스펙트럼이 변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즉, 빛의 파장 변화를 이들 동식물 이름들이 말해주기에 충분하다.

4 동물 - 4 식물
흰고래 - 제비꽃
하얀늑대 - 민들레
아비새 - 풀잎피리
비어떼 - 복사꽃
네 동물 -  네 식물

동물은 공간 개념을 식물은 시간 개념을 나타낸다. 이들은 모두 봄볕의 친구들이다. 봄철의 이들 식물들은 자연 속의 시계와도 같다. 이들이 들판에 피는 시간표는 인간의 그것과 같다. 다시 말해서 이들이 싹터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이 봄의 시간표이다.

이들 네 동물들은 바다, 땅, 그리고 물속을 유영하고 땅 위를 달리고 하늘을 난다. 이들은 모두 시간의 명령에 따라 네 단계로 변신을 해야 한다.

비어의 변신

이 시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비어떼와 아비새이다. 비어飛魚란 나는 물고기이고, 아비새는 공룡과 그 역사를 같이 하는 살아 있는 화석 새이다. 나는 물고기 비어는 용의 상징이며, 동시에 이 시는 주역의 건괘로 상징 되는 잠룡潛龍, 전룡田龍, 현룡現龍, 비룡飛龍의 화신들이다. 이들 네 동물은 한 동물, 비어의 다른 형태들이다. 그것이 물속에 있느냐, 땅에 있느냐, 하늘 공중에 있느냐에 따라서 네 종류의 용들로 변신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서, 이들 동물들은 하나의 비어가 공간에 따라서 변신하는 모습이다. 변신을 위해서는 시간이란 기제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네 종류의 식물들이다. 제비꽃, 민들레, 풀잎, 복사꽃이 순서대로 피어날 때 비어는 잠룡에서 현룡, 전룡에서 비룡으로 비상한다.

네 식물들에게 햇빛과 햇볕의 스펙트럼을 조화시켜 주는 것을 시인은

햇살의 입맞춤 같은 윤기
비밀의 봄을 지으며
살아가는 아이들

이라고 했다. ‘햇살’은 햇빛과 햇볕을 조화시킨 어휘로서 마치 과학자들이 발견한 상수 h(플랑크 상수)와도 같다. 이 상수가 발견된 순간 빛과 볕의 비례 관계를 알게 되었다. 막스 프랑크의 공헌이다. 햇살의 입맞춤이란 햇빛과 햇볕의 입맞춤이다.

‘밤하늘 섬’ : 새하늘과 새땅

시인은 이런 초현실적인 공간을 황폐해진 이 지구의 피안으로 보는 것 같다. 이 섬에는 비룡이 돌아갈 고향인 동시에 이 지구를 구할 아이가 ‘하얀 늑대 등을 타고’ 다시 땅으로 하강하는 채비를 하는 곳이다.

시인은 이 지구를 사랑한다. 그러나 비어가 다시 바다에서 땅을 거쳐 비상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순환이 이루어져 ‘새 하늘과 새 땅 New Heaven New Earth’을 갈구한다.

이렇게 시의 구조를 네 동물과 네 식물로 공간 축과 시간 축을 직조한 후, 이 시를 아랫줄에서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읽어보면 시의 조감도가 그려진다.

신뢰의 바닷속 비어飛魚떼가
너울 거리네

“너울대는 하얀 파도 진홍빛 비어가 맴돌더니 한 편의 시가 되었네”

그러나 ’그 나라 하늘 빛‘은

박미서 시인의 ‘봄볕의 친구들’ 속 밤하늘에는 아직 섬이 남아 있다. 그러나 재미 시인 마종기는 ‘그 나라 하늘 빛’(1996)에서 태평양 너머 반대쪽에서 박 시인과는 또 다른 하늘빛을 바라본다.

그 나라 하늘 빛은 만길 폭이겠지
어깨 감싸주던 하늘 빛 어디 다 감추고
매연과 소음의 유홍관 철철이
나의 마음은 잿빛으로 덮고 있더니.
...
아지랑이 잠재우고 느슨히 일어서는 하늘
...
이제는 가끔 혼자 가는 꿈에서도
이상한 빛이 보이기 시작하네
땅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빛,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들의 길,
눈부신 그 빛들 서로 만나서
갑자기 놀라고 반기는 표정도,

(마종기, ‘그 나라 하늘 빛’ 중에서)

조국의 하늘에 비어들이 오르내리는 그 원형이정元亨利貞의 공간이 마종기에게는 잿빛으로 덮고 있다. 마종기 시인은 하늘과 땅이 서로 오르내리는 하늘길에서 만남을 ‘놀람’으로 바라본다. 하늘과 땅을 연결해줄 수 있는 네 마리도 네 풀들도 그에게는 없다.

그러나 바로 그가 그리는 조국의 하늘 아래에 사는 박 시인은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봄볕의 친구들’이 있으니깐.

루르디나 파티마의 서양 처녀들이 본
그 나라 하늘빛은 기다려 주겠지,
그 빛 속에서 깊은 말 들리는 것
내 귀가 문을 열면 알아들을까.

한 시인은 이국 처녀, 유토피아의 신기루 같이, 조국의 하늘을 그리는 다른 시인에게 손짓한다. 그러나 햇살 속에서 만나지 못한 채, 시인들의 얼굴은 비닐봉지 안에 차단돼 있다.

“귀가 문을 열면 알아들을까”

<창이 / 미주 오렌지카운티 거주>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