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의 만주 일기 ... (1)만주개장수
박명호의 만주 일기 ... (1)만주개장수
  • 박명호 박명호
  • 승인 2019.04.02 12:29
  • 업데이트 2019.04.02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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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몽골 만주리에서 필자

우리에게 만주 하면 떠오르는 것은 ‘독립군’과 ‘개장수’이다. 만주는 우리에게 두 번의 긴 단절이 있었다.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천 년 이상의 단절이 있었고, 해방 뒤 이념의 대립으로 50여 년 단절의 시기가 있었다. 역사에는 정사가 있고 야사가 있듯이 문학에도 기록문학이 있고 구비문학이 있다. 독립군 이야기가 기록문학이고 정사라면 개장수 이야기는 야사이고 구비문학이다. 그런데 그런 만주 이야기도 거의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어릴 때는 이웃 어른들로부터 만주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총 들고 싸운 독립군 이야기가 아니라 웃음과 눈물이 있는 그러면서 만주라는 낯선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그런 신비하고도 호기심이 넘치는 이야기들이었다. 언제부턴가 그런 이야기를 통칭 ‘만주개장수 이야기’라 하고, 그 시절 그곳의 경험을 ‘개장수 시절’, 또는 약간 허풍이 가미되면 ‘오토바이 타고 개장사 할 때’라 한다. 그 말 속에는 만주를 경험하지 못한 해방 후 세대들에게 그들이 가졌던 그 어떤 자부심이 섞여 있었다. 그것이 발전되어 나중에는 과거 잘 나가던 시절(비록 고생을 했더라도)에 허풍 섞인 자랑을 할 제면 모두 ‘왕년 만주 개장수 시절’로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하던 세대들이 지난 세월 동안 하나 둘 이 땅에서 사라져 버렸고, 그 이야기를 듣던 세대들도 중년 이상으로 늙어버렸다. 이제 그 이야기는 더 이상 재생되지 않는다. 다만 정사와 기록문학이랄 수 있는 독립군 이야기만이 교실에서 또는 책으로 새로운 세대들에게 반복될 따름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개장수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낸 것이 영화 ‘놈놈놈’이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일지라도 단숨에 500만이 넘는 관객이 찾을 만큼 인기를 끈 것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만주개장수’ 이야기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거기서 실제 중심인물은 ‘좋은 놈(정우성 분)’이 아니라 ‘이상한 놈(송강호 분)’이라 할 수 있는 것도, 그들의 대사 속에 ‘양반 놈 밑에 사나 일본 놈 밑에 사나 마찬가지다’라고 비아냥대는 것도 역사책에 기록된 것처럼 민족이나 계급과 같은 거대 담론이나 이념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인간의 이야기 곧 개장수 이야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놈놈놈이 보물을 찾아 헤매듯이 당시 조선의 청년들은 꿈을 찾아 만주를 헤맸다. 그러한 이야기가 곧 ‘개장수’ 이야기인 것이다.

그들이 만주에서 경험한 수많은 종류의 일들이 있었을 텐데 왜 두루뭉술하게 ‘개장수’라 했을까? 당시 만주에는 개장수가 정말 그렇게 많았을까...

압록강변에서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만주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만주 어디를 가든 개고기 식당이 있다. 그것은 만주 어디에도 조선족이 있다는 뜻이다. 한족이나 만주족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특히 만주족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개를 많이 기른다. 그래서 밑천 없이 만주로 건너온 조선 사람들이 가장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곧 ‘개장수’였다. 이미 늙은 개는 말만 잘하면 공짜로 얻을 수도 있었다. 헐값에 개를 구해 개고기를 파는 장사야말로 누가 봐도 가장 손쉬운 돈벌이임에 틀림없다.

물론 독립군 이야기보다 개장수 이야기에는 허풍이 많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는 독립군 이야기에 없는 우리의 웃음과 눈물이 배여 있는 진솔한 인간적 냄새가 담겨 있다. 나는 본디 정사보다 야사를 더 믿는 편이다. 우리가 학습한 역사들이 어쩌면 속이 빠져나가버린 뱀허물과 같을지 모른다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독립군 이야기보다 개장수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이유이며, 때로는 정사보다 야사가 더 진실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개 사이소-’

여럿이 둘러앉아 농(弄)짙은 질문과 대답으로 이어지는 만주개장수 놀이는 꽤 재미있는 놀이였다. 맨 처음 진행자가 바로 옆 사람에게 ‘개 사이소’ 하면 옆 사람은 값이 얼만가, 아니면 어떤 종자인가, 순한가, 등등 묻는다. 그러면 대답을 할 때 여러 가지 짓궂은 행동을 섞여 하면 그것을 다시 옆 사람에게 전하고 하면서 길게 이어진다.

만주개장수 이야기나 개장수 놀이가 사라진 것은 우리의 정신 건강에 그만큼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박명호

◇소설가 박명호는

▷경북 청송 출생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장편 '가롯의 창세기', '또야, 안뇨옹'
▷소설집 '우리 집에 왜 왔니', '뻐구기뿔', '어떤 우화에 대한 몇 가지 우울한 추측'
▷잡감집 '촌놈과 상놈' 등
▷부산작가상, 부산소설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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