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형 시인의 '시 밥상' ... (3)복사꽃 아래 천년 / 배한봉
전다형 시인의 '시 밥상' ... (3)복사꽃 아래 천년 / 배한봉
  • 전다형 전다형
  • 승인 2019.04.18 06:49
  • 업데이트 2019.04.18 06: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다형

복사꽃 아래 천년 / 배한봉

봄날 나무 아래 벗어둔 신발 속에 꽃잎이 쌓였다.

쌓인 꽃잎 속에서 꽃 먹은 어린 여자아이가 걸어 나오고, 머리에 하얀 명주수건 두른 젊은 어머니가 걸어 나오고, 허리 꼬부장한 할머니가 지팡이도 없이 걸어 나왔다.

봄날 꽃나무에 기댄 파란 하늘이 소금쟁이 지나간 자리처럼 파문지고 있었다. 채울수록 가득 비는 꽃 지는 나무 아래의 허공. 손가락으로 울컥거리는 목을 누르며, 나는 한 우주가 가만가만 숨 쉬는 것을 바라보았다.

가장 아름다이 자기를 버려 시간과 공간을 얻는 꽃들의 길.

차마 벗어둔 신발 신을 수 없었다.

천년을 걸어가는 꽃잎도 있었다. 나도 가만가만 천년을 걸어가는 사랑이 되고 싶었다. 한 우주가 되고 싶었다.

◇배한봉
▷경남 함안 출생. 1998년 《현대시》등단.
▷시집『흑조(黑鳥』『우포늪 왁새』외

▶복사꽃 만발한 봄날 나무 아래 벗어놓은 신발은 한 켤레의 꽃신이다. 그 꽃신은 꽃의 이력이다. 그 꽃신은 꽃잎 먹은 어린아이가, 머리에 하얀 명주수건을 쓴 젊은 어머니가, 허리 꼬부랑한 할머니가 지팡이 없이 신고 나온 꽃신이랴, 차마 신을 수 없는 신발이다.

꽃잎 한 장에서 우주를 본다. 채울수록 가득 비는 꽃 지는 나무 아래의 허공을 본다. 한 우주가 가만가만 숨 쉬는 것을 본다. 꽃은 가장 아름다이 자기를 버려 시간과 공간을 얻는다. 떨어진 꽃잎 한 장에서 꽃길을 본 화자는 꽃씨를 기억하는 시간이었으리라. 가만가만 천년을 걸어가는 사랑이 되리라, 한 우주가 되리라 다짐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슬퍼하지 말자. 꽃 진자리 열매 맺는다. 꽃 지지 않고는 열매 달 수 없다. 우리 모두는 꽃이고 열매이고 꽃씨다. 천년만년 복사꽃 아래 벗어놓은 꽃신 쓰윽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전다형

◇전다형 시인은

▷경남 의령 출생
▷부경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졸업, 박사수료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등단

▷시집 '수선집 근처'(푸른사상사)

▷연구서 '한하운 시 공통 연구'

▷제 12회 부산 작가상 수상.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