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의 만주 일기 (5)만주족이 된 박씨(朴氏)들
박명호의 만주 일기 (5)만주족이 된 박씨(朴氏)들
  • 박명호 박명호
  • 승인 2019.04.29 13:16
  • 업데이트 2019.06.24 2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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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촌2 박보촌에서 모두 박씨들이 나란히 섰다. 맨 오른쪽이 심양의 소설가 고 박성군 선생, 그 옆이 나와 이름이 같은 박보촌 촌장
 박보촌에서 모두 박씨들이 나란히 섰다. 맨 오른쪽이 심양의 소설가 고 박성군 선생, 그 옆이 나와 이름이 같은 박명호 박보촌 촌장.

만주족이 된 박씨(朴氏)들

작은 할아버지 가족들은 만주로 갔다. 아버지는 사촌이 없어 늘 외로워했다. 몇 년 전에 내게 없었던 친 육촌이 찾아왔다. 이미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그 사촌들도 다 돌아간 세월이었다. 육촌은 한국에 연수생으로 왔다가 근 2년만에 우리를 찾았다고 했다. 그는 돌아가면서 한국에 다시 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두어 번 서류를 보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혈연관계를 뒷받침할 증빙서류가 부족했던지 우리 쪽의 성의가 부족했던지 육촌으로부터 소식이 끊어져 버렸다. 지난 진름 만주에 가면서 작은 할아버지네가 살았던 흔적을 더듬어보고 싶었다. 길림시 근처에 산다고 해서 근처까지 가는 길에 몇 곳을 수소문했으나 생각보다 어려워 포기했다.

그런데 심양에서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며칠 쉬다가 뜻밖에 17세기 때 건너온 것으로 추정되는 박가(朴家)들의 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역시 성씨가 박가인 심양의 박성군 소설가가 안내해 줬다. 가까운 작은 할아버지네 흔적을 찾으려다 엉뚱하게 300년도 더 된 박가들의 흔적을 더듬는다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었다.

심양에서 한 시간 남짓 단동 쪽으로 가면 뻔시(本溪)라는 제법 큰 도시가 나온다. 뻔시에서 다시 택시로 두 시간 산골로 들어가면 인근에 세계에서 가장 긴 수로가 있는 번계수동 동굴이 있다.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박보(朴保) 촌이 나왔다. 큰 냇물을 사이에 두고 두 마을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촌장 이름이 공교롭게도 나와 이름이 같은 ‘박명호’였다.

그들은 명·청 전쟁 때 명나라의 강요로 마지못해 파병했던 강홍립 장군의 부대원이었던 박영원(朴英遠)의 11-12대 후손들이다. 강홍립 장군이 임금(광해군)의 밀명으로 청에 항복을 하고, 전쟁은 결국 청의 승리로 끝났지만 국내 여론 때문에 귀국을 못하고 거기서 눌러 살았는데 다른 성씨들은 다 사라지고 유독 박씨 성만 대를 잇고 있었다. 총 가구수가 200가구쯤 된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그 사람들은 강홍립이 누군지도 모른다. 다만 자신들의 조상이 출병할 때 조선의 남쪽에서 왔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전 5대까지는 조선말을 썼으나 지금은 박(朴)이라는 중국인에게 없는 성씨 외에는 거의 만주족화 돼버렸다.

박보촌3  박보촌 앞을 흐르는 내를 배경으로...우리 나라 어느 시골마을과 비슷한 풍경이다.
박보촌 앞을 흐르는 개천을 배경으로. 우리나라 어느 시골마을과 비슷한 풍경이다.

1982년도 중국에서 민족조사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쳤을 때 그들은 박씨 족보를 중요 증거로 조선족임을 내세웠다. 오히려 그때 한국이 아닌 조선족으로 등록이 된 것에 불만을 가질 정도로 뿌리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있었다.

일본의 인기 작가였던 가지야마 도시유키의 소설 족보가 생각났다. 창씨개명이 한창일 때 경기도에 살았던 설 씨 성의 한 양반의 이야기다. 그 양반은 자신의 성, 곧 족보에 대를 끊지 않기 위해 많은 돈을 당시 일본군대에 헌납하기도 하고 갖은 노력으로 다 하다가 결국 죽음으로써 족보를 지킨다는 내용이다. 일본의 한 작가 입장에서도 자신들이 가질 수 없었던 족보에 대한 대단한 긍지를 부러워하는 시각이 역력한 소설이었다.

하지만 만주 박보촌의 박가들은 창씨개명에 저항했던 설 씨네 양반들보다 훨씬 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족보를 지키고 있지 않는가. 당시 파병되었던 1만여 명 가운데 하나의 족보만 이어졌다는 것이 그것을 입증한다.

조선족에 대해서도 별다른 친밀감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한국의 대통령 이름도 몰랐다. 서울과 부산이라는 도시는 들어봤다고 했다. 촌장이 항렬표를 즉석에 쭉 적어 보여줬다. 시조 69대손이며 신라 땅에서 쭉 살고 있는 나도 잘 모르는 것을 그들은 정확하게 외고 있었다.

당신들의 특징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고집이 세고 욱 하는 성질 때문에 종종 손해를 볼 때가 많다-’고 했다. 그렇고 보니 진정 박 씨는 맞는 것 같았다. 아니 허허 웃는 모습에서 먼 일가를 만난 것 같았다. 거기도 이제는 젊은이들이 도시로 많이 나가버렸다. 그러나 만주 전역에서 불고 있는 한국행 붐에도 아직 한국에 간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들은 과연 만주족 뾰(朴)씨인가, 조선족 박(朴)씨인가.

◇소설가 박명호는

▷경북 청송 출생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장편 '가롯의 창세기', '또야, 안뇨옹'
▷소설집 '우리 집에 왜 왔니', '뻐구기뿔', '어떤 우화에 대한 몇 가지 우울한 추측'
▷잡감집 '촌놈과 상놈' 등
▷부산작가상, 부산소설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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