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의 만주 일기 (7)도문행 기차에서 만난 사람 (하)아사꼬와 콩쥐
박명호의 만주 일기 (7)도문행 기차에서 만난 사람 (하)아사꼬와 콩쥐
  • 박명호 박명호
  • 승인 2019.05.13 21:38
  • 업데이트 2019.05.13 2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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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행 기차에서 만난 사람 (하)아사꼬와 콩쥐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꼬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ㅡ 피천득 「인연」 中

도문행 열차 안에서 만난 콩쥐와 함께

콩쥐와 나는 피천득의 인연처럼 세 번 만났다. 첫 번째는 아가씨 때였고, 두 번째는 결혼해 첫 아기를 낳았을 때였고, 세 번째는 제법 중년의 티가 날 때였다. 첫 만남이 참 극적이었다면 세 번째 만남은 안 만났으면 했다. 지난 주 일기 중 도문행 기차간에서 북한의 고위 간부로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가 외면받았다고 했는데 그때 옆에서 ‘남과 북...’이라면서 묘한 표정을 지었던 아가씨가 곧 ‘콩쥐’다. 나는 그때 그녀의 묘한 표정이 재미가 있어 통로에 앉아서도 줄곧 그녀 쪽으로 눈길이 갔다. 그녀도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서도 흘깃흘깃 내 쪽으로 눈길을 줬다.

순도 100퍼센트의 자연미를 갖추고 있었다. 지금 한국 땅에는, 그런 한국적 순수 자연미를 갖춘 여자는 이미 멸종되었다. 콩쥐는 우리의 그러한 순종의 미(美)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활달한 아가씨였다. 그녀는 북경에서 맨몸으로 뛰면서 사업을 했다. 그래서인지 중국 사람 천 명에 한 대 정도인 고급 승용차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 기차간 인연으로 며칠 뒤 훈춘 여행의 안내를 부탁했다. 그녀는 매우 좋아했다. 아침 약속 시간에 자신의 하얀 승용차를 몰고 나타났다. 자신의 차 색깔과 같은 하얀 치마에 받친 빨간 블라우스에다, 길게 빗어 내린 생머리는 그야말로 벌판을 질주하는 한 마리 아름다운 야생마처럼 신선했다. 동행한 전용문 소설가와 조성래 시인도 차에 오르면서 연신 벌어지는 입을 다물 줄 몰랐다.

훈춘 가는 길 두만강 여울목에 잠시 들렀다. 센 물살의 여울물이 흐르는 자갈 강변이었다. 뛰엄뛰엄 키 큰 미루나무와 비술나무는 우리를 과거 속으로 유배시켜 버린 것 같았다.

두만강 강변에서 콩쥐와 함께

강변에 앉아 단소도 불고 노래도 불렀다.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리운 옛날 노래를 불었던 것 같다. 아득한 옛날 속에서 흙냄새 나는 우리의 누이들과 함께 즐거웠던 시절의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깊은 황산 골짝을 돌아가는 두만강의 빠른 물살을 보면서 우리의 시간도 빠르게 과거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뒤에도 우리는 그녀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갔다. 그녀의 닉네임이 콩쥐였다. 콩쥐는 어느덧 우리 모두의 연인과 누이가 되었다.

두 번째 만남은 삼 년 뒤 겨울이었다. 그때도 만주여행에 조성래 시인이 동행을 했다. 조 시인은 콩쥐가 첫 아기를 낳았다면 여러 가지 선물을 준비해 갔다. 나 역시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했다. 콩쥐는 결혼하고 아기까지 낳았지만 여전히 우아했다. 그녀는 우리의 옛날 누이였으므로 결혼하고 아기 낳았다 해서 축하해 줄 일이지 인연을 끊어야 할 일은 아니었다. 애초의 우리의 만남이 순수했으므로 좋은 대접도 받았다.

세 번째 만남은 몇 해를 건너 뛴 여름이었다.

햇볕이 뜨거운 한낮 정오 무렵 나는 찻집 창가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저 만큼서 화려한 양산이 햇볕 아래서 눈이 부셨다. 그렇게 색깔이 화사한 양산은 요즈음은 본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단오 명절 때 그네 장에 모여들던 여자들의 양산이었다. 그 양산 색깔은 분내와 함께 다가왔다. 눈이 부신 추억과 같았다. 나는 양산의 주인공이 콩쥐였으면 했다. 양산이 내가 앉아 있는 창 쪽으로 다가와서 안을 기웃거렸다. 나는 너무 눈이 부셔서 눈을 찌푸린 채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리곤 이윽고 양산을 접고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 콩쥐였다.

짙은 화장을 한 그녀에게서 옛날의 분냄새가 물씬 풍겼다. 하지만 짙은 화장 속에서 눈가 잔주름과 기미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옛날 우리의 누이나 어머니들의 모습이었다. 그 사이 그녀는 완연한 중년이 되어 있었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그 사이 늙어버린 것 같은 모습에 아니 지극히 인간적 모습에 실망이 컸다.

우리는 한낮에 만나 점심을 먹고 별로 할일이 없었다. 그녀가 자주 간다는 점집에 갔다. ‘도사’라는 중은 한국에 가고 없고, 부인이 끓여주는 차만 마시다 나와 긍덕기 제과점에 가서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마시고 헤어졌다. 헤어질 때도 전처럼 그리 애절하지가 않았다. 나는 변한 그녀의 모습보다는 변해버린 내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환상이 깨어진 것일까.

콩쥐에게 가졌던 환상은 무엇일까. 영원히 그 순수하고 앳된 누이의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집착이요, 자기 최면이요, 환상이 아니었을까. 누이도 나이를 먹고 주름이 진다는 사실을 피천득과 나는 몰랐던 것 같다. 아사꼬든 콩쥐든 미이라처럼 고정된 이미지로만 남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려면 정말 한 번 만나고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그런 인연은 사진 한 장보다 나을 것 없지 않는가.

박명호

◇소설가 박명호는

▷경북 청송 출생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장편 '가롯의 창세기', '또야, 안뇨옹'
▷소설집 '우리 집에 왜 왔니', '뻐구기뿔', '어떤 우화에 대한 몇 가지 우울한 추측'
▷잡감집 '촌놈과 상놈' 등
▷부산작가상, 부산소설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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