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문학론’의 임종국과 무라카미 하루키 (하)친일(적폐) 청산의 현재적 의미
‘친일문학론’의 임종국과 무라카미 하루키 (하)친일(적폐) 청산의 현재적 의미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9.06.07 15:49
  • 업데이트 2019.06.10 15: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열단장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한 약산 김원봉의 서훈 논란을 보도하는 KBS의 한 장면.

서정주는 시 「종천순일파?」 『팔할이 바람 - 담시로 엮는 자서전』(해원출판사, 1988)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그러나 이 무렵의 나를 / ‘친일파’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의가 있다.(중략)

‘이것은 하늘이 이 겨레에게 주는 팔자다’ 하는 것을 / 어떻게 해서라도 익히며 살아가려 했던 것이니 / 여기 적당한 말이려면 /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 같은 것이 괜찮을 듯하다.(하략)

서정주의 이 고백은 8·15 직후 조선청년문학가협회의 주도자였다든가, 자진하여 이승만 대통령 전기를 집필한 사실, 그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웃음을 “오천년 이래 최고의 미소”란 찬사나, “한강을 넓고 깊고도 맑게 만드신 이여 /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전두환대통령각하 제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1987.1.18.)라고 노래한 점 등등으로 미뤄볼 때 친일문학의 지향점과 분단시대 순수문학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전북 전주의 사학재단인 완산학원 설립자 김모(73) 씨가 30억 원대의 학교 재산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9일 검찰에 구속됐다. 그는 학생들이 먹는 급식재료 계약까지 손을 대 비자금을 챙기고도 교육청 감사반을 향해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만큼 위세가 당당했다.

완산학원 비리가 불거진 것은 지난 1월, 한 기간제 교사에 의해서였다. 그는 설립자가 일상적으로 폭언을 하고 교권을 침해하고 있는데도 모두 침묵하고 있다면서 비리 의혹들을 제보했다. 취재 결과 설립자는 교내에서 ‘신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있었다. 교장과 교감, 부장급 교직원들이 수요일마다 설립자의 골프 라운딩에 참여하기 위해 조를 짜고 대기한다는 전언이 나올 정도였다. 그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정교사들은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한 교사는 “설립자의 갑질을 어느 누가 모르겠느냐. 사학이라는 것이 설립자 가족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보고도 못 본 척할 뿐이다. 사학에 근무하려면 ‘쓸개’를 빼놓고 살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다만 기간제 교사 한 명이 나서 학교를 바로 잡으려 했다는 게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전했다.

문제를 제기한 기간제 교사는 경향신문이 설립자의 갑질 의혹(1월 24일자 10면)을 보도한 지 며칠 만에 이 학교에서 쫓겨났다.**

미당은 문단의 원로로서 대접 받으며 천수를 누렸다. 모르면 몰라도 쫓겨난 기간제 교사는 신산한 삶에 애면글면 허우적거리고 있을 것이다. 왜 이런 부정의不正義가 독판치는 세상이 되었을까?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가 그 답의 실마리를 준다.

사르트르는 독일로부터 해방된 프랑스에서 「협력자는 무엇인가」란 글을 썼다. 그는 나치 점령 아래서 친독 협력을 했던 지식인 정치인 종교인들을 분석하면서, 치밀하게 그들을 관찰했더라면 훨씬 먼저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친독 협력자의 정신사적 맥락이 멀리 프랑스대혁명까지 소급하여 혁명반대의 국왕 옹호 보수주의자를 거론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하여 체질적인 반감을 가지며, 온갖 개혁과 개방과 진보를 외면하는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들이 결국은 정신사적으로 파시즘-외세 의존적 특권향유 이데올로기를 신봉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그렇다. ‘천황 폐하 만세’를 부른 미당의 친일행위를 ‘상황논리’로 눈 감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전두환에게 송시를 읊고, 전두환의 웃음을 “오천년 이래의 최고의 미소”란 낯간지러운 찬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뼛속까지’ 권력에 기생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정신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아마 그 기간제 교사는 일제 때 태어났더라도 독립투사는 몰라도 적어도 적극적 친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미한 평범한 생활인들에게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보통의 문화생활 영위는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한다. 그래서 ‘현실’이라는 구차한 변명으로 자신의 비겁함과 악에 대한 침묵을 정당화한다. 미당의 처세술이나 정교사의 침묵을 내면화하고, 기간제 교사의 의로움에는 ‘부끄럽고 참담해’ 할 뿐이다. 그러나 정녕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사회적 증거의 원리’이다. 사회적 증거(social proof) 원리란 많은 사람이 하는 행동이나 믿음은 진실일 것이라고 생각해, 그것이 옳건 그르건 따라서 하는 경향을 말한다. 다음의 에피소드는 사회적 증거의 단적인 예이다.

어느 가정주부는 사회적으로 폭발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JTBC 드라마 <SKY 캐슬>을 보면서 “에휴, 서울대 의대가 뭐라고 저 난릴까. 아이 의대 보내려고 돈 수십억 원을 쓰고 엄마가 자살까지 하고······ 정말 한심하다 한심해”라고 개탄했지만, 5분 후 이렇게 말했다. “근데 <스카이 캐슬> 저 집 진짜 좋다. 인테리어도 고급지고, 염정아 귀걸이도 너무 예쁘다. 나도 저런 데서 살고 싶다.” 곽영신은 「경멸과 동경의 SKY 캐슬」이란 제목의 글에서 이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깜짝 놀랐다. 나 역시 아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욕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들처럼 살고픈 이중적인 마음. 대중의 이상과 욕망 사이에 자리한 이 틈을 교묘히 파고든 게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이 아닐까. 학벌 문제와 입시 교육을 꼬집는 데 기획 의도가 있었을 것이 분명한 이 드라마를 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더 강렬하게 열망하게 됐을지 궁금하다. 실제로 요즘 학원가에는 ‘SKY 캐슬반’이 생기고 드라마처럼 입시 컨설팅을 해준다는 광고가 유행이라고 한다.”****

우리의 삶은 불확실성에 지배당한다. 불안정한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에 적응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사회적 증거’를 찾는다. 옳든 그르든, 정의든 부정의든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을 행동의 모델로 삼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친일을 하고 독재에 부역한 이들이 어떤 단죄도 받지 않고 호의호식한다면, 권력에 기생하여 안락한 삶을 도모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누가 탓할 수 있으랴.

친일 청산이나 적폐 일소는 과거사를 바로잡자는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회적 증거를 만드는 일이다. 일제 침략을 전후하여 권력의 측근에서 온갖 부정한 특권을 누렸던 세력들은 거의 친일파로 전락했다. 아직까지 친일이 청산되지 않았다. 이것이 현재까지 사회적 증거가 되고 있다.

친일 청산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단순히 반민족적인 일제 협력 행위를 처벌함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친일파를 청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친일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사상사적인 이데올로기의 위력 때문이다. 쉽게 말해 대다수의 민족과 이웃을 배반하고 세력에 기생해 개인 이익을 추구한 사람들을 사회가 어떻게 처우하느냐는 바로 후대의 ‘사회적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친일파가 아니고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라고? 일제에 기생해 개인의 영달을 꾀한 자의 혀 놀림이 가증스럽다. 하늘의 뜻에 따라 일제에 순종했다고? 그렇다면 김구나 김원봉이나 김좌진은 역천逆天했다는 말인가.

의인이라 불러도 하등 손색이 없는 기간제 교사의 정의심 실현에 응원을 보내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보상은커녕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으리라 쉬 짐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쳐 생각하면, 어쩜 그가 자신의 인생을 가장 알뜰히 보듬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굴종하며 배만 채우고 살기에는, 인생은 짧고 아름다운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임종국 저/이건제 교주, 『친일문학론』(민연(주), 2016), 575~576쪽. **박용근, 「모두가 침묵할 때, 사학비리 고발하고 쫓겨난 기간제 교사가 남긴 ‘숙제’」, 『경향신문』, 2019년 5월 16일. ***임종국 저/이건제 교주, 앞의 책, 582쪽. ****강준만, 「왜 <SKY 캐슬>은 경멸보다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는가? 사회적 증거」, 『인물과 사상』(2019년 4월호), 75~76쪽.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