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형 시인의 '시 밥상' (9)밤의 아리아 / 이령
전다형 시인의 '시 밥상' (9)밤의 아리아 / 이령
  • 전다형 전다형
  • 승인 2019.06.10 09:38
  • 업데이트 2019.06.1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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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령

밤의 아리아 / 이령

빈 방에 누워 입각점을 찾는 난 망원경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밤이네 창 너머 미립자 별들도 혼자서는 길을 잃고 별무리 지는 밤이네 밤은 너무나 가혹한 미래여서 낮의 표정을 싹 갈아 치우네 소유거리에 들고 싶던 마당귀 소사나무조차 이참에 그림자를 접고 잠든 밤이네 밤은 세상의 모든 배반을 노래하는 디스토피아, 난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어둠을 사랑 했네 성운으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그림을 벗어나기 위해 힘차게 어머니의 배를 두드리며 시간의 테이프를 감아 또각또각 그림자를 그리며 놀았네 어머니는 씩씩한 아들일거라 꿈꿨겠지만 망원경은 이미 수 만년동안 인간의 것은 될 수 없었네 이제 난 밤과 새벽의 경계에 서서 그림과 그림자가 어우러지는 꿈을 애달피 구상 하네 고서의 귀퉁이처럼 닳고 닳아 빈 방에 널브러진 난그림 너머 그림자마저 사랑하기로 하네 세상에서 내가 설 곳을 찾기엔 어둠은 너무 빨리 죽는다고 느끼는 밤이네 어둠의 장막을 걷고 고상한 야만인처럼 새벽이 또 밝아오네

◇이령 시인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신인문학상
▷웹진 '시인광장' 부주간, 젊은시동인 VOLUME 회장
▷시집 『시인하다』, 한중작가공동시집 『망각을 거부하며』

▶우리 모두는 ‘밤의 자식’이다. 화자는 딸로 태어난 던져진 존재다. 별마저 길을 잃은 밤, 입각점立脚點을 찾을 망원경이 필요하다. 망원경은 사람의 것이 될 수 없어 화자의 밤은 가혹할 수밖에 없다. 화자가 배반의 노래를 부른 디스토피의 인식 저변에는 딸로 태어난 시인의 출생과 무관하지 않다. 스투디움 너머 푼크툼의 세계를 읽는 어머니의 천리안은 화자가 당신 뱃속에서 보낸 줄탁동시茁啄同時를 줄탁동시茁啄同詩로 판독한다. 화자는 어머니의 천리안을 오판한다. 이 시에는 타자의 큰 결핍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아들을 욕망하는 어머니의 욕망이 딸에게 덧씌워져 있다. 화자는 타자인 어머니의 욕망을 욕망한다.

평론가 황현산은 “밤이 선생”이라고 했다. 밤을 스승으로 모신 화자는 밤을 갖고 논다. 어머니의 “그림을 벗어나기 위해 그림자”를 그린 그림에 내 그림자가 얼비쳤다. 줄줄 읊은 기도목록만 받아 적어도 시가 되던 말씀, 세상 어머니는 난생의 첫 스승이다. 이 시는 어머니의 욕망과 화자의 욕망 사이의 불화를 극복·수용의 자세를 보여준다. 어머니의 기대치에 전전긍긍 했을, 종종걸음 쳤을, 까치발 높이 더 높이 치켜세웠으리라. 그러나 욕망은 메울 수 없는 구멍이라서 화자의 슬픔은 줄어들지 않으리라. 스스로 비끄러맨 보로메오의 매듭이 강박의 요인이 아닐까? 아리아드네의 실마리를 당겨본다. ‘열 아들 안 부러운 딸’로 태어난 시인의 형안炯眼이 빛나는 새벽, ‘별이 빛나는 것은 어둠이 바탕이다.’ 그 바탕에 빛날 일만 남았다.

전다형

◇전다형 시인은

▷경남 의령 출생
▷부경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졸업, 박사수료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등단
▷시집 '수선집 근처'(푸른사상사)
▷연구서 '한하운 시 고통 연구'
▷제 12회 부산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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