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27)목압서사에서 띄우는 편지 ③들고양이와 그 새끼들의 나날들
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27)목압서사에서 띄우는 편지 ③들고양이와 그 새끼들의 나날들
  • 조해훈 조해훈
  • 승인 2019.06.27 23:40
  • 업데이트 2019.06.27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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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얼점이 새끼가 아픈 듯 눈꼽을 덕지덕지 붙인 채 수돗가에 힘없이 앉아 몸을 떨고 있다.②얼점이가 새끼를 핥아주고 있다.
얼점이 새끼가 아픈 듯 눈꼽을 덕지덕지 붙인 채 수돗가에 몸을 떨면서 힘없이 앉아 있다(왼쪽). 얼점이가 새끼를 핥아주고 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녹차를 우려 마시려고 거실의 테이블에 앉는데 바깥에서 아주 비통한 목소리의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건 가까운 가족이 생명을 잃었을 때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져 나오는 소리임에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애닯은 울음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가 지난 지 사흘 째여서 낮이 길다고 하나 어두운 저녁 시간이었습니다.

얼점이의 비통한 울음

현관 앞과 마당의 불을 켜고 내다봤습니다. 얼점이가 수돗가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아닌 들고양이가 저렇게 뇌성이 연이어 울리듯 애통하게 크게 우는 건 처음 듣고 보는 것이었습니다.

오늘(26일) 바깥에서 일을 본 후 늦은 오후에 귀가해 수돗가에 모여 앉아 있는 들고양이들의 밥그릇에 먹이를 주었습니다. 먹이를 주고 돌아서니 옆 귀퉁이에 다리와 배 부위는 흰데 머리와 몸통이 까만 새끼 고양이가 축 쳐져 누워있었습니다. 새끼들은 본능적으로 사람이 가까이 가면 도망가지요. 몸까지 떨고 있었습니다. 순간 “아픈가?” 생각이 들어 등을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어 두 손으로 안아 보았습니다. 젖을 많이 먹지 못했는지 너무 가벼웠고 눈에는 눈꼽이 덕지덕지 끼여 있었지요. “이 놈이 누구 새끼지?” 둘러보니 얼점이가 조금 떨어져 “야옹! 야옹!”거렸습니다. “아, 얼점이 새끼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가만히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곤 이틀 전에 이웃이 가져다 준 상추 모종 20여 포기를 바로 옆 텃밭에 심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얼점이가 그 새끼를 핥아주었지요. 얼점이는 필자의 집인 목압서사와 옆집을 오가며 형제들과 자란 암놈으로 거무스레한 얼굴에 노란 점이 있어 필자가 붙인 이름입니다. 그녀는 늘씬하고 예쁘장하며 순하고 착합니다. 얼점이의 형제자매 중 한 녀석인 반점이도 필자의 집에 살고 있지요. 이날도 노랭이와 점순이 등과 얼점이와 반점이는 함께 수돗가에서 필자가 준 저녁 먹이를 먹었습니다. 얼점이와 반점이의 어미는 필자 집의 앞집에 살면서 먹이는 여기서 먹습니다. 필자의 집이 친정이기 때문이지요.

며칠 전 얼점이가 까만색 새끼 고양이 세 마리와 진노란색 한 마리를 데리고 와 수돗가 주변에서 노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디엔가 새끼를 낳아 어느 정도 자라자 수돗가 인근 매실나무 아래로 이주를 한 것 같았습니다. 아픈 이 놈은 그 중의 한 마리였을 것입니다.

아픈 새끼가 죽은 듯

그렇게 얼점이가 아픈 새끼를 정성스럽게 핥아주는 걸 보며 “웬만한 사람보다도 낫다”는 생각을 하며, 저녁식사를 하러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거실에 음악을 틀어놓고 부엌 식당으로 가 밥을 먹곤 거실로 나왔던 것이지요. 그런데 섧은 울음소리가 크게 들려 마당에 불을 켜고 나가보니 새끼 고양이가 있던 곳에서 얼점이가 울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새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순간 “새끼가 죽자 얼점이가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어디엔가 안치해주곤 와서 새끼가 있던 자리에서 울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사람도 모성이 강한 엄마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엄마도 있습니다. 남자의 부성도 마찬가지이지요. 짐승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들고양이들을 키우면서 느꼈습니다. 그동안 필자의 집에서 나고 자라 새끼를 낳은 고양이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분별하는 것이지요.

필자의 집 현관에서 멀거이가 새끼를 데리고 와 함께 놀고 있다.
2019년 하지 무렵 수돗가 풍경. 노랭이(오른쪽)는 태평스럽게 업드려 있고, 멀거이는 새끼들을 데리고 와 저녁을 먹고 있다. 멀거이 새끼 중 한마리(왼쪽)는 멀리서 봐도 몸이 아픈 것 같다. 사진=조해훈

유달리 모성 강한 ‘멀거이’

이를테면 얼마 전부터 한 번씩 필자의 집에 새끼를 데리고 와 노는 멀거이는 이곳에서 자란 들고양이 중에서 모성이 가장 강합니다. 지난 해 새끼에 대해 악착스런(?) 모성애를 보여 필자는 감동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요즘도 배와 다리는 하얗지만 배 윗부분은 진노란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와 하루종일 핥고 장난을 치며 놀아줍니다. 새끼도 어미인 멀거이의 등과 머리에 올라타고 부비며 종일 너무나 다정스럽게 놀지요. 이곳에서 나고 자란 멀거이는 필자의 집 건너편에 있는 관아수제차 에서 새끼와 사는 것 같았습니다. 먹이는 당연히 친정인 필자의 집에서 먹지요. 먹이를 먹곤 새끼를 데리고 다시 그 집으로 들어가는 걸 몇 차례 본 것입니다. 새끼를 낳아 기르기 위해 그 집에서 거처를 하는지는 몰라도 아침 일찍 필자의 집에 와 저녁을 먹곤 돌아갑니다. 멀거이는 혼자 오면 필자의 집 지킴이 고양이인 노랭이와 다정스럽게 시간을 보냅니다. 코를 서로 비벼대고 몸을 부딪치며 장난을 치지요. 필자는 멀거이가 덩치는 크지만 유순하고 유달리 정이 많은 고양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랭이, 새끼들과 녹차작업장에 안착

필자의 집 녹차작업장에서 노랭이 새끼 네 마리가 낮잠을 자고 있다.
필자의 집 녹차작업장에서 노랭이 새끼 네 마리가 낮잠을 자고 있다.

올해 차 작업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필자의 녹차작업장에 새끼 네 마리를 데라고 들어와 살고 있는 노랭이는 모성애가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닙니다. 자신을 닮은 진노란색 새끼 세 마리와 검은 색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살지요. 이 새끼들의 애비는 이름이 깡패인 덩치 큰 들고양입니다. 그 녀석은 필자의 집에 사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와 먹이를 먹기도 하고 암놈들을 귀찮게 하다가 갑니다. 필자를 만나면 화다닥 놀라 도망가지요. 생긴 모습이 몸집 좋은 깡패 같은 데다 폭력적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노랭이는 지난해 낳은 새끼들에게도 그랬지만 특별 간식을 주면 새끼에게 가져다 줄 생각은 않고 자신이 다 먹어버립니다. 그러다보니 새끼들에게 별도로 맛있는 먹이를 챙겨줍니다. 노랭이는 사람으로 치자면 여성인데 어깨가 벌어진 게 숫놈 같고, 욕심이 많고 정이 별로 없는 스타일이지요. 오죽하면 노랭이가 새끼에서 조금 자랐을 무렵 필자는 숫놈이라 생각했을까요.

아랫집에 사는 점순이도 새끼를 낳은 것 같은데 필자의 집에 데리고 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어려 젖을 먹이는 것 같습니다. 점순이도 필자의 집에서 자라 친정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와서 먹이를 먹고 놀다 갑니다. 그래서 필자의 집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마당에 웬 고양이가 이리도 많아요?” 놀라지요.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얼점이가 수돗가에서 갈수록 큰 소리를 내면서 애처롭게 울고 있어 마음이 짠합니다. 3년 동안 들고양이들을 돌보면서 사람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것들을 많이 깨닫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본능과 영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교육학박사 massj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