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의 만주 일기 (14)길림의 도라지
박명호의 만주 일기 (14)길림의 도라지
  • 박명호 박명호
  • 승인 2019.07.01 11:23
  • 업데이트 2019.07.01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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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꽃

초가을 쪽빛 하늘 아래 피어 있는 보랏빛의 도라지꽃을 보노라면 청초하다 못해 눈물을 머금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도라지꽃을 볼 때마다 저 먼 만주의 한복판 길림의 도라지, 고신일 선생이 생각난다.

길림吉林이라면 중국에서 우리 조선족들이 가장 많이 사는 길림성의 성도(省都)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나 성도는 장춘(長春)이다. 그러나 길림은 고구려의 발생지인 부여(夫餘)가 있던 아주 오래된 도시이다. 그 길림에 수십 년 묵은 오래된 우리말 소설전문 잡지 ‘도라지’가 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거기에 그 도라지를 직접 꾸린 정말 한 송이 도라지꽃 같은 소설가 ‘고신일’ 선생이 있다. 나는 그분 때문에 두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내가 고신일 선생을 처음 만났을 때 벌써 20년보다 더 먼 세월이다. 내가 처음 중국에 갔을 때 연변작가협회 소개로 저녁 밤기차를 타고 길림으로 갔다. 어두컴컴한 침대 칸 기차에서 나는 만주 여행에서 처음으로 혼자 내던져지게 되었다. 문득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중국말도 모르는 내가 생판 낯선 공간에 혼자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여태까진 그래도 조선족 작가들의 안내를 받으며 그것도 조선족이 많이 사는 연변 지역을 다니다가 처음으로 중국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기차는 밤새 달려서 새벽에 길림 역에 내렸다. 나는 고신일 선생의 주소를 들고 찾아가야 하는 어려운 일이 남아 있었다. 아무리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지만 낯선 세계에 대한 불안은 새벽 기온처럼 나를 움츠려들게 했다. 불안스레 개찰구로 나오는데 입구에 내 이름자가 보이는 게 아닌가. 키가 큰 선비 같은 분이 내 이름이 크게 쓴 마분지를 들고 서 있었다. 얼마나 고맙고 반가웠는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곧장 나를 자신의 집으로 안내해 따뜻한 아침밥을 대접했다.

그리곤 도라지 잡지사와 송화강을 비롯한 길림 시내 여러 곳을 그의 안내로 관광을 했다. 문단의 큰 선배나 고향의 어르신 같아 아무런 거리감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친절과 낯설지 않은 말씨에 있었다. 그는 연변 사람들과 다른 말을 쓰고 있었다. 이상해서 물으니 고향이 경상도였다. 그러니까 국경 근처에는 먼저 온 함경도(북간도), 평안도(서간도)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고 나중에 건너 온 삼남 사람들은 더욱 북쪽으로 올 수 밖에 없었던 옛날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길림의 소설가 고 고신일 선생과 함께.

그때의 고마움을 잊지 못해 3년 뒤에 대구의 시인 몇과 다시 길림에 들렸다. 그때 그가 한국의 책, 특히 소설책을 읽고 싶어 해 여러 권의 책을 선물로 가져갔었다. 길림에서 일정을 마치고 심양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 역으로 갔다. 도중에 배낭 검사로 지체되는 바람에 기차 출발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무거운 배낭과 짐들을 가지고 200미터가 넘는 긴 길림 역 통로를 급하게 뛸 수밖에 없었다. 고신일 선생은 연로한 나이임에도 우리의 무거운 짐 하나를 들고 우리와 같이 단거리 경주 하듯이 뛰었다. 햐, 그 장면을 생각하면 또 눈물이 난다. 땀을 뻘뻘 흘리며 행여 기차를 놓칠세라 그냥 뛰기도 힘든 나이에 짐을 들고 뛰던 모습이...

그리고, 십여 년 뒤 북경에 갔을 때 그 쪽 문인들로부터 고신일 선생이 치매로 고생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올해는 꼭 찾아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만주 여행에서 길림 일정을 넣었다. 그러나 결국 선생을 만나지 못했다. 지금은 아들이 있는 북경의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 그의 만주에 다시 들렀을 땐 그는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니었다..

도라지, 마침 ‘도라지’ 잡지 최근호에 ‘도라지’란 수필이 실려 있었다. 아이들이 급속하게 줄어가는 조선족 학교에서 도라지꽃으로 민족성을 가르치는 내용이다.

'무연한 들판에 점점이 피어 있는 도라지꽃, 얼마나 평범한 들이며 얼마나 소박한 도라지꽃인가! 송이가 그리 크지 않고 꽃잎도 단층인 도라지꽃, 빛깔도 빨간색이나 노란색처럼 화사한 색갈이 아니고 흰빛갈이 아니면 보라빛이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눈에 뜨이지도 않는 너무나도 수수한 꽃이다. 마치도 이 땅에서 한 세기동안 살아온 우리 조선민족과 흡사하다.'

박명호

◇소설가 박명호는

▷경북 청송 출생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장편 '가롯의 창세기', '또야, 안뇨옹'
▷소설집 '우리 집에 왜 왔니', '뻐구기뿔', '어떤 우화에 대한 몇 가지 우울한 추측'
▷잡감집 '촌놈과 상놈' 등
▷부산작가상, 부산소설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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