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형 시인의 ‘시 밥상’ (11)하늘 저울 / 이상옥
전다형 시인의 ‘시 밥상’ (11)하늘 저울 / 이상옥
  • 전다형 전다형
  • 승인 2019.07.02 12:22
  • 업데이트 2019.07.0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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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저울 / 이상옥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독서를 하거나
강의를 하거나
외국어 공부라도 하는 것과
마당에 엎드려
잡초를 뽑거나
서재 바닥 얼룩을 닦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이불을 햇살에 널어놓는 따위
혹은 마당의 일벌들을 돌봐 주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처럼
보이는 것이
씨줄과 날줄로 짜인
영혼과 육체 한 덩이의 생이라면
말이다
정녕
전자가 무겁고 후자가 가볍다?
글쎄,
근자
후자에게로 마음이 자꾸 기울어 간다
아무 이유나 조건 같은 건 없었고
단지 길강아지 복실이와 마을 앞 하천 둑길
몇 번 산책했을 뿐이다

-계간 《시작》 2019. 여름-

◇이상옥 시인

▷1957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1989 시문학 등단.
▷시집 : 『하얀 감자꽃이 피던 날』, 『꿈꾸던 애벌레만 나비의 눈을 닮았다』, 『유리그릇』, 『환승역에서』, 『그리운 외뿔』, 디카시집 『고성 가도(固城 街道)』, 『시창작 입문』 등.
▷시문학상, 유심작품상, 경남문학상 수상 등. 『디카시』 발행인.

복실이 ⓒ전다형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서 공자는 육십에 이순耳順)에 도달했다지요? 지천명(志天命)을 막 지나 이순에 접어든 시인의 반짝이는 “하늘 저울”을 우러러 읽었습니다, 지학(志學)을 거처 이립(而立)에 이르고 불혹(不惑)과 지천명을 거쳐 종심(從心)에 닿을 이순이 반짝입니다. 이 나이에 이르고도 내 귀는 소음으로 들볶이는 일상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모든 무게를 가진 것들은 다 달 수 있지만 먹은 마음은 달 수 없겠지요. 시인이 내놓은 하늘 저울 위에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하거나 / 글을 쓰거나 / 독서를 하거나 / 강의를 하거나 /외국어 공부라도 하는 것과/ 마당에 엎드려 / 잡초를 뽑거나 / 서재 바닥 얼룩을 닦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 이불을 햇살에 널어놓는 따위/를 올려놓고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지 달고 있습니다. 화자는 저울의 추가 후자 쪽이라 고백합니다.

제 나름의 풍경을 몸에 쟁인 서사를 펼친 이 시는 자잘한 일상이 주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고은은 “올라갈 때 못본 꽃 내려올 때 보이더라” 한 것처럼 초반의 삶은 목표지향적인 사회적 자아에 휘둘렸다면 지금은 내면적 자아를 발견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겠지요? “씨줄과 날줄, 영혼과 육체 한 덩이의 생”으로 짠 한 필의 일생을 펼쳐 읽자 ‘잔잔한 내 마음에 돌을 던졌습니다. ’동심원을 그리는 돌은 제 무게만큼 파장이 퍼져나갔습니다.‘ 생의 반환점을 돌아 맨 처음으로 향해가는 시인의 담담한 일상이 울컥 저를 쏟아놓게 했습니다.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시간의 위력을 보여주는 이 시 “하늘 저울”에 저를 다나, 청맹과니 제게는 아무 것도 읽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암면 강산숲을 산책하는 복실이가 보일 것도, 후자 쪽으로 기우는 그 마음 한 자락 잡힐 것만 같습니다.

전다형

◇전다형 시인은

▷경남 의령 출생
▷부경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졸업, 박사수료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등단
▷시집 '수선집 근처'(푸른사상사)
▷연구서 '한하운 시 고통 연구'
▷제 12회 부산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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