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란, '시인의 양면일기' (5)과민성 악수주의자
최정란, '시인의 양면일기' (5)과민성 악수주의자
  • 최정란 최정란
  • 승인 2019.07.19 10:51
  • 업데이트 2019.07.22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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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민성 악수주의자

얼떨결에 악수 당했다. 한 정치인이 악수를 청했다. 앉은 자리에서 순서대로 손을 내밀었다. 나도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는 그의 눈은 서둘러 나를 지나쳐 간다. 뭐지. 불쾌하다. 그는 당선자이고 곧 지방자치단체장이 될 것이다. 내 옆에 앉은 사람이 그의 당선에 도움이 된 지인인 모양이다. 정치인은 그쪽을 향해 만면에 웃음을 띤다. 손은 내 손을 잡고 눈은 그의 눈에 빠져있다.

정치인은 악수하는 사람이다. 정치인의 악수는 표와 직결된다. 나에게 표를 주세요. 정치인의 악수는 이 말의 은유이다. 선거에 뜻을 둔 후 그는 얼마나 많은 악수를 했을까. 수많은 사람들과 악수했을 것이다. 만날 사람은 많고 만나는 사람의 수에 비례해서 표를 더 얻을 수도 덜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문이 닳도록, 손에 붕대를 두껍게 감고 악수를 하던 여성정치인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가능한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 더 많은 사람의 손을 잡기, 악수하기의 고충이 이해가 간다.

따지고 보면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악수하는 악수 전문가이다. 한 달 가야 한두 번 악수 할 일이 생길까 말까하는 나는 평생 악수 아마추어다. 그는 악수라면 달인일 것이다. 아마추어가 프로페셔널의 깊은 뜻을 어찌 알까 만은, 초심과 진정성을 느끼는 데는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초심과 진정성은 오히려 아마추어가 더 잘 느낄 것이다.

그는 습관처럼 손을 내밀었고, 나는 얼떨결에 손을 내민 것이다. 그가 나에게 내민 손은 그의 수많은 악수 가운데 한 번이다. 그러나 나에게 내민 그의 손은 악수의 초심을 잃은 전문가의 포즈였다. 그를 반기던 마음이 사라졌다. 눈을 맞추지 않는 악수는 건성이다. 그의 악수는 건성이었다. 건성으로 누구와 악수 할 필요가 있을까. 그는 나에게 악수(惡手)를 둔 것이다.

눈높이를 맞추지 않는 정치인에게는 큰 기대를 할 수가 없다. 그가 여성이어서 섬세할 것이라는 기대는 어긋났다. 눈을 맞추지 않고 남발하는 악수를 위해 함부로 손을 내미는 그의 태도에 일찌감치 실망한다.

당신에게 악의가 없다. 당신을 해치지 않는다. 악수의 본질적 의미라 한다. 손을 펼쳐 무기가 없음을 보여주고, 손과 손을 맞잡아,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행동의 시작이 악수이다.

선거도 일종의 전쟁이라고 보면, 선거전을 치르는 유세 중 그는 자기편을 모으기 위해 손을 내민다. 다른 후보들보다 더 많은 사람을 자기편으로 모아야 하므로, 일일이 눈 맞출 시간의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의 악수는 대체로 건성이다. 선거 중에 건성건성 바삐 지나가는 악수는 시간상 제약과 후보의 절실함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당선인이 된 그의 악수는 비장한 전쟁터의 무기가 아니다. 더 이상 악수가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 표를 읍소하는 전술의 하나가 아니다.

또한 그는 당선자가 되는 순간부터 한 당파의 후보가 아니다. 한 지역 전체의 대표이다. 이제부터 그는 한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며 한 사람이라도 더 쾌적하고 살기 좋게 지역행정의 디테일을 살리는 행정가여야 한다. 선거에 승리하는 후보는 많다. 한 선거에서 한 명은 승리한다. 그러나 행정이나 정치에서 승리하는 행정가 혹은 정치인은 많지 않다. 그가 행정에서 승리하는 좋은 행정가가 되기 바란다.

가능한 빠르게 그는 당파의 후보라는 부분모드를 벗어나 지역대표라는 전체모드로 태도와 마인드를 전환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의 악수는 달라져야 한다.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서 주마간산 서두르던 비장함과 성급함을 버리고, 시간을 들여 지역민 한 사람 한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는 악수가 필요할 때가 온 것이다.

정치든 행정이든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어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악수 하나에도 눈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이 다양하고 복잡한 여러 사안에서 어떻게 국민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까. 국민의 필요를 어찌 알 수 있을까. 눈높이를 맞추어야 귀높이도 맞출 수 있다. 국민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악수 하나로 그를 폄훼할 생각은 아니다. 그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당선자가 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선거의 시간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승자가 된 그는 아직 시차 적응 중일 것이다. 아직 마음이 바쁠 것이다. 당연히 그는 무심코 평소 하던 대로 했을 것이다.

악수는 따뜻하고 아름답다. 사실 누가 먼저 손을 내미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먼저 내밀든 맞잡으면 악수가 된다. 알지만 손 내밀기를 망설인다. 감사이든 호의이든 부탁이든 용서이든 화해이든 먼저 손을 내밀기는 어렵다. 자존심이 손바닥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먼저 손 내밀기는 자존심을 내려놓는 일이다. 그의 악수는 실은 오랜 시간 그가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은 어려운 결과물일 수도 있다. 내가 지나치게 예민할 뿐.

악수는 때로 끈적하고 위험하다. 손가락으로 상대의 손바닥을 간질어서 유혹하던 현대판 카사노바 에피소드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교묘하고 나쁜 악수를 보여준다. 악수는 때로는 거대한 약속이 되기도 한다. 손 한 번 잡는 것이 일생을 함께 하는 결혼의 맹세가 되던 시절도 있었으니.

아무하고나 함부로 악수 할 일이 아니다. 악수는 단순히 손을 맞잡는 것이 아니다. 눈이 먼저 오가고, 마음이 오가고, 서로의 손을 교환하는 순간, 두 우주가 스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살아온 몇 십 년의 역사가 교환되는 것이다. 그래도, 그래서, 그러므로 부탁하고 싶다.

먼저 눈을 맞춰주세요.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그러지 않으려면 차라리 하지 말아주셔요. 얕은 악수가 아니라 깊은 악수를 상상하다니. 악수의 영원한 아마추어라는 증거인가. 너무 힘주어 잡지 말아주셔요.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게. 닿은 듯 닿지 않은 듯 표면을 가볍게 스쳐간 악수의 추억이여.

이런 생각으로 손바닥이 간질간질한 나는 과민성 악수주의자인가. 낭만성 악수주의자인가.

최정란

◇최정란 시인은 

▷경북상주 출생

▷2003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장미키스> <사슴목발애인> <입술거울> <여우장갑>

▷제7회 시산맥작품상

▷부산작가회의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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