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의 만주 일기 (18)당나귀 화장실
박명호의 만주 일기 (18)당나귀 화장실
  • 박명호 박명호
  • 승인 2019.07.29 12:51
  • 업데이트 2019.07.29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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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정 거리 풍경. 사진=박명호
용정 거리 풍경. 사진=박명호

연변 용정시 문화국장이었던 이문선, 그는 용정에서 거의 전설적 인물이다. 그가 북경에 있는 ‘중앙민족대학’에 합격했을 때 용정에서는 그야말로 개천에 용이 났다고 했다. 그가 북경으로 떠나는 날 친구들이 역전 마당에 가득 모여 환송했다. 모두가 한 푼, 두 푼 여비에 보태 쓰라며 찔러 준 돈이 아래 위 주머니에 가득 차 넘칠 지경이었다.

한 스무 해 전 나는 그의 집에 며칠 머물면서 우리가 잘 겪어 보지 못한 그들의 주거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북간도식 가옥은 부엌과 방이 원룸 형태이다. 방은 둘이었지만 경계라는 것이 문지방 정도였다. 그의 부인은 아래 방에서 자고 그와 나는 윗방에서 자는 잠자리가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더욱 적응이 안 된 것은 화장실이었다.

사우나가 있다 해서 그와 같이 시내로 갔다. 말이 사우나이지 옛날 우리네 시골 목욕탕보다도 시설이 낡았다. 사우나실도 나무문의 구멍이 숭숭 벌어져 전혀 열기가 없었다. 갑자기 뒤가 급해져 화장실을 물으니 옷을 입으라 했다. 그도 옷을 입고는 따라 오라 했다. 나는 무슨 다른 일이 있는가, 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따라 건물 밖으로 나왔다.

세상에 무슨 불이 난 것도 아니고, 목욕을 하다가 옷을 입고 밖으로 다시 나오기는 처음이었다. 밖은 시장통이라 사람들이 붐볐다. 한 블록쯤 지났다. 그는 잎담배를 저울에 달아 파는 사람에게 종이를 몇 장 사더니 골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종이를 내게 건네며 저만큼 모퉁이 끝을 가리켰다. 나는 급한 김에 빠른 걸음으로 모퉁이를 돌았다.

아, 나는 그만 비명을 지를 뻔했다. 놀라 흠칫 뒷걸음쳐 돌아 나오고 말았지만 갑자기 내 눈 앞에 나타난 것은 일렬횡대로 앉아서 볼일을 보는 사람들이었다. 한 대엿은 되어 보였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이 너무 엄숙한 것 같았다. 마치 종교예식을 치르는 장면처럼 놀라하는 나를 오히려 이상하게 봐라 봤다. 골목을 돌아 나온 나는 그것이 말로만 듣던 중국식 공중화장실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러나 뒤가 급한 나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잠시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침착하게 다시 모퉁이를 돌아 그 화장실로 갔다. 나는 그들 사이에 있는 빈 구멍을 아무렇지도 않는 듯 자리를 잡고는 바지를 내리고 앉았다. 그리고 아랫도리에 힘을 주면서 눈을 감으려는데 바로 앞에 당나귀 한 마리가 이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용정 거리의 한 모퉁이 풍경. 사진=박명호
용정 거리의 한 모퉁이 풍경. 사진=박명호

순간적으로 웃음이 큭, 하고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당나귀의 뒷다리 부분에 축 늘어진 커다란 물건이 내 눈에 포착되었기 때문이었다. 당나귀가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지는 오래 됐다. 덩치는 작아도 과연 귀와 물건은 컸다. ‘당나귀 잡아 귀 빼고, 뭐 빼면 남는 것이 없다’는 옛말이 생각나서 절로 웃음이 나오려 한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화장실에 앉아, 그것도 옆에 줄지어 앉아 있는 낯선 화장실 동료도 있는데 웃는다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그의 물건을 보며 ‘과연 크구나...’고 생각하듯이 그 역시 나를 보고 ‘작다...’라고 생각할까... 이런 부질없는 생각들도 해봤다. 그것은 그 화장실에 대한 생소함이나 불편함을 떨치기 위한 내 스스로의 방편인지 몰랐다. 아니 당나귀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묵묵하게 보고 있는데, 그리고 내 옆으로 당나귀 앞에 면접관처럼 앉아 있는 다른 사람들도 아무렇지도 않는데 나만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문명이라면 정말 유치하다. 서로에 대해 뭘 느낀다는 것이 기껏 감추어진 물건 때문이라면 그것은 너무 유치하지 않는가...

그런데 아무 것도 가린 것 없는 그놈의 당나귀가 계속 내 쪽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서로가 벗은 채로 서로의 물건을 보고 있는 것은 같은 입장이다. 제 놈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나 또한 거기 벗은 채 앉아서 뒷일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것은 숫제 화장실 볼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한 도(道)를 얻은 것 같아 마치 정진하는 수행승처럼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박명호

◇소설가 박명호는

▷경북 청송 출생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장편 '가롯의 창세기', '또야, 안뇨옹'
▷소설집 '우리 집에 왜 왔니', '뻐구기뿔', '어떤 우화에 대한 몇 가지 우울한 추측'
▷잡감집 '촌놈과 상놈' 등
▷부산작가상, 부산소설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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