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형 시인의 ‘시 밥상’ (13)홍일표 / 독거
전다형 시인의 ‘시 밥상’ (13)홍일표 / 독거
  • 전다형 전다형
  • 승인 2019.07.30 10:26
  • 업데이트 2019.08.1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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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출처 : 픽사베이

독거 / 홍일표

천천히 죽어가는 저녁

누군가 혼자 빈방을 먹는다

개들이 수상한 저녁을 짖을 때마다
어둠의 이마에 금이 가고 나는 빈방의 귀퉁이를 잘라 조금 먹어본다
허공처럼 아무 맛이 없는 방이 나를 덥석 물고 놓질 않는다

빈방은 나를 몇 개의 헛간으로 분해한다

내 안에 새로 생긴 허공이 텅텅 울린다
개들은 내가 빈방이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가까이 가도 짖지 않는다 나는 영 서운하여 뚱뚱한 밤을 걷어찬다
순식간에 개가 사라지고 통북만 남는다

그 사이 폭삭 늙은 방은 혀도 이빨도 없다

빈방은 다시 볼을 옴죽거리며 빈방을 먹는다

-『매혹의 지도』 수록-

◇홍일표 시인은

▷58년 충남 출생,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등단
▷시집으로 『살바도르 달리風의 낮달』, 『나는 노래를 가지러왔다』, 『밀서』
▷평설집으로 『홀림의 풍경들』과 산문집 조선시대 인물 기행 등
▷제16회 시인광장 시작품상, 제8회 지리산문학상 수상
▷현재 『모든시』 주간

▶모든 생명이 있는 존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그 여정에 우리는 누구나 독거에 놓일 수가 있다. 혼자 참아내고 혼자 기다리고 혼자 쓸쓸하게 과거를 우물거리다, 혼자 남겨진 시간을 헤아리다, 서서히 혼자 죽어 가리라. 한 평 관이 놓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모두는 독거를 벗어날 수 없다. 눈치 빠른 개에게까지 외면당하는 가엾은 “독거”인의 통북을 어루만지며 읽는다. 오늘날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우리의 삶의 문제를 짚어준 이 시는 “천천히 죽어가는 저녁”에 “누군가 혼자 빈방을 먹”을 수밖에 없는 방치된 죽음을 보여준다.

눈치 빠른 개가 “수상한 저녁을 짖을 때/ 어둠의 이마에 금이” 간 독거인은 “빈방의 귀퉁이를 조금 잘라 먹어 본다”. “허공처럼 아무 맛이 없는 방이 자기를 덥석 물고 놓질 않는다”고 한다. 빈방은 독거인을 “몇 개의 헛간으로 분해”하기에 이른다. “텅텅” 울리는 “허공이” 생긴 것을 개들마저도 눈치 챈다. 충복도 사라지고 컹컹 짖지도 않는다. 이는 살아 있으나 죽은 목숨과 같다. 빈방이나 지키는 존재는 산귀신으로 무용지물의 신세다. 개에게마저 개밥을 줄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들킨 무능력한 자로 가족 간 순위에서도 애완견에게 밀리는 존재다.

빈방이나 헛간으로 분해한 독거는 세상 중심으로부터 밀려난 공간이다. 이 공간은 외로움이 우후죽순으로 웃자라는 공간이며 고독이 넘실거리는 공간이다. 허명虛名과 허망虛妄과 황망遑忙이 기거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의 독거는 어떤가? 자의든 타의든 혼자 먹는 밥, 혼자 먹는 술, 혼자 자는 잠, 혼자 꾸는 꿈을 덮칠지 모른다. 혼자라서 홀가분하기도 한 목숨, 혼자 선택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라서 눈치볼일 없는 각자 도생을 지향하는 삶일지라도 언젠가 혼자 남겨질 죽음이 오고야 말리라. 미리 각자 몫으로 남겨진 시간을 끌어다 놓고 삶을 짚어볼 일이다.

전다형

◇전다형 시인은

▷경남 의령 출생
▷부경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졸업, 박사수료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등단
▷시집 '수선집 근처'(푸른사상사)
▷연구서 '한하운 시 고통 연구'
▷제 12회 부산 작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