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30)화개골 차 역사를 꿰고 있는 오신옥 차인
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30)화개골 차 역사를 꿰고 있는 오신옥 차인
  • 조해훈 조해훈
  • 승인 2019.08.13 15:51
  • 업데이트 2019.08.1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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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골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전통찻집인 ‘녹향’ 전경.
화개골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전통찻집인 ‘녹향’ 전경. 사진=조해훈

아침 일찍 쌍계초등학교와 쌍계사 앞을 돌아 신촌2교 다리를 건너 계곡 도로를 따라 올라 오다 목화식당 맞은 편 나무에 물을 주는 오선옥(56) 씨를 만났다. 전통찻집 ‘녹향’의 문이 열려있었다. 동생인 오선옥 씨와 인사를 하는 소리는 들은 다실의 주인인 오신옥(吳信玉) 선생이 고개를 내밀곤 필자를 보자 “차 한 잔 하고 가시라”고 했다. 몇 번 사양하던 필자는 오 선생의 인정스런 말에 다실로 들어가 차를 얻어 마셨다.

오 선생의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예순인 필자와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화개골에 처음 와 불일폭포와 국사암, 목압마을, 쌍계사를 답사하였다. 그 이후 대학 다닐 때부터 거의 계절마다 화개골을 찾았다. 아버지로부터 수차례 화개골의 문화유적과 역사, 차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목압마을에서 차를 만들면서 사시고 싶다는 말을 몇 차례 들은 점과 일찍부터 역사와 고전을 좋아하던 필자의 관심사와도 맞았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2017년 4월에 쌍계사 옆이자 불일폭포로 올라가는 초입인 목압(木鴨)마을(경남 하동군 화개면 맥전길 4(운수리 702번지))로 주소지를 완전히 옮긴 후 몇 차례 차인 겸 시인이자 한시까지 쓰시는 보우스님(부산 감천마을 소재 관음정사 주지) 등과 녹향 다실에서 차를 마셨다. 필자는 젊은 시절부터 화개골에 오면 가끔 녹향에서 차를 마신 인연도 있다.

전통찻집 ‘녹향’의 내부 모습. 사진 속에 보이는 사람이 오신옥 선생이다.
전통찻집 ‘녹향’의 내부 모습. 사진 속의 사람이 오신옥 선생. 사진=조해훈

그녀는 1981년부터 시작해 이 골짜기에서 가장 오랫동안 전통찻집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 찻집은 동업 형식으로 지금의 다실에서 목압마을 방면으로 100m가량 위쪽인 쌍계한의원 맞은 편, 즉 지금의 다올찻집 자리에서 전통찻집 ‘석천’이라는 상호로 문을 열었다고 필자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자신이 태어난 집인 지금의 자리로 옮겨 여태껏 결혼도 하지 않고 자존심 하나로 다실을 운영하고 있다.

필자는 다실의 건물이나 내부 모두 ‘오래됨’의 분위기여서 좋아한다. 화개골에 몇 곳의 전통찻집이 있지만 녹향다실보다 후에 생긴 데다 그러한 오래된 느낌이 그다지 없다.

그런데 필자는 그러한 것보다 녹향다실이 더 중요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그건 다름 아니라 오 선생이 화개골의 다른 사람들보다 이곳의 차의 역사와 차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해 보다 상세히 그리고 객관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데는 다실이 쌍계사로 들어가는 다리 입구에 자리 잡은 위치적인 장점도 있겠지만, 오 선생의 차에 대한 공부가 넓고 깊기 때문일 것이다. 차를 좋아하시는 쌍계사의 방장인 고산 스님을 비롯해 칠불사 주지로 계셨던 고 통광스님, 그리고 그 이전의 스님들까지 차와 관련된 화개골 스님들의 족보(?)부터 이 골짜기에 와서 차를 마셨던 차인들의 맥을 다 꿰뚫고 있는 것이다.

최석환 씨가 펴낸 『한국의 茶人Ⅰ』에 녹향 주인인 오신옥 차인의 소개로 발굴된 청파 조병곤 선생에 관한 기사 중 일부.
최석환 씨가 펴낸 『한국의 茶人Ⅰ』에 녹향 주인인 오신옥 차인의 소개로 발굴된 청파 조병곤 선생에 관한 기사 중 일부.

최석환 월간 『차의 세계』 발행인이 『한국의 茶人Ⅰ』(월간 『차의 세계』, 2017)에서 화개골 최초의 덖음차 제다인으로 추정되는 청파(靑波) 조병곤(趙秉坤) 선생을 발굴한 것도 오 선생이 처음 알려준 덕분이라고 분명하게 적고 있다. 최석환 발행인에 따르면 “잭살영감”으로 불린 청파 선생은 1895년 태어나 중국에 살다가 해방이 되면서 차를 만들기 위해 화개골로 들어와 쌍계사에서 생활하면서 1964년에 타계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조태연가의 김복순 할머니보다 먼저 화개골에서 덖음차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격이 깐깐하고 기품이 느껴지는 오 선생은 말을 하는 데 있어 늘 조심스럽다. 그리고 동생과 함께 차를 만드는 오 선생은 “내가 최고다”라고 이야기 하는 다른 차인들과 달리 일절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오 선생은 또한 화개골의 많은 다원에서 만들어 내는 차의 맛이나 제다 방법 등 역시 훤히 알고 있다.

최석환 씨가 펴낸 『한국의 茶人Ⅰ』에 녹향 주인인 오신옥 차인의 소개로 발굴된 청파 조병곤 선생에 관한 기사 중 일부.
최석환 씨가 펴낸 『한국의 茶人Ⅰ』에 녹향 주인인 오신옥 차인의 소개로 발굴된 청파 조병곤 선생에 관한 기사 중 일부.

언제나 필자의 컨디션을 물어본 후 거기에 맞는 차를 골라 우려 준다. 필자가 운영 중인 목압서사 내의 목압고서박물관과 목압문학박물관이 여름철 특집으로 지난 7월10~10월9일 전시 중인 ‘차 자료 특별전’에도 『역사 속의 우리 다인』(천병식, 이른아침, 2004)과 『한국 헌대 차인』(박홍관, 티웰, 2006) 등 몇 권의 귀한 책을 선뜻 빌려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필자는 “오랫동안 건강 하시고 세상을 버리는 그날까지 녹향 다실을 운영하십시오”라며, “오 선생님처럼 화개골의 차의 역사와 인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없지 않느냐”고 종종 농담삼아 말을 건넨다.

<역사·고전인문학자, 교육학 박사 mass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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