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형 시인의 '시 밥상' (14)혀를 잘랐다 / 강 순
전다형 시인의 '시 밥상' (14)혀를 잘랐다 / 강 순
  • 전다형 전다형
  • 승인 2019.08.13 16:37
  • 업데이트 2019.08.17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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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를 꺼냈다
검은 말들이 딸려 올라왔다

​혀를 만졌다
검은 말들은 어둡고 음습한 곳에
검은 습성으로 굳어 있었다

​검은 말들은
혀에 안착해서
혀의 숙주가 되어
혀를 점점 검게 물들이고

​당신의 가슴에서 악몽이 되고
당신의 호흡에서 천둥이 되고
벼락 속에도 알을 낳고
깊은 동굴의 괴물로 포복하고

​나는 어쩌다 당신의 검은 혀

​10분 간 목 놓아 혀를 잘랐다
태초의 언어를 찾았다
“엄마”

​붉은 피가 한참 쏟아지고 나면
나의 혀에 꽃이 필까

​바람이 불어 검은 혀가 차가워진 밤에
당신에게 내 잘린 혀를 보낸다

『미래시학』 2019년 여름호 게재

◇강 순 시인은

▷제주 출생, 한양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8년 『현대문학』에 ‘사춘기’ 외 4편의 시로 등단
▷시집으로 『이십대에는 각시붕어가 산다』
▷경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혀는 말의 상징이자 마음의 붓이다. 혀끝을 잘 다스린다는 것은 인격 수양에 힘쓰는 자의 기본자세가 된다. ‘아름다운 말 한 마디가 천 냥 빚을 갚기도 하고’. ‘설저유부舌底有斧’, ‘장설삼촌長舌三寸’, ‘설망우검舌芒于劍’이란 고사성어(故事成語)처럼 혀를 잘못 사용하면 무기가 된다. 무기로 변한 혀는 자랑과 시비를 부르기도 하고 혀 아래 숨긴 도끼와 날카로운 칼은 타자의 마음을 베기도 한다. 화자의 부정적 “검은 말”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하여 갈등과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위의 시는 죄 사함이며 번제(燔祭)의 제물로 받치는 의식이다. 검은 말은 어둡고 엄습한 곳에서 번식도 빠르다. 검은 말이 당신에게로 건너가는 순간 심장에 천둥과 벼락을 때리는 괴물로 변한다. 화자는 “10분 간 목 놓아 혀를” 잘라서 “당신에게 내 잘린 혀를 보낸다.” 이는 화해와 용서를 비는 단죄의 행위이자 자기만의 속죄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태초의 혀 꽃이 피기를 기도하는 마음에서 스스로 지은 죄에 대해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1위가 ‘엄마(Mother)’라고 한다. 화자는 이 아름다운 단어 “엄마”를 부름으로써 태초의 언어를 되찾는다. 우리도 세 치 혀로 인해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한 일 많았으리라. 화자는 혀와 말을 버리겠다는 결단 앞에서 내 혀가 뱉은 말을 되짚어보았다. 나도 화자처럼 혀를 벨만큼 타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 일이 없는지 화자의 잘린 혀에 내 혀를 대어 보았다. ‘사랑이 사랑을 낳고 미움이 미움을 낳는다.’는 뜨거운 한 말씀 건네주셨다. 

전다형

◇전다형 시인은

▷경남 의령 출생
▷부경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졸업, 박사수료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등단
▷시집 '수선집 근처'(푸른사상사)
▷연구서 '한하운 시 고통 연구'
▷제 12회 부산 작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