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형 시인의 ‘시 밥상’ (15)소파 / 문정영
전다형 시인의 ‘시 밥상’ (15)소파 / 문정영
  • 전다형 전다형
  • 승인 2019.08.23 19:53
  • 업데이트 2019.08.23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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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 문정영

그가 그 자리에 언제부터 기대 앉아있었는지 나는 잊어버렸다.
소라껍데기 같은 잦은 기침소리를 그날 아침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생의 무게는 한낮의 무지개보다 가벼워라. 앉은자리를 내어준 나도 그의 움직임을 몰랐다.

그날 아침 햇살 도둑이 다녀간 것도 기록되지 않았다.
분명 해의 그늘은 아닌데, 나무들의 한 생을 태운 나이테처럼 그의 몸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항암치료로 도두라진 등뼈, 수분이 빠져나간 잎맥 같은 골반, 나비가 앉았다 날아간 꽃대에서 나는 신음소리, 말을 전하려다가 멈춘 눈빛,

그가 남긴 유일한 흔적을 나는 가졌다.
빈자리에 새벽보다 더 많은 고요가 깔렸다.
한 곳에만 많이 움푹 파인, 그의 몸을 닮은 모과 썩은 내가 났다.

오직 하나의 체위를 받아 안은, 성감대도 없는 나는 그를 얼마나 따뜻하게 껴안아 주었을까

- 『시산맥』 2013년 겨울호 수록-

◇문정영 시인은

▷전남 고흥 출생
▷1997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으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낯선 금요일』, 『잉크』, 『그만큼』, 『꽃들의 이별법』 등
▷계간 『시산맥』 발행인, ‘윤동주서시문학상’ 대표
▷한국문화예술 아르코 창작기금 3회 수혜.

▶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든가? 소파는 고단한 하루의 일상, 눕고 싶을 때, 앉고 싶을 때 어느 체위나 다 받아주는 존재다. 집집마다, 크고 작은 사무실이나 언제나 그 자리에 놓여있을 것만 같은 존재와 닮았다. 화자는 암 투병을 한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유일하게 흔적으로 남은 몸의 무늬를 이 「소파」를 통해 읽는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에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 쿠키의 향기가 오래된 기억을 불러 오듯이 “그의 몸을 닮은 모과 썩은 내가 나는” 체취를 통해 과거를 회상한다. 화자가 소파로부터 “항암치료로 도두라진 등뼈”와 “수분이 빠져나간 잎맥 같은 골반”과 “나비가 앉았다 날아간 꽃대에서 나는 신음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말을 전하려다가 멈춘 눈빛”과 마주친다.

사람은 언제나 떠나고 나서야 깨닫고 후회하는 것일까? 쑥스러워 하지 못한 말,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 입 안 가득 울먹이는 말로 올리는 고해성사다. 자신과 소파를 동일시한 화자는 앙상한 엉덩이를 푹신하게 받아줬는지? 등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어줬는지?, 자신에게 되묻는다. “그가 그 자리에 언제부터 기대 앉아있었는지”, “소라껍데기 같은 잦은 기침소리를 그날 아침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다고 진술하는 것으로 보아 그 때 귀담아 듣지 않음에 대한 자책이다. 한 생, 안락한 의자로 온몸을 받아준 무한사랑에 대한, 후회와 망연자실이 묻어있는 이 시를 읽는 내내, 일파만파 내 슬픔의 바다가 범람했다. 퉁퉁 부어오른 내 눈자위가 가라앉고 반성과 후회가 붉게 저물 무렵,

화자가 말한 “생의 무게는 한낮 무지개보다 가벼워라”를 되뇐다. ‘죽음은 도둑과 같이 찾아온다, 늘 깨어 있자.’ 화자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시간을 갖는다. 자신의 살갑게 굴지 못한 무뚝뚝한 성격을 탓한다. 그러나 반성은 늘 한 발짝 늦게 찾아오는지 반성할 무렵, 어느 날부터 툭툭 살갗이 터져버린 우리 집 소파 팔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내다버릴까? 가죽갈이를 할까? 저울질이다. 가족의 대소사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 건너온 시간을 어루만진다. ‘우리 등 뒤 도둑과 같이 찾아올 죽음’을 펼쳐 읽게 하는 이 시는 ‘성공해서 효도하겠다고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목소리 한 번 들려드리자, 부모님 야윈 어깨를 꼭 껴안아드리자,’ 세상 자식들의 고해성사며, 속울음이자, 반성문이 아닐까? 

전다형

◇전다형 시인은

▷경남 의령 출생
▷부경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졸업, 박사수료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등단
▷시집 '수선집 근처'(푸른사상사)
▷연구서 '한하운 시 고통 연구'
▷제 12회 부산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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