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고서로 풀어내는 사람 이야기 (18)매천 황현의 『매천집』으로 본 선비정신
조해훈 시인의 고서로 풀어내는 사람 이야기 (18)매천 황현의 『매천집』으로 본 선비정신
  • 조해훈 조해훈
  • 승인 2019.08.26 10:46
  • 업데이트 2019.08.26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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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례 매천사에 있는 매천 황현의 초상화.
전남 구례 매천사에 있는 매천 황현의 초상화.

요즘 국내외 정치 상황이 복잡한 가운데 필자는 매천 황현(黃玹·1855년~1910년)이 자꾸 떠올랐다.

알다시피 유학자였던 그는 1910년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통분하여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버린 배경에는 남들과는 다른 매천만의 어떤 정신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필자는 지금의 시기에 그의 그러한 정신을 한 번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먼저 매천의 절명시에 대해 알아보자. 전남 광양에서 태어나 순국 때까지 구례에서 산 그는 자결하면서 칠언절구의 절명시 4수를 지었다. 그는 조선의 지식인으로서 순국이라는 방법으로 일제에 항거한 것이다. 매천은 절명시에서 나라가 망하면 그걸 막지 못한 지식인은 당연히 목숨을 버려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매천의 위 시는 『매천집』(梅泉集·7권, 1911, 상해)의 권5에 들어있다.

그 중 넷째 수를 읽어보자.

일찍이 나라를 지탱할 조그마한 공도 없었으니
단지 인(仁)을 이룰 뿐이요, 충(忠)은 아닌 것이로다.
겨우 능히 윤곡(尹穀)을 따르는 데 그칠 뿐이요
당시의 진동(陳東)을 밟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구나.

자신이 죽는 것은 ‘충’을 다하려는 것이 아니고 선비로서 ‘인’을 이루기 위함이며, 적을 탄핵하다가 참형당한 송나라의 ‘진동’을 본받지 못하고 겨우 몽고병의 침입 때 자살한 송나라 선비 ‘윤곡’의 뒤나 밟을 뿐이라고 자책하였다.

2. 절명시가 수록된 『매천집』.
 절명시가 수록된 『매천집』.

매천은 “무릇 국가가 선비를 기른 지 500년에 나라가 망하는 날에 한 사람도 죽는 사람이 없다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느냐”하고 하여, 한 나라의 지식인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끼고 순국한 참된 선비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예기』, 「유행(儒行)」편에 ‘불망백성지병’(不忘百姓之病)라고 한 것처럼 선비라면 처하는 곳이 어디든 백성들의 근심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매천은 여겼던 것이다.

『논어』, 「태백(泰白)」편, ‘독신(篤信)’장에도 “천하가 도(道)가 있으면 제 몸을 나타내고, 도가 없으면 자기의 참된 속뜻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고서 숨긴다‘는 구절이 있다. 공자의 이 말처럼 매천도 도가 실현되지 못하는 망국의 시대이기에 자기의 참뜻을 숨기고 구례에 은거하여 처사(處士)의 삶을 산 것이다.

다산 정약용도 『여유당전서』 「기연아(寄淵兒)」에서 “임금을 사랑하거나 나라를 근심하지 않은 것은 시가 아니고, 시대를 가슴 아파하거나 풍속을 분히 여기지 않은 것은 시가 아니며, 찬미하고 풍자하고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뜻이 있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라고 하여 진정한 문학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 지를 제시하였다.

매천은 사회제도 모순과 매관매직의 부패상, 수령들의 가렴주구 등 도(道)가 서지 않은 시대적 배경 때문에 처사의 삶을 선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참된 선비는 어디에 있어도 현실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매천집』에서 그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학문적 과정을 중시하고, 시대 현실을 아파하는 문학관을 나타내었다.

창강 김택영이 상해에서 『매천집』 발간을 추진하면서 국내의 뜻있은 사람들에게 보낸 「통문(通文)」을 보면 “예로부터 절의를 지킨 선비가 손꼽을 수 없이 많으나, 문장까지 잘한 사람이 그 몇인가?”라고 하여, 절의를 지킨 선비이면서 문장까지 뛰어났다“(自古節義之士, 指不勝屈, 而有文章者幾人)라고 하였다.

선비가 벼슬에 나아가는 이유는 자신의 배운 것을 실천하기 위함이지 출세가 목적이 아니다. 참된 선비라면 도가 없는 시대에는 처사의 삶을 택하여 덕을 함양하여 때를 기다리는 것이 합당한 자세였다.

구양수의 「붕당론」(朋黨論)에는 군자와 소인의 구별을 ‘도(道)’와 ‘이(利)’로 하였다. 다시 말해 소인은 이익과 돈·벼슬을 좋아하지만, 군자는 도의(道義)를 지키기에 명예와 절개를 아낀다고 하였다. 당시 구한말 조정은 이익으로 나누어진 소인들의 붕당이었기에 망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매천은 인식한 것은 아니었을까?

<역사·고전인문학자, 교육학박사 massjo@hanmail.net>

<참고자료>

-김삼웅, 『매천 황현 평전-참지식인』, 채륜, 2019.
-이은철, 『매천 황현을 만나다』, 심미안, 2010.
-김경호, 「매천 황현-구한말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 『공자학』 28, 2015.
-박걸순, 「매천 황현의 당대사 인식을 둘러싼 논의」, 『한국 근현대사 연구』 55, 2010.
-윤인현, 「매천 황현의 문학에 나타난 선비정신」, 『한문학보』 23, 2010.
-이상식, 「매천 황현의 역사의식」, 『향토문화』 3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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