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왜 조국을 저격했을까?
윤석열은 왜 조국을 저격했을까?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9.10.03 12:58
  • 업데이트 2019.10.0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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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제7차 검찰개혁 촛불집회. 출처 : 미디어 몽구
지난 28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제7차 검찰개혁 촛불집회. 출처 : 미디어 몽구

이명박과 조국을 구별하는 능력 부재,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학습능력 부족

언어도단言語道斷! 윤석열은 검찰력의 최정예인 특수부 검사 20여 명을 조국 수사에 투입했다. 이는 12·12 및 5·18 쿠데타 수사와 맞먹는 규모이다. 검찰 최고 역량을 가진 검사들은 한 달 넘게 고작 자녀의 고교, 대학 시절 받은 표창장과 인턴증명서가 가짜인지 파헤쳤다. 성과는? 아직은 없다. 가히 말길이 끊어진다고 할 수 있다. 어이가 없어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언어도단이란 말은 본시 불교 용어이다. 진정한 도道나 진리는 말로써는 나타낼 수 없고, 말 너머의 어떤 것이라는 뜻이다. 말은 인간의 감정과 사상, 혹은 사실이나 진리를 가리킬 수 있는 최상의 도구이다. 그러나 불완전하다. 말은 화자와 청자의 약속이다. 청자가 모르는 사상이나 감정을 화자는 말로써 전달할 도리가 없다.

‘사람에는 충성하지 않는다’는 강골검사 윤석열이 어찌하여 ‘폭주 검찰총장’으로 전락했을까? 검찰공화국이라 불러도 될 정도의 무소불위 권력을 제공한 제도의 잘못도 분명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조직을 사랑한다’는 전근대적이고 가족주의적이며, 비민주적인 그의 말에 단서를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 ‘진리’에 서투르나마 접근해 보자.

먼저 법조인들의 기본 마인드는 어떠할까? 정인진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법조라는 직역의 체질이 개혁에 친하지 않다. 그 구성원들은 학생 시절 우등생과 모범생의 체험을 거쳐 인내력과 집중력을 요하는 사법시험을 통과한다. 그중 판사나 검사가 된 이들은 다시 도제식 훈련을 받고 조직의 논리와 코드를 몸으로 익히게 된다. 그리고 동기생들 간의 경쟁에 부딪히게 되고, 인정욕구에 시달리면서 조직에 헌신하는 사람으로 형성되어 간다. 조직은 이들을 보호한다.

조직 내의 인물이 개혁을 주도하는 것도 쉽지 않다.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 그런 비판적인 안목을 기르기 어렵다. 조직에서 출세할 가능성이 높을수록 비판적 마인드는 줄어든다. 법원이나 검찰을 떠난 사람에게도 ‘친정’을 욕하는 짓은 일종의 금기사항이다. 자칫하면 배신행위를 한다는 소리를 들을 위험이 있다.

검찰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라면 공격할 엄두도 못 냈을 국가기관을 민주화의 진행과 더불어 여러 차례 수사하고 기소한 경험을 축적해 왔다. 정보기관이나 대통령의 친·인척은 물론이고 전직 대통령 등 권력의 정점마저 수사해 기소했고 마지막으로는 전직 대법원장까지 구속 기소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들을 견제할 경쟁자도 보기 어렵다. 이런데다가 검찰은 여러 차례 정권 교체를 겪으면서 정치권력이 가지는 한계와 약점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조직을 사랑하는 윤석열은 검찰총장으로 욱일승천했다. 검찰 조직의 논리를 깊숙이 내면화한 인물이다. 어떤 조직이든 사회의 한 가지일 뿐이다. 하여 한 조직의 가치가 사회의 보편 가치를 구현할 턱이 없다. 한 조직의 가치를 내면화한 사람은 그만큼 사회 전체의 가치에는 눈을 돌리기 어렵다. 바야흐로 ‘터널시야’(눈앞의 상황에만 집중하느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파악하는 능력이 저하되는 현상)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터널시야를 가진 사람이 자기 직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면, 자신이 옳다는 자기 확신과 자의식이 강고해질 것이다. 김이택 논설위원은 윤석열에 대한 좋은 에피소드를 전한다.

“미국 소송 변호사 수임료를 누가 냈는지 한 번 알아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소송 수임료 수뢰 사건은 오로지 특수통으로 로펌 변호사까지 해본 윤석열 당시 서울지검장의 ‘감’에서 시작됐다. 미국의 소송비용이 엄청난데 자기 돈을 냈을 리 없다는 판단은 적중했다. 삼성에서 119억 원 뇌물 수수 사실이 드러났다.

이른바 ‘조국 의혹’ 수사 역시 대검에 축적된 기존 ‘정보’에 론스타 등 펀드 수사 경험이 많은 윤 검찰총장의 ‘감’이 더해져 시작됐다는 관측이 많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지명 뒤 윤 총장이 임명권자에게 ‘위험성’을 직접 알리려 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검사로서 뛰어난 업무능력과 탁월한 ‘감’과 ‘촉’을 가진 윤석열이 놓친 게 있다. 이명박과 조국의 차이를 변별할 수 있는 능력이 결핍한, 터널시야의 ‘검사’로서 당연한 귀결이다. 허구헌날 악인만 상대한 윤석열으로서는 ‘강남좌파’ 조국도 응당 이명박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을 터이다. 그러나 조국이 어떤 사람인가. 이십대부터 인연 맺은 조광희 변호사를 통해 알아보자.

그와 알고 지낸 것은 내가 석사 과정에 입학해 형법을 전공하면서부터다. 그는 학문에 뜻을 두고 박사 과정에 있었고, 이미 학교에서 존재감이 뚜렷했다. 함께 수업을 듣던 내가 사법시험에 합격한 직후 그는 진보적인 학술단체에서 활동할 것을 권했다. 대학 시절 변변한 활동을 하지 못해 목이 말랐던 나는 권유에 따랐다.

그때의 (법무장관) 후보자는 연구자로서 명석했고, 운동에도 헌신적이었으며, 생활태도는 부유한 환경과 달리 청교도적이었다. 자유주의적 사고와 감정에 기울어 방만했던 내게는 보기 드문 인물로 비쳤고,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그는 내가 사법연수원에 다닐 무렵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나는 의혹 중 몇 가지는 모함이라는 것을 즉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자녀가 의외의 장학금을 받았거나 고교 때 의학논문의 저자가 된 문제, 그리고 민정수석 시절 투자한 펀드에 대해서는 나도 당황했다. 위법 여부는 어차피 절차에 따라 가려질 것인데, 정확한 내막을 모르는 나로서는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나는 오랜 기억 속 후보자를 떠올리며, 괴롭고 서운한 마음으로 계속 생각해 본다. 어느 날은 잠도 오지 않는다. 자기관리가 철저했던 그가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그를 잘못 알고 있던 걸까. 세월 속에서 그도 약육강식의 세계에 적응한 생활인이 된 걸까. 그가 가진 많은 자질과 자원이 성찰의 힘을 빼앗은 걸까. 물론 누군가가 나를 샅샅이 뒤질 것도 없이 슬쩍 흔들어 보기만 해도, 나의 여러 잘못이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겨우 조광희이고, 그는 내가 흠모했던 조국 아닌가.

그가 적극적으로 선을 넘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 믿음이 잘못인 게 밝혀진다면, 기꺼이 바보가 되어 비웃음을 받겠다.***

검찰은 불의를 제거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는 등불이 아니다. 선출되지 않은, 곧 검증 받지 않은 일개 검찰총장이 터널시야의 ‘감’과 ‘촉’에 의존해, 대통령의 인사권과 국회의 검증 절차를 무력화하고, 정치와 사회를 쥐락펴락하려고 한다는 것은 언어도단 그 이상의 무엇이다.

급기야 자신의 ‘촉’과 ‘감’이 어긋나자, 국가 전복 세력에 투입할 만한 검찰력을 동원하여 고작 한 장관의 가족을 탈탈 털고, 나아가 중학생의 일기장을 압수하려는 치졸한 작태까지 연출한 것이다. 이것이 법만 알고 ‘감’과 ‘촉’에 기대는, 검찰공화국의 법전문가 혹은 법기술자인 검사·검찰총장의 근원적 한계이다. 그러나 그들은 검사의 시각으로 세상사를 재단한다. 반성이나 성찰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검찰을 어떻게 제어할까?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 radical theory change)! 과학의 발전도 혁명적으로 일어난다.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일찍이 토머스 쿤(Thomas Samuel Kuhn. 1922~1996)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의 역사는 연구자들의 객관적 관찰에 의한 진리의 축적에 따른 점진적 진보가 아니라 혁명 즉 단절적 파열에 의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통해서 과학이 발전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과학혁명과 마찬가지로 정치혁명도 그 목적이 기존 제도를 파괴하는 방법을 통해 정치적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므로, 곧 패러다임 그 자체의 전환이 필요하므로 정치에 의존해서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검찰개혁도 마찬가지다. 당리당략에 매몰된 정치권에 검찰개혁을 맡기면 백년하청이다. 혁명적으로 패러다임 자체를 혁신해야 한다.

민주국가에서 그 수단으로서 대다수 국민 뜻의 결정체인 ‘촛불’이 그 무엇보다 강력하다. 이 촛불을 통한 국민의 직접적인 검찰 통제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문민 우위, 민주적 통제의 요체임은 말할 것도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명박과 조국’을 구별할 능력을 갖지 못한 것은 직업 탓이라고 가벼이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그의 두드러진 결점은 학습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박근혜 탄핵으로 역사에서 장삼이사들도 배운 걸 그는 아직 학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0월 5일(토), 또 200만이 넘는 촛불에는 대오大悟하여 각성하겠지. 명색이 자타 공히 명석하다고들 하는 검사들의 우두머리, 검찰총장이니까.

*정인진(변호사·법무법인 바른), 「검찰개혁은 왜 어려운가」, 『경향신문』, 2019년 9월 16일. **김이택, 「조국의 길, 윤석열의 길」, 『한겨레신문』, 2019년 9월 26일. ***조광희(변호사), 「가까이에서 본 조국」, 『경향신문』, 2019년 9월 3일.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