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젠 태극기 ‘휘날리지’ 말고 가슴에 ‘품을 때’
[기고] 이젠 태극기 ‘휘날리지’ 말고 가슴에 ‘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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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08 16:32
  • 업데이트 2019.10.0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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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거주하는 '청노루'라는 필명의 독자께서 지난 5일 서울 서초동 촛불집회에서 '태극기 등장'을 보고 쓴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는 검찰개혁과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기원한다고 했습니다.

서초동 촛불집회의 태극기 퍼모먼스 ⓒ오마이뉴스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서로 상대방을 향해 ‘거짓말쟁이’라고 논쟁을 벌였다. 미적분의 발견을 누가 먼저 했는가를 놓고 서로 거짓말쟁이 비방을 했다. 닉슨과 국무장관 딘 사이에도 워터게이트 사건을 두고 비슷한 거짓말쟁이 논쟁을 벌였다.

대한민국의 수도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서로 거짓말 설전을 벌리다 10월 5일 서초동 집회에서 광화문의 태극부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진 태극기가 등장했다. 괘를 로고같이 사용한 것은 참신해 보이기도 했다. ‘태극기’를 사이에 두고 서로 긍정을 해버린 것이다. 서초동 촛불 집회에서 이를 “태극기를 되돌려 받기” 라고 했다.

상대방이 자신을 향해 ‘거짓말쟁이’라고 할 때에 너도 ‘거짓말쟁이’라 하지 않고 ‘그래 네 말이 참말이야’라고 해버리면 화해는 쉽게 이루어진다.

예수에게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 돌로 치려하는 바리새인들은 향해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고 할 때에 바리새인들은 자기 자신들도 간음한 죄인이란 사실을 자각하고 돌을 놓고 돌아서고 말았다.

적어도 예수 시대엔 이 만큼의 자의식이 살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현실은 간음한 여인에게 ‘돌로 치라’란 말만 거두절미해 예수를 폭력 방조범으로 몰고 있으며, 들었던 돌을 손에서 놓기는커녕 여인을 향해 돌을 던지고 예수는 형사 고발하는 형국이 된 것이 한국 사회이다.

‘내로남불’이란 말이 이젠 하나의 상투어처럼 변해버렸고 막말만 오가고 있다.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것 가운데 말이 바로 되지 못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이 위기를 어떻게 타고 넘어 갈 것인가?

태극기 앞에 서로 숙연해 졌으면 한다. 나라의 자랑 가운데 우리 태극기도 손꼽힐 것이다. 만국기 가운데 ‘태극기’가 우리나라의 국기인 것은 다행이고 자랑이라 할 수 있다.

우주는 모두 대칭 구조로 돼 있고 대칭은 두 종류뿐이다. 반영대칭과 회전대칭이 그것이다. 태극기 안의 반영대칭이란 음과 양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회전대칭이란 괘들이 원 주위를 순과 역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현대 수학의 꽃은 군론group theory이다. 군론에서는 이 두 대칭 관계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괘가 시계바늘 방향(역)과 그 반대방향(순)으로 회전하는 것을 군론에서는 역원逆元이라고 한다.

이러한 태극기가 점술가나 어느 정치 집단의 전유물이 되어선 안 된다. 이번 서초동 집회에서 광화문에서와 같이 태극기를 든 것은 가히 경하할 만하다. 그래서 서초동과 광화문을 국론 분열로 보지 말고 서로 반대하는 세력이 역원 관계를 만드는 것으로 한 번 생각해 보자.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지만 역원을 한 원 안에서 만들지 못하고 깨어질 때에 이것은 위기이고 위험하다 아니할 수 없다. 역원을 만드는 것을 방해하고 싫어하는 존재가 있다. 일본이다.

우리의 내부를 분열시키고 재침략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일본은 우리 내부 분열을 군침다시며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모처럼 양 손에 같이 든 태극기에 담긴 의미를 다시 생각하며 양 집회가 모두 국운 상승을 위한 역원의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젠 태극기를 휘날릴 때가 아니고 가슴에 품고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할 때이다.

<미국에서 청노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