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의 만주 일기 (27)두 얼굴의 북녘 여성
박명호의 만주 일기 (27)두 얼굴의 북녘 여성
  • 박명호 박명호
  • 승인 2019.10.30 10:42
  • 업데이트 2019.10.3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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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김대현 시인의 '도라지꽃' 출판기념회에서 북녘 아가씨들과 함께.

만주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북조선 사람들은 그들이 경영하는 식당의 종업원이다. 주로 유경, 금강, 모란과 같은 이름을 쓰는 식당이다. 그러한 북한 식당의 가장 큰 특징은 상냥한 매너의 미녀 종업원들이다. 교양(사상)으로 무장된 미녀 군단은 일찍이 부산 아시아게임 등에서 그 실체를 확인했지만 먼 이국에서 그녀들을 만난다는 것은 묘한 느낌을 제공해 준다. 일단은 같은 말을 쓰는 같은 동포라는 인식이고, 그러면서 때로 총을 맞대는 아주 무서운 적대국의 사람들이며, 또 그러면서 손님과 접대부, 아니 그 접대부도 돈에 의한 주종관계라는 ‘자본주의식 접대부’와 ‘평등 의식에 의한 직업’이라는 차이가 존재하는 묘한 맛이다. 어떤 여행객들은 그 묘한 분위기를 참지 못해서 팁을 가슴에 찔러준다든지 손을 잡는다든지 끌어안는다든지 하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저러나 한국 사람들이 중국여행가면 무조건 찾는 것이 그들이 있는 음식집이다. 중국여행에서 가장 힘든 것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다. 특히 모든 음식에 묻어 있는 독특한 중국식 향냄새이다. 그러나 북한 식당에 가면 그런 냄새가 완벽하게 사라진다. 돈벌이가 되니 북한 식당도 많이 늘었다. 한국 관광객이 있는 곳에 북한 식당이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녀들이 많이 달라졌다. 우선 뚱뚱한 아가씨가 많아졌다. 살이 찐 북한 여성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팁도 주면은 받아 챙기기 시작했다. 전에는 팁을 건네면 오히려 팁을 건네는 남쪽 사람들에게 면박을 주는 그 당당함이 있었는데 지금은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노력을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북조선 미녀들이 살이 찌기 시작한 것과 대조적으로 한편에서는 너무 비참한 또 다른 북조선 여인들이 만주 땅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몇 해 전 한만(韓滿) 국경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만난 북조선 여인의 이야기를 내 만주일기 끝자락에서 하고자 한다.

지인 몇과 조선족 민가에서 일박을 하면서 저녁 술판이 벌어졌다. 민박 주인이 여자를 부르자고 했다. 우리가 시큰둥해 하자 북조선 여자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 말에 우리는 대단한 호기심이 발동했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동의했다. 그리고 잠시 뒤 북조선 여자가 왔다. 아, 그녀는 우리가 그들의 식당에서 흔히 만나는 그런 미인이 아니었다. 삶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아니 사냥꾼에 쫓기는 가련한 짐승처럼 너무 가련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난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젖먹이 아기까지 데리고 있었다. 술자리의 분위기는 갑자기 아주 엄숙해져 버렸다. 민박 주인은 그런 우리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 우리의 사내답지 못함을 나무랐지만 우리는 오히려 우리가 손님을 모시듯 정중하게 몇 마디 이야기만 나눈 뒤에 우리의 여행 경비까지 털어 주고는 보냈다.

그녀는 청진에서 교사까지 한 인테리겐차였다. 가족의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국경을 넘었고, 신변의 안전을 위해 정신이 온전치 못한 한족 룸펜과 결혼하여 아이까지 얻은 상황이었다. 돌아가면서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삼촌이 속초에 살고 있다면서 이름과 나이를 적어 주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나는 그녀의 삼촌을 여러 경로로 수소문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수렁 속에서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유일하게 기대할 것이라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한국에 있는 삼촌에 기대보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2년이 지난 여름 다시 그곳에 가면서 그녀를 찾았다. 삼촌에 관한 정보를 더 알아내 찾아 줄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팔려간 것인지, 잡혀서 북으로 송환되어 갔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삶의 험난함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오늘, 저 만주 땅에는 살쪄가는 화려한 미녀군단과, 그녀들보다 더 많은 북조선의 여인들이 생사를 넘나들면서 혹은 한족 사내들의 성노리개로 혹은 씨받이로 혹은 술집 작부로 노동으로 오직 몸 하나에 의지해 떠돌고 있는 것이다. <끝>

박명호

◇소설가 박명호는

▷경북 청송 출생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장편 '가롯의 창세기', '또야, 안뇨옹'
▷소설집 '우리 집에 왜 왔니', '뻐구기뿔', '어떤 우화에 대한 몇 가지 우울한 추측'
▷잡감집 '촌놈과 상놈' 등
▷부산작가상, 부산소설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