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과 보람 - 진정한 여행
쾌락과 보람 - 진정한 여행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9.11.11 10:47
  • 업데이트 2019.11.11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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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픽사베이

진정한 여행 / 나짐 히크메트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지금, 두 가지 ‘시간 씀’에 대해서만 관심한다. 쾌락을 추구하는 일과 보람을 얻기 위한 일, 이 둘이다. 그러나 곰곰 되짚어 보면 어린 시절부터 죽 그랬던 것 같다. 그땐 의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쾌락과 보람은 즐거움의 두 인자이다.

사람이 한 평생을 소비함에 있어 두 종류의 시간이 있다. 즐거운 시간과 즐겁지 않은 시간, 이 둘이다. 나는 쾌락과 보람을 추구하는 시간 이외의 모든 시간은 즐겁지 않은 시간으로 간주한다.

쾌락에 쓰는 시간과 보람을 위해 쓰는 시간을 어떻게 구분할까? 학창시절 중간고사를 며칠 앞둔 날 축구 한·일전이 열렸다. TV를 통해 그 경기를 보는 것은 쾌락추구다. 책상에 앉아 연필을 굴리는 것은 보람을 위한 시간 씀이다. 나는 TV 시청과 책상 고수가 반타작이었던 것 같다.

현재는 ‘술을 마시느냐, 뭔가 읽느냐’로 대표된다. 문제는 술을 마시는 과정은 유쾌한데 후과가 괴롭다. 부작용이 많다. 읽는 과정은 괴로우나 결과는 개운하다. 부작용이 전혀 없다. 그럼 이치상으로 어떤 일에 올인(all-in)해야 하나?

‘할단새’를 종종 기억해낸다.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네팔 카투만두의 전설의 새다. 히말라야 산지는 일교차가 극심하다. 낮은 화창한 봄날 같지만, 해가 지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눈발이 날리고 혹독하게 추워진다. 할단새는 낮에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은빛 설경을 즐기며 날아다닌다. 그러다가 해가 지면 혹독한 추위 속에서 울어대며 ‘날이 새면 집을 지어야지.’라고 결심한다.

하지만 아침이 되어 산등성이 너머로 따뜻한 햇살이 퍼지면 간밤의 결심은 온데간데없어진다. 따뜻한 햇살 속에서 설경을 만끽하며 즐겁게 날아다닌다. 그러다가 또 밤이 되면 깃털에 파고드는 매서운 추위 속에서 울어대며 결심한다. ‘날이 새면 집을 지어야지.’ 그러나 다시 날이 새면 따뜻한 햇살 속으로 날아오른다.

어떤 약속이든 100% 지킨다고 공언하는 사람, 거짓말이든지 징그럽든지 둘 중 하나다. 한마디로 ‘비인간적’이다. 인간은 신과 할단새 중간이다. 한데도 머리로는 신이 되려하고 손발은 할단새인 게 문제일 뿐이다. 하여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티끌을 비난한다. 제발 내 자신부터 생긴 대로 살아야겠다. 그래서 남에게는 물론 자기 자신한테도 좀 더 너그러워야 하지 않을까?

나는 60대다. 공자도 나와 같은 사람일 뿐이다. 실천력이 비범한 지식인. 40세에 불혹? 갈팡질팡한다. 50세에 지천명? 앞가림에도 시력이 모자란다. 60세에 이순? 남의 말에 시시비비를 가린다. 불혹이니 지천명이니 이순은 정말 언감생심이다. 다만 70세에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란 말은 가슴에 딱 와 닿는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행동하여도 도(옳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쾌락을 추구하다 좀 괴로우면 어떠랴. 보람을 추구하는 과정이 좀 괴로워도 또 어떠랴. 다 즐거움을 추구한 일이다. 생긴 대로 살자. 공자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할단새보다는 좀 나은 한미한 인간이다. 쾌락을 추구하다 괴로워 분연 작심하고 괴로워하며 준비하여 보람을 챙기기도 하리라.

‘진정한 여행’의 장도에 비로소 올랐다.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