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현이 만난 고전인문학자 (9)조해훈 목압서사 원장
조송현이 만난 고전인문학자 (9)조해훈 목압서사 원장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19.11.21 18:15
  • 업데이트 2019.11.2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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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압서사 앞에서 조해훈 시인. 사진=조송현

다향만이 가득했던 지리산 화개골에 요즘 문향이 피어오른다. 부산에서 30여년간 시인이자 문화전문기자로 활동했던 조해훈(59) 박사가 3년 전 이곳에 터잡으면서다. 교육학 박사인 조해훈 시인은 화개골에 와 고전인문학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자택에 서사(서당)를 열어 마을주민에게 한시를 가르치고 한시백일장을 개최하는가 하면 고서박물관과 문학박물관을 만들어 테마 기획전을 꾸준히 연다. 지난주말 고전인문학 학당인 목압서사를 찾아 조해훈 시인을 만났다.

-목압마을의 목압서사, 마을 이름과 학당이름이 고색창연하게 느껴집니다. 목압이란 단어의 유래가 궁금해집니다.

▶목압서사(木鴨書舍)는 경남 하동군 화개면 맥전길4(운수리 702, 목압마을)에 제가 세운 작은 학당입니다. 서사는 옛날 학동들이 서당을 마친 뒤 공부하는 공간인데, 넓은 의미의 서당으로 보면 됩니다. 서사 내에 작은 목압문학박물관과 목압고서박물관이 있습니다.

‘목압’이란 단어의 유래는 이 화개골에 처음 절을 세우려는 한 선사가 화개동천 상류에서 나무오리(木押·목압)를 물에 떠내려보내 그것이 멈추는 곳에 절을 짓겠다고 했는데 마침 이곳 마을 앞 계곡에 멈췄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목압서사와 주변에 절을 지어 ‘목압사’라 칭했고, 마을 이름을 목압마을로 했다는 전설이 전해내려 옵니다. 즉 목압서사 위치가 옛 목압사 터이고, 담벼락 뒤쪽에 목압사 주춧돌로 추정되는 큰 돌들이 현재에도 몇 개 나뒹굴고 있지요. 쌍계사의 금당 안에 있는 석탑도 1800년대 말에 이곳 목압사 터에서 가져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목압문학박물관 및 목압고서박물관의 '제5차 기획전'의 내용을 설명하는 조해훈 시인. 사진=조송현

-지난해 9월부터 목압문학박물관과 목압고서박물관이 기획전을 개최해온 것으로 합니다. 이번 ‘제5차 기획전’은 어떤 내용인가요?

▶문학박물관과 고서박물관은 3개월에 한 번씩 주제와 전시자료를 바꿔 기획전을 갖고 있습니다. 내년 2월 8일까지 전시되는 이번 5차 행사에서 문학박물관은 주제가 ‘지리산 산행 시집’이고, 고서박물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유학자들’입니다. 두 박물관의 기획전 주제가 같거나 비슷할 때도 있고, 이번처럼 상관성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학박물관에 전시된 자료들은 지리산을 소재로 지은 시가 게재된 시집과 아예 지리산을 시집 제목으로 한 시집도 있습니다. 이를 테면 우리나라에서 산악시인으로 유명한 권경업 시인의 시집을 비롯해 지리산에 살며 지리산을 소재로 시를 짓고 있는 이원규 시인과 박남준 시인, 지리산을 소재로 한시를 지은 보우스님, 그리고 시집 『지리산』을 발간한 이성부 시인, 『불무장등』·『불일폭포 가는 길』 등 지리산의 봉우리나 능선 등을 제목으로 시집을 펴낸 강영환 시인 등의 시집들을 전시 중입니다.

고서박물관에 전시된 자료들은 어찌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자라고 할 수 있는 고운 최치원의 『계원필경』과 성리학을 도입한 것으로 평가받는 회헌 안향의 『회헌선생실기』, 성리학의 종장으로 불리는 포은 정몽주의 『포은집』, 그리고 퇴계 이황·학봉 김성일·대산 이상정·회재 이언적·점필재 김종직 등 우리나라 유학의 최고봉들의 문집들입니다.

-깊은 골짜기로 유명한 지리산 화개골에 이런 박물관을 운영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운영하는 박물관은 해당 관청에 등록이 된 정식 박물관이 아닙니다. 제가 사는 목압마을 주민들을 위한 아주 작은 도서관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입장료를 받는 게 아니고 상업적 행위를 하지 않아 군청에서도 “괜찮다”고 해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방금 말씀 드렸다시피 박물관 운영에 대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제가 소장한 문학 및 고서자료들을 이용해 지역 주민들과 문화적 향수를 공유하면서 서로 살아온 그리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유럽이나 일본 등지에 가면 볼 수 있는 마을단위의 자그마한 규모의 박물관보다 훨씬 작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다고 전시 내용이 부실한 것은 아닙니다. ‘규모는 초라하지만 내용은 알차게’라는 모토를 가지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느 글에서 언급한 적도 있지만 이 지역 원주민들은 타 지역에 비해 여러 혜택을 받지 못했고 아픈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학교 공부도 거의 하지 못했지만 6·25 전쟁으로 부모와 형제, 친지들을 잃은 분들이 많습니다. 최인훈 선생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훈이 남한과 북한 모두 싫어 제3국을 택해 배를 타고 가다가 중립국도 자신이 원하는 곳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결국 투신하고 만 것처럼 마을 어르신들의 마음 저변에는 세상의 외톨이라는 서글픈 정서가 깊게 배어 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야기의 줄거리를 조금 보완해주는 방법밖에 없어 늘 미안한 생각입니다. 그런 게 제가 여기 들어와 사는 값(?)을 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YTN의 '구석구석 코리아' 제작팀과 함께. 오른쪽 여성은 방송인 아비가일.

-이곳 박물관을 이용하거나 다녀간 사람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요?

▶주민들이 최고의 손님이고, 농사짓는 이야기와 건너편 용강마을의 누가 어떻더라는 이야기 등 저와 가장 공감대를 많이 형성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 외에도 제 지인들과 화개골을 방문하시는 관광객들, 그리고 외국 여행객들도 오십니다. 이를테면 올해 1월 1일, 새해 첫날 오전에 차의 무역로를 공부하신다는 중국 베이징대의 한 교수님이 한국인 제자 교수님들과 함께 방문해 전시된 고서 자료들을 둘러보고 차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분은 중국 운남성에서 생산된 차를 티베트 등으로 운송하는 길인 ‘차마고도’를 명명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운남성에서 시작해 그 길의 일부 구간을 답사한 적이 있어 무척 반가웠고 공통된 대화를 많이 나눴습니다. 학계에서는 시인이자 부경대 총장을 지내신 강남주 선생님을 비롯해 신라대 엄경흠 교수님, 부산대 김용한 교수님, 그리고 며칠 전에는 동아대 김승호 교수님 등 올해에만 40, 50분가량의 교수님들이 방문했습니다.

국제신문의 송문석 전 사장과 배재한 이사, 부산일보 백태현 선임기자와 이진원 국장 등을 비롯한 여러 기자들, 그리고 조용원 조선일보 칼럼리스트 등도 다녀갔습니다. 화개골을 취재하는 신문사와 방송사의 취재진들도 수시로 찾아옵니다. 그리고 화개골을 찾은 외국인들도 10여 명이 방문했습니다. 젊은 외국인 여행가들에게는 숙식을 제공해주고 화개골과 화개차에 대한 설명을 해줍니다. 그 외에 강은교 시인을 비롯한 여러 시인, 고정남 사진가를 비롯한 문화예술인 등이 다녀갔습니다. 부산의 이창희 목사님과 감천문화마을의 관음정사 보우스님 등 종교인들도 방문하는 등 참으로 다양한 분들이 찾아오십니다. 외부 방문객 수는 올 상반기에 150여 명이, 올 하반기에는 300명가량이 될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목압마을 주민 및 인근 마을에 사시는 분들과 가장 많은 스킨십을 합니다. 소박하지만 제가 봄에 정성들여 만든 차를 함께 마시며 일상에 대한 안부를 묻고 살아가는 이야기 등을 나누는 게 가장 흐뭇하고 보람이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타지 방문객, 심지어 외국인 관광객까지 찾을 정도라면 독지가나 관청의 지원을 받아 박물관을 확대해 본격 운영할 가치가 있는 게 아닌가요?

▶가끔 “사설박물관으로 등록하는 일을 대신 해주겠으니 그러지 않겠는냐”고 연락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등록된 사설박물관이 300개 이상인 것으로 들었습니다. 등록을 하려면 학예사를 채용해 상근시켜야 하고, 항온·항습 등의 시설도 갖춰야 하며 행정적인 업무도 해야 하는 등 복잡해져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저는 그런 행정적인 분야를 잘 알지 못할 뿐더러 추진이나 경영 능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등록 박물관으로 전환되면 주민들을 위한 저의 순수한 마음이 퇴색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관청의 지원은 하나도 없습니다. 목압서사를 조용히 운영하고 있어 면사무소나 군청에서는 잘 알지 못할 겁니다. 저는 은일하겠다는 마음으로 목압마을로 들어온 사람입니다.

5차 기획전에 전시 중인 고서를 살피는 조해훈 시인.

-이곳 화개골에서 하는 주업은 무엇인가요?

▶시도 쓰고, 연재 글 및 잡글도 쓰고, 가끔 논문도 씁니다. 저는 신문사와 대학을 합쳐 30년을 근무했지만 사람이 못나 그다지 현달하려고 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1987년에 『오늘의문학』이라는 무크지 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해 겨우 시인이라는 명패를 얻어 지금껏 시를 쓰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역사와 문학을 좋아해 그걸 버리지 못하고 지금도 어정쩡하게 둘 다 붙들고 있는 형국입니다. ‘화개학연구원’이라는 조그마한 간판을 대문에 걸어놓은 것도 그러한 차원입니다. 아주 미미하지만 혼자서 화개 지역의 역사와 고전 등을 소재로 한 논문을 한 편씩 발표해 화개골의 역사와 문화를 향토사적인 수준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한시에 나타난 하동 화개차의 제 양상’ 주제의 논문을 지난 해 등재학술지에 발표했고, 이 골짜기에서 출가한 서산대사 휴정에 관한 논문을 작성해 다듬고 있는 중이며, 그 외 최치원과 관련한 논문 등 3, 4 편을 준비 중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해 역사학(고고학)과 한문학(고전문학)을 각각 공부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대학 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집 뒤의 산에서 차 농사도 짓고 있고, 차 모임이나 관련 행사에도 간간이 참여합니다. 심장이 좋지 않아 예전처럼 지리산을 종횡무진 다니지는 못하지만, 컨디션 봐가며 산행도 조금씩 합니다. 3년 전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심장 혈관에 스탠트를 삽입한 상태이며, 당뇨약과 함께 심혈관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벌써 한 달 정도만 있으면 해가 바뀌네요. 연말과 내년 계획이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앞으로의 삶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지금처럼 살아가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제가 원해 들어왔으니, 제 삶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이자 한학자인 제 선친께서 목압마을에서 서당을 운영하면서 차 농사를 짓고 살기를 원하셨지만 그 작은 소망을 이루시지 못했습니다.

올해 목압서사에서 행사가 두 건 있을 것 같습니다. 화개장터 섬진강 건너편 광양 느랭이골 초입에 살고 있는 이원규 시인이 이달 30일 점심 무렵에 목압서사에서 미니 북콘서트를 가질 계획입니다. 부산에서 시인인 배동순 동백시낭송회장을 비롯해 시인·시낭송가 40여 명이 화개로 문학기행을 옵니다. 그 분들과 주민들을 모신 가운데 이원규 시인을 초청해 북콘서트를 갖기로 계획돼 있습니다. 또한 현재 국립공원공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권경업 시인이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역시 목압서사에 와 북콘서트를 가질 예정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악시인인 권 이사장이 목압문학박물관의 ‘지리산 산행 시집’ 기획전에 공감을 하신 것입니다. 이원규·권경업 시인 두 분 모두 화개 주민들을 위해 재능기부를 하시기로 했습니다.

또한 오는 23일 낮에 ‘제3회 목압서사 미니 한시 백일장’을 열 예정입니다. 해마다 4월과 11월에 5명가량의 참가자들로 한정해 목압서사 마당에서 한시 백일장을 갖고 있습니다. 제출된 한시를 심사해 목압서사 원장 명의의 상장과 부상을 줍니다. 부상은 제가 제다한 차와 목압서사 아래에 있는 온천에서 목욕을 할 수 있는 입장권을 드립니다. 지원을 받는 게 아무 것도 없다보니 상품이 초라합니다.

또한 목압서사에서 무료로 한시 강의와 인문학 및 한문 강좌 등을 열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에는 이곳에서 한시를 공부한 주민들이 스스로 지은 한시를 발표하는 마당인 ‘제1회 목압서사 한시읊기 대회’를 화개골 초입의 호모루덴스 카페에서 가진 바 있습니다. 현재에는 초등학생들이 매주 한자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환갑인 내년에 시집 두 권과 한시집 한 권을 펴낼 계획입니다. 시집 한 권은 원래 올해 후반기에 간행될 예정이었는데 출판사에서 함께 작업할 사진가의 섭외 문제로 내년으로 미뤘습니다. 다른 한 권은 차를 소재로 지은 시들만으로 묶습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저는 어렸을 때부터 차를 마신 차인입니다. 한시집은 그동안 지어놓은 한시들을 골라 환갑맞이 기념으로 펴내려고 수년 전부터 계획했던 것입니다. 젊어서 한시집을 내는 게 좀 부담스러웠습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목압서사를 방문하는 많은 분들에게 화개골의 역사와 화개차에 대하여 설명해줄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것 역시 시원찮지만 역사와 고전인문학을 공부하는 제가 할 역할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내방객들과 함께.

-끝으로 화개골을 간단히 소개해주십시오.

▶알다시피 화개골은 칠불사의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일곱 아들 설화부터 신라시대의 유적지인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고운 최치원의 전설들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또 이곳은 백운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도 나와 있지만 고려시대에는 차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다소(茶所)였습니다. 그리고 고려 후기에는 청학동을 찾아 이곳에 왔던 쌍명재 이인로의 시를 비롯해 조선시대에 불일폭포 인근이 청학동으로 인식돼 남명 조식을 비롯한 수많은 문사들이 찾아온 기록과 자료가 많습니다. 근현대 들어서는 여순사건의 주모자들이 이 골짝으로 피신해왔지만 결국은 소탕된 사실, 6·25 전쟁 때 남부군과 이현상 총사령관이 이 골짝에서 생을 마친 것 등 우리나라에서 화개골만큼 고대에서 근현대까지의 역사와 문화를 긴직한 공간이 드뭅니다. 또한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와 함께 조선시대에 차문화를 부흥시켰다는 초의선사가 『다신전』을 등초하고 『동다송』을 기초한 곳도 이곳 화개골이지 않습니까.

◇조해훈 시인은

▷1960년 대구시 달성군 논공 출생 ▷영남대 사학과 졸 ▷부산대 고고학전공 박사과정·신라대 한문학전공 박사과정 졸업(교육학 박사). ▷1987년 『오늘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노랭이 새끼들을 위한 변명』 및 대중 역사서 『필사본 「화랑세기」를 통해본 풍월주의 세계』 등 저서 20여 권 ▷국제신문 문화전문기자 ▷현 목압서사·화개학연구원장

<동아대 겸임교수·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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