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녘, 쓸쓸치 않냐, 고 묻거든
저물녘, 쓸쓸치 않냐, 고 묻거든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9.12.25 20:51
  • 업데이트 2019.12.25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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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녘. 출처 : 픽사베이

강함은 부드러움만 못하고, 부드러움은 고요함만 못하다. 강하면 부러진다. 부러져서도 강하면 사멸한다. 부러졌어도 부드러우면 회생한다. 그러나 회생은 ‘생존’이지 ‘생활’이 아니다. 부러진 상흔은 남아 있다. 기둥에 박힌 대못을 뽑아내도 자국은 남듯이. 상흔이 아물려면 그만한 세월과 그만한 고통의 감내가 필요하다. 고통을 부드러움으로 감싸 그만한 세월을 견디게 되면, 비로소 고요해진다. 고요함은 평안이다. 한낮의 즐거움과 저물녘 쓸쓸함, 한낮의 고통과 저물녘 평안, 어떤 게 더 바람직한 삶일까?

雜詩(잡시·이것저것 읊음) / 陶淵明도연명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
彩菊東籬下(채국동리하)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此間有眞意(차간유진의) 欲辯已忘言(욕변이망언)

사람들 틈에 오두막집 엮어 살지만
시끄럽게 수레 몰고 찾아오는 이 없다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그럴 수 있소
마음이 속세에서 멀어지면 사는 곳이 어디든 절로 외진 곳이 된다네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 드니
마음 한가로이 남산이 보이네
산기운 날 저물자 더욱 좋고
날 새들 짝을 지어 집으로 돌아온다
이런 가운데 자연과 삶의 참뜻이 있는데
말을 하려다 어느덧 말을 잊었네

절창이다. ‘말을 잊은’ 사람이 마음에서 욕심을 덜어내고 또 덜어낸 후에나 노래할 수 있는 절창 중의 절창이다. 그러나 대시인 도연명이 ‘참뜻(眞意)’을 깨쳤다고 상정할 필요는 없다. 주장에 논리를 세우지 않아도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 ‘시詩’라는 그릇을 잘 활용한 훌륭한 시인일 뿐이다.

흔히들 대문호나 대과학자나 영웅을 신격화한다. 우리 인간들 반열에서는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무슨 천재天才를 타고나 보통 사람과는 격이 다르다고들 한다. 이 신격화에서 ‘자기합리화’를 본다. 자기 열등감을 감추려는 지극히 인간적인 몸부림이다. 그들과 내가 동격이라면 그들의 성취에 비해 내 삶이 한없이 초라해지니까, 그들은 신격화하여 내 비교대상에서 제외시키려는 것은 아닐까?

나폴레옹의 시종侍從은 나폴레옹을 영웅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시대의 요구에 운 좋게 부응한 보통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시종이 사람 보는 눈이 없는, 남을 모시기나 해야 하는 천품賤品이었기 때문일까? 나는 영웅도 ‘시대의 산물’일 뿐, 보통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생일잔치가 숙문宿問이다. 생명의 탄생을 축하는 일이야 당연지사이다. 마는, 매년 왜 생일 축하를 해야 할까? 생일生日은 구로일劬勞日이다. 당사자는 아무런 수고 없이 탄생한 날이지만, 어버이는 생명을 낳느라고 수고한 날이다. 그러므로 생일잔치는 당사자가 아니라 어버이, 최소한 어머니께 베풀어야 아귀가 맞는 일 아닐까?

정치나 경제, 교육과 복지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전문가이다. 박사다. 주위의 전문직 종사자나 백수까지도 다 학위소지자 이상의 식견을 펼친다. 더구나 스마트폰으로 무장하여 우군까지 확보했다. ‘가짜뉴스’라고 넌지시 비추면, 눈에 쌍심지를 돋우고 달려든다. 그러나 이런 주제들은 대단히 복잡해서, 맥점을 짚기 위해서는 대단한 두뇌의 수고를 요구한다. 상식이나 동영상 몇 개로 맥락을 짚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어쨌건 믿는 거야 사상의 자유에 속하지만, 활개 치는 주장에는 아연해 할 뿐이다.

학문은 나날이 더하는 것이고, 도는 나날이 덜어내는 것이라고 했던가(노자·爲學日益 爲道日損). 학문이란 용어는 너무 거창하다. 그냥 공부, 글공부라 풀이하자. 생명과 세상은 쉼 없이 변화한다. 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선 공부가 필요하다.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새 지식을 요구한다. 나날이 지식을 더해 가야 한다. 도道 또한 너무 거창하고 멀리 있다. 간단히 도 닦는 일은 욕심 제거 작업인 마음공부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욕심은 무한대이다. 바닷물로도 다 못 채운다. 천생 가진 욕심을 마음속에 다 품고 있으면, 몸이 너무 무거워 온전한 처신이 버거워진다. 하여 덜어내야 한다.

글공부와 마음공부. 칸트의 명제를 빌려 표현해 보자. ‘글공부 없는 마음공부는 공허하고, 마음공부 없는 글공부는 맹목적이다.’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