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➀ - 경제민주화는 열린사회를 위한 필요조건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➀ - 경제민주화는 열린사회를 위한 필요조건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16.10.06 23:25
  • 업데이트 2016.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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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➀ - 경제민주화는 열린사회를 위한 필요조건

비판적 합리주의 철학자 칼 포퍼 비판적 합리주의 철학자 칼 포퍼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 1902~1994)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전체주의를 비판한 책이다. 철학적·이론적으로 깊고 치밀해 이 분야 최고의 명저로 꼽힌다. 이 책이 저술된 배경은 1930년대 유럽을 휩쓴 나치즘과 마르크시즘의 광풍이다. 나치즘의 박해를 피해 뉴질랜드에 망명해 있던 저자가 이 책을 쓰겠다고 결심한 것은 1938년 봄 히틀러의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침공했다는 소식을 듣는 날이었다. 1945년 발간된 이후 이 책이 세계 각국에 소개되면서 칼 포퍼는 자유세계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부상했다.

칼 포퍼가 말하는 ‘열린사회’란 무엇일까? 열린사회 이념은 포퍼의 철학인 비판적 합리주의 사상에서 도출된다. 비판적 합리주의라는 말은 포퍼가 창안한 개념이다. 그래서 칼 포퍼의 이름 앞에는 ‘합리적 비판주의’ 철학자라는 말이 수식어처럼 붙는다.

열린사회의 이념을 알아보기 전에 포퍼의 사상인 비판적 합리주의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이것은 이성을 중시하는 합리주의의 전통을 따르되 이성을 절대적으로 간주하기보다 ‘인간의 이성은 원래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성이 완전하지 않다면 우리는 우리의 앎에 대해 절대적으로 확실한 근거를 갖는다고 주장할 수 없다. 우리는 합리적 논증을 통해 비판적으로 따져 나가면서 진리에 점차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확실하고 절대적인 앎을 주장하는 것은 독단이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 표지 '열린사회와 그 적들' 표지

그렇다면 ‘열린사회’란 어떤 곳일까? 책 서문 앞에 적힌 다음과 같은 문구는 그 개념을 짐작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우리는 금수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열린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다.’ 나치의 광풍을 목도한 포퍼가 집필을 시작하면서 외친 내면의 목소리가 아닐까. 전체주의 사회는 인간을 금수처럼 취급하는 사회이며, 우리가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전체주의를 물리치고 열린사회를 열어야 한다는 외침. 달리 말하면 인간다운 사회에 대한 열망이다.

열린사회는 비판을 수용하는 사회이며, 비판을 불허하는 절대적 진리란 용인되지 않는다. 열린사회는 또한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하는 사회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보장이 무엇보다 우선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열린사회는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다. 이기주의 사회가 아니라 타인의 자유도 존중하는 이타적 개인주의 사회다. 사회를 전체의 유기체로 간주하는 전체주의와 대립되는 사회인 것이다.

개인 모두의 자유가 보장되려면 강자의 무제한 자유가 허용돼서는 안 된다. 여기서 자유의 제한과 국가 보호주의가 불가피하게 요청된다. 자유는 국가에 의해 보호되지 않는 한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포퍼의 ‘열린사회’ 개념은 우리 헌법 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를 떠올리게 한다.

포퍼는 나아가 약자에 대한 국가 보호주의를 경제적 영역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가 국민을 물리적 폭력으로부터 보호한다 할지라도, 경제적 힘의 오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국가는 국민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퍼가 주장한 경제적 영역에서의 국가 보호주의는 우리 헌법 119조 ②항에 규정된 ‘국가의 경제민주화 이행 의무’와 일맥상통한다. 오늘날 경제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란 어불성설 아닌가. 국가가 국민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강자의 횡포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포퍼의 주장은 선구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우리 사회는 과연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졌는가? 대선 때마다 여야 후보들이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아직 경제민주화가 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곧 대한민국은 열린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포퍼의 말처럼 우리가 금수가 아닌 인간으로 살고자 한다면 열린사회를 향한,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