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5%들'에 대한 단상
우리 곁의 '5%들'에 대한 단상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16.11.13 20:58
  • 업데이트 2016.12.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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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의 '5%들'에 대한 단상

12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제3차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 12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제3차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

며칠 전 초등학교 동창 밴드에 글을 올렸다가 민망한 일을 겪었다. '촛불은 주권이다'는 제목의 글이었다. 직접 쓴 글로써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할 겸 작금의 시국에 관한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다. 때마침 12일 제3차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시위가 예정돼 있었고,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2주 연속 5%로 주저앉아 있던 터라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겠거니 했다.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친구의 댓글은 이랬다. "이런 글 보기도 듣기도 싫다, 송현아 고마해라."

순간, 겸연쩍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세상사와 초연하게 살고 있는 소시민에게 정치적인 이슈를 들이미는 것은 폭력으로 비칠 수 있겠다 싶었다. 초등학교 동창 밴드이니 죽마고우에 맞는 추억담과 일상생활의 편린들을 올리는 게 맞다 싶었다. 밴드에 올린 글을 얼른 지운 뒤 답글을 남기려고 그 친구가 올린 글을 살펴봤다.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띵' 했다.

이런 글이었다. '신이시여 이 나라를 굽어 살피소서!'라는 제목에서 금방 짐작할 수 있듯이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며 격정을 토하는 내용. 그런데 '외롭고 가련하신 이 나라의 대통령 박근혜 님을 도와 주옵소서!!!!'라는 글귀가 눈에 확 띄는 게 아닌가.

그 친구는 '정치에 초연한 소시민'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였던 것이다. 말미에 "이 글을 널리 퍼뜨려 주세요, '나비효과'을 일으킬지 누가 아나요!!"라고 적은 것도 그 방증이겠다. 그가 나의 글을 '보기도 싫다'고 한 것은 '정치적인 글'이어서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이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 실태가 드러났음에도 여전히 박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 지지율이 2주 연속 5%인 상황에서 그 친구야말로 '5%들'이었던 것이다(지지율 5%인 박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총칭 '5%들'이라고 하자). 종일 종편을 틀고 있는 동네 이발소 아저씨나 미용실 아주머니들까지 "순시리한테 묻지 말고 나한테 물어봤으면 이렇게는 안 됐을 텐데" 하는 판에 '5%들'을 친구 중에서 맞닥뜨리자 여간 당혹스럽지 않았다.

문득, 미국 대선에서 이변을 일으킨 도널드 트럼프가 떠올랐다. 여론조사에서 잡히지 않던 숨은표가 당선의 결정적이었다지 않은가. 선거전에서 그는 대통령 감이 못된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그의 돌출 발언이나 성추문 등은 그를 공개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히기를 꺼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심 지지하면서도 말이다.

이런 사정을 지금 우리 상황에 대입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박 대통령 지지율 5%는 얼마나 실체를 반영한 것일까?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국정농단 사태가 백일하에 드러난 상황에서 남의 시선을 의식해 도덕성과 국정의 신뢰가 무너진 박 대통령을 명시적으로 지지하지는 못하지만 내심으로는 지지하는 국민들이 제법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강하게 든다. 여론조사라는 것이 미국이나 우리나 아직 '숨은 표'를 집어내는 데는 여전히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5%들'이 국정농단 의혹이 사실로 속속 드러났는데도, 국정 능력은 고사하고 도덕성마저 바닥에 떨어졌는데도 여전히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드러난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별거 아니라고 여기는 것일까? 일개 강남 아줌마에게 국정을 맡기더라도 박 대통령이니까 상관없다는 것일까? 그들은 주권의식도, 시민의식도 없는 것일까?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다.

종편의 일부 정치평론가는 벌써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 실태와 책임을 묻기보다 야당의 태도를 문제삼기 시작했다. 본말전도다. 야당이 왜 탄핵을 하지 않느냐고 부추기기도 한다. 야당이 탄핵에 돌입할 경우 '5%들'은 결집할 시간을 벌고, 탄핵이 실패할 경우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서울 도심에서 100만 명이 '박 대통령의 하야'를 외친 것이 사실이듯, 바로 그 시민들 주변엔 '5%들' 역시 침묵의 지지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 아닐까. 자칫 촛불 세력이 실족하고 틈을 보일 경우 침묵 세력의 반격은 신속하고도 악착스러울 것이다. 끝나기 전에는 결코 끝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