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젊은이들은 왜 아베를 지지하는가?(하)-- 아베노믹스의 파탄만 바라는 무능한 야당
일본 젊은이들은 왜 아베를 지지하는가?(하)-- 아베노믹스의 파탄만 바라는 무능한 야당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6.12.01 21:48
  • 업데이트 2017.02.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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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젊은이들은 왜 아베를 지지하는가?(하)-- 아베노믹스의 파탄만 바라는 무능한 야당

아베노믹스는 엔화 가치 급등을 부른 브렉시트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다. 아베노믹스는 엔화 가치 급등을 부른 브렉시트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다.

일본인, 특히 일본 젊은이들이 그토록 ‘매달리는’ 아베노믹스의 성적표는 어떠할까? ‘헬조선’ 정도야 하겠냐만, 한마디로 초라하다. 국민이 자신을 밀어주기만 하면 반드시 가능하다고 했던 경기회복은 그의 말대로라면 이미 이뤄져야 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조정 뒤 실질임금이 5년 연속 하락해 199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또 일본 경제의 60%를 차지하는 개인 소비가 2014년 회계연도와 2015년 회계연도에 연속 감소해 전후(戰後) 처음으로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나아가 국내총생산(GDP)은 매년 0.8% 증가에 그쳤다. 그런데도 이토록 아베와 아베노믹스와 자민당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안 부재’와 ‘과거에 대한 향수’ 두 가지를 꼽을 수 있겠다. 첫째, 대안 정당으로서의 강한 야당이 없다. 아베의 자민당은 1955년 이래 4년간을 빼고는 권력을 독점해 왔다. 하여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자민당을 자기 나라 일본과 동의어로 생각할 정도이다. 더구나 유권자들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의 집권 민주당이 세금을 올리고 관료조직과 불화하며, 후쿠시마 원전 재앙 수습에 무능했다는 것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다. 여기에다 노회한 아베는 노동자 임금 인상이라든가 여성 돕기 등의 영원한 야당 정책을 흡수하는 데 반해, 야당은 비판만 할 뿐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마쓰오 교수의 다음과 같은 통찰은 일본 야당의 현주소를 가늠케 한다. 브렉시트 후 엔고와 주가하락이 진행되고, 세계 경제가 큰 혼란에 빠졌다. 내 연구실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취직활동을 할 때 취업빙하기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수런거렸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을 지지할 용기 있는 대학생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그런데 야당은 반응은 생뚱맞았다. 브렉시트로 아베노믹스가 파탄이 날 것이라며 오히려 기뻐하며 선동하는 구석이 있어 경악했다. 경제 위기를 선동하면 할수록 위기감을 느낀 대중들은 자민당에 매달리게 된다. 야당이 자민당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자민당보다 더 나은 정책을 현실성 있게 제시해야 한다. 살림살이의 곤궁이나 불안을 제거하고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을 보장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정책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 만년 야당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많은 일본인들은 좋았던 ‘그 때 그 시절’에 집착한다. 아베 총리가 선거에서 연승한 것은 일본 국민이 품은 과거 잘 나가던 시절의 향수가 표로 연결된 측면이 크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에 속한다. 도요타와 미쓰비시, 혼다 등 세계 유명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수출액도 무려 7조 달러(7700조 원)에 달한다. 그런데 왜 일본 경제는 침체에 빠진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이 경제 성장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노인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 15살 이하 국민 수는 전체 인구의 13%에 불과한 반면, 65살 이상은 그 2배가 넘는다. 경제 성장은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좌우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일본의 잠재성장률을 연 1% 이하로 상정하고 있다. 1990년까지 거대한 투자 거품 후 투자 의지가 꺾이면서 인플레이션은 디플레이션으로 변모했다. 상품 가격은 하락했고 사람들은 가격 하락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해 투자와 소비를 줄였다. 흔히 말하는 ‘잃어버린 20년’의 시작이다. 이때부터 일본 경제는 내리막길을 걸었고,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커졌다. 사람들은 미래를 걱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아베노믹스이다. 새로운 정책을 통해 일본을 잠에서 깨워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가능할까? 아베노믹스에 회의적인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후쿠시마대학 경제학과 교수 야수오 고토는 오늘날 우리는 성장 이후의 시기를 살고 있는데 아베노믹스는 ‘성장’에만 집착한다고 혹평하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 하버드대학 교수는 이미 30년 전에 ‘국내총생산 증가 자체가 목표가 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GDP는 단순히 국민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수단으로 추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처럼 잘 사는 나라가 고령화될 경우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기는 어렵다. 아베 총리의 이주노동자 확대와 정년 연장, 여성 취업률 제고 등의 정책이 일본 사회의 고령화를 근본적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여 성장에서 복지로 혁신적인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미래에는 성장의 부재가 실패를 뜻하는 것이 아닌, 복지사회의 한 현상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선구자적 정신이 일본 사회에서 보편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본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과거의 영광’에 대한 갈망이라는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와 내심 헌법을 개정하려는 아베의 정치적 야망이 야합한 정치 지형, 이것이 오늘날 일본의 속살이 아닐까? 일본에서든 한국에서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이 순간 일자리 걱정 안 하는 사람 몇 있을까만, 그래도 한국의 미래를 더 밝게 본다. 미래는 어린이들 것이지만, 내일은 젊은이들이 만든다. 현재의 모순을 송두리째 갈아엎고 내일과 미래를 살 만한 삶터로 일굴 촛불이 우리의 젊은이, 이화여대생들로부터 타올라 지금 전국의 횃불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끝> (*이 칼럼은 <Economy Insight> 2016.09월호 중, ‘사면초가에 빠진 아베노믹스’를 참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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