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콤플렉스
대통령의 콤플렉스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16.12.06 04:55
  • 업데이트 2017.02.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통령의 콤플렉스

2005년 9월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동아일보 DB

콤플렉스는 관념복합체 혹은 건드리면 과민반응을 유발하는 강렬한 응어리

칼 융(Carl Gustav Jung)을 분석심리학의 창시자로 우뚝 서게 한 것은 그가 스위스 취리히대 의과대학 교수 시절 실시한 언어연상 실험이다. 그는 환자들마다 특정 단어에 대한 반응 시간이 유난히 길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른바 언어연상 장애 현상이다. 융은 이것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속에 '감정적으로 강조된 콤플렉스(complex·관념복합체)'에 의한 것이란 사실을 밝혔다. 이것은 성장기에 입은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또는 충격)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일반인들에게 콤플렉스는 ‘건드리면 과민한 반응이 나오는 어떤 강렬한 응어리’ 정도로 이해된다.

융은 나아가 콤플렉스가 인간을 깊이 지배하고 있다고 보았다. "인간이 콤플렉스를 갖는 것이 아니라 콤플렉스가 인간을 갖는다"는 유명한 말이 여기서 나왔다. 하지만 융은 콤플렉스가 성공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간과했다. 위대한 예술가와 과학자 정치인 중에는 콤플렉스를 극복·승화시킨 사람이 많다. 융 이후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콤플렉스를 자아 발전의 추진력이자 촉매제로 보았다.

원로 정치학자인 김호진 고려대 명예교수는 2008년 '한국의 대통령과 리더십'이란 저서를 통해 국정운영을 콤플렉스 측면에서 분석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김 교수는 역대 대통령의 권력의지는 콤플렉스로부터 싹텄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가 된 뒤에도 콤플렉스에 쫓기면 실패하고, 그 굴레를 벗어나 정서적 안정과 인격의 정체성을 찾으면 성공한다고 결론지었다.

권력의지를 키우는 콤플렉스, 대통령이 된 뒤에는 벗어나야 성공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국정 운영 실패의 근본 원인이라고 김 교수는 진단했다. 그는 "통치권자가 콤플렉스가 심하면 인사에 감성적 배타성을 갖기 쉽고 그 결과 정권 자체가 집단 콤플렉스 증후군을 나타낸다"며 "도덕적 우월의식과 이념적 편집증까지 더해지면 '동굴의 우상'에 사로 잡혀 여론은 무시되고 국정운영은 외곬으로 치닫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한국 최고 권력자들이 예외 없이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경우 몰락 왕족의 후예라는 점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가난과 친일행적 등이 콤플렉스였다고 분석했다. 또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주변부에 머물렀던 사실이 열등감을 갖게 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왕자처럼 자란 사실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색깔 콤플렉스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의 분석은 아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가난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는 분석이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각종 매체에서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콤플렉스를 갖고 있을까?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씨는 2005년 펴낸 인물평전 ‘사람 vs 사람’에서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정신분석가 칼 융이 기술한 ‘부성(父性) 콤플렉스’라는 프리즘으로 바라봤다. 부성 콤플렉스는 현실의 아버지가 지나치게 일방적인 경우(매우 권위적, 폭력적이거나 혹은 극도로 약할 때) 신화적인 부성상이 그대로 남아 자식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실제로 박근혜의 삶은 부성 콤플렉스의 공식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김호진의 '한국의 대통령과 리더십'과 정혜신의 '사람 vs 사람' 표지.

정 씨에 따르면 부성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여성의 첫 번째 특징은 극도의 자기절제를 보인다는 것. 개인적인 삶에서 최종 목표를 '자기를 완전히 이기고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박 대표의 삶의 태도는 부성 콤플렉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의지는 이 같은 콤플렉스에서 싹 턴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극도의 자기절제’를 자신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만들었고 마침내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부성 콤플렉스로 설명 안 되는 박근혜

문제는 대통령이 된 다음부터다. 박 대통령은 여전히 ‘박정희 미화사업’에 집착하거나 소통보다는 권력에 의지하는 통치스타일을 고집하는 등 부성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심지어 박 대통령의 이 같은 권위적인 통치스타일은 부성 콤플렉스에서 나아가 ‘황제 콤플렉스’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점들은 국민통합을 해치고 분열과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고 권력자가 된 뒤에도 콤플렉스를 벗지 못하면 실패한다’는 김 교수의 분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국정 운영의 실패 정도를 넘은 작금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부성 콤플렉스’로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동안 세간에서는 박 대통령의 대표 이미지인 ‘극도의 자기절제’를 부성 콤플렉스에 의한 것으로 해석하는 데 별다른 이의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 나아가 최태민 씨와의 관계가 알려지면서 종전의 해석은 신뢰를 담보할 수 없게 됐다. 즉 ‘극도의 자기 절제’는 부성 콤플렉스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최태민, 최순실 씨에 대한 ‘종속적·의존적 삶’이 몸에 밴 것일 뿐이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갖게 됐다. 박 대통령의 ‘종속적·의존적 삶‘을 강화시킨 것은 부모님의 비명횡사로 입은 트라우마, 심리학 용어로 ‘상처 받은 내면 아이(wounded inner child)’일 것이다.

박 대통령의 콤플렉스는 대통령을 만드는 데는 추동력으로 작용했다. ‘상처 받은 내면 아이’는 동정심을 자극했고, 부성 콤플렉스에 의한 ‘극도의 자기 절제’는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부성 콤플렉스는 황제 콤플렉스로 강화되었고, ‘상처 받은 내면 아이’는 최순실에 의해 ‘종속적·의존적 삶’을 더욱 고착시켰다. 작금의 국정농단을 박 대통령의 콤플렉스 때문으로 치부하기에는 사태가 너무나 엄중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