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헌법재판소?
제왕적 헌법재판소?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16.12.09 16:13
  • 업데이트 2017.02.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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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헌법재판소?

2004년 5월 14일 국회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하고 있는 헌법재판소.

1987년 6·10 민주항쟁으로 부활한 ‘헌법 수호자’ 헌법재판소는 2004년 이전까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4년 헌법재판소는 ‘헌법 수호자’에서 입법부와 행정부를 통제하는 ‘제왕’의 모습으로 민주공화국 체제의 전면에 부상했다.

2004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바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기각 평결과 10월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조치법’ 위헌 평결이 그것이다. 앞의 사건에서는 9명의 헌재 재판관에게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 현직 대통령의 직위를 박탈할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뒤의 사건에서 헌재는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한 민주정부가 최대 우선순위를 부여한 정책이자, 대의제 민주주의의 중심 기구인 입법부가 내린 합법적 결정을 한순간에 무효화했다.

이로써 그간 한국 정치체제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헌재가 ‘정치의 중심적 행위자’로 등장한 것이다. 2004년 이후에도 헌재는 2008년 11월 종합부동산세 세대별 합산과세 위헌 결정, 2014년 10월 선거구 헌법불합치 결정 등을 통해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것이 무슨 문제냐고? 2004년 두 차례 헌재 평결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국민주권이 헌재에 종속되었음을 의미한다!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국회가 의결한 탄핵소추를 헌재가 무효화했고,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과 그 정부의 핵심 정책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국민주권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서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즉, 헌재는 누구로부터 이 같은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았는가? 물론 헌법에 규정된 사항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헌법이 만능은 아닐 뿐 아니라 헌법 조항 간 충돌을 일으키는 상황을 ‘헌법 수호자’라는 헌재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따져보자. 우리 헌법 1조 ②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주권재민 원리다.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는 대통령은 권력을 위임받은 만큼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 국회의원 역시 자신의 권한 행사에 따른 책임을 유권자에게 진다.

그런데 헌재의 재판관은 자신들의 재판에 대한 책임을 누구로부터 지는가? 명확하지 않고, 있다고 해도 약하다. 권력을 국민들로부터 직접 부여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통령과 국회, 및 대법원이 선임한 사람들이다. 굳이 말하자면 국민의 권력을 간접적으로 위임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국민의 권력을 간접적으로 위임받은 헌재가 직접 위임받은 권력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주권재민의 원리에 분명 배치된다. 그러니 헌재의 평결에 대해 “나는 헌재 재판관에게 이런 재판을 할 권력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국민들이 수용하기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주의의 핵심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유래하는 말뜻 그대로 데모크라시(demos + Kratia), 즉 국민 스스로 통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에서 그런 원리는 헌법에 의해 규정되고 구현된다. 그런데 이 헌법이 작동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와 충돌하는 사태를 직면하게 된다. 헌재의 평결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 같은 헌법과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의 충돌은 어디에 기인할까? 민주공화국의 핵심 가치인 주권재민의 원리를 헌법이 온전히 구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00만 촛불이 등장하는 것도 헌법이 정한 대의제가 주권재민의 원리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9일 국회에서 가결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헌재로 넘어갔다. 이번 탄핵소추안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과는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다. 국회가 결의했을 뿐 아니라 대통령을 선출한 국민 대다수가 탄핵에 찬성(80%가량)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 의결과 대다수 주권자의 의사를 외면하는 평결을 내린다면 ‘제왕적 헌법재판소’는 주권자의 비판과 저항에 직면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참고문헌 :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개정판, 2016년 3월), 로버트 달 지음, 최장집 한국어판 해설, 박상훈 박수형 옮김,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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