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야 할 '두 문화(인문계·이공계)'
다시 만나야 할 '두 문화(인문계·이공계)'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16.12.24 15:45
  • 업데이트 2017.02.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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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야 할 '두 문화(인문계·이공계)'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고대 철학자들이 모인 가운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플라톤은 하늘을 가리키며 만물의 근원인 이데아를 이야기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지를 가리키며 현실세계가 실재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발을 들여 놓지 말라'.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세우고 가르친 아카데미아 정문에 걸어두었다는 문구다. 웬 한가한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다. 최근 융합과 통합, 통섭이 시대적 화두로 부상하고 고교의 문과 이과 구분 폐지가 본격 논의되기에 문득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야말로 통합형 인재양성기관의 원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당시 아카데미아는 그리스 최대·최고의 교육기관이었다.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인물만 봐도 아카데미아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그리스와 주변 국가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아테네 학당의 문을 두드렸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그곳 학생들이 모두 기하학(수학)을 '필수과목'으로 공부했다니, 다소 의아하고 신기한 느낌이 든다. 요즘 유명 철학자나 소설가, 문학평론가 등 지식인들이 수학을 공부하고 토론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으니까. 우리나라 인문계 지식인들은 수학과 과학에 대한 무지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 아닌가. 물론 본의에 의해서라기보다 입시제도가 그렇게 만든 것이지만. 아카데미아에서는 왜 기하학을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아니 정말로 수학을 공부했을까. 기록에 남겨진 다음과 같은 일화가 참고가 될 듯하다. 아테네 시민들이 괴질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아폴로 신에게 퇴치를 기원하자 "제단의 부피를 배로 늘려주면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신탁이 내려왔다. 제단 각 면(가로 세로 높이)의 길이를 배로 늘려 만들었더니 "제단 부피를 왜 여덟 배로 만들었느냐"는 호통이 돌아왔다. 신탁은 결국은 요즘 수학기호로 표현하면 2의 세제곱근(∛)이 얼마냐는 문제를 던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라는 무리수를 다루는 이론이 없었다. 괴질이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는 가장 시급한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때 플라톤과 아카데미아가 나섰다. 이들은 당시 사용되던 자와 컴퍼스보다 훨씬 진보된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했다. 플라톤이 기하학을 강조한 데는 현실의 문제 해결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는 논리적인 사유, 철학을 하기 위한 도구로써 기하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겼다. 자신의 철학 정수인 이데아를 이해시키는 데 추상적이고 이상화된 관념의 집합인 기하학만큼 좋은 도구가 없었던 것이다. 종이 위에 그린 삼각형은 불완전하지만, 완전한 삼각형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플라톤은 이 세상과 우주가 수학적인 법칙과 원리에 따라 운행한다는 피타고라스의 수학적 우주관을 굳게 믿고 있었다. 서구의 철학과 과학은 이처럼 수학적 논리로 사유를 즐기는 기질과 전통에서 발전했다. 근세까지 아카데미아형 지식인이 대종을 이루었다. 수학적 논리를 갖고 놀 줄 아는 인문학자, 철학을 즐기는 과학자들 말이다. 그러나 산업화가 급진전되고 실용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서구에서도 이공계 전문가 집단과 인문계 지식인 집단 간에 담이 생기고 장벽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두 문화'의 저자 C.P. 스노우와 책표지.

두 집단의 문화를 모두 경험한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소설가인 C.P.스노우는 1959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두 문화' 간의 단절과 갈등을 비판하면서 통합과 융합을 역설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물리학과 출신인 기자의 체험에 의하면 스노우가 비판한 '두 문화'의 단절이 극단에 이른 게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싶다.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과 과학기술이 만나는 교차로에 마법이 존재한다고 했다. 스노우가 '두 문화'의 단절 세태를 비판했다면 잡스는 '두 문화'의 통합과 융합의 필요성을 역설한 셈이다. 잡스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두 문화'의 만남은 시대적 요청이다. 이 요청에 가장 먼저 답해야 할 조치는 고교의 문과 이과 구분 폐지다. 우리 사회에서 '두 문화' 간의 장벽을 높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은 대학입시제도에 따른 고교 문과 이과 구분이라는 것은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성과 감성의 싹이 무럭무럭 자랄 시기에 한쪽 잎자락을 싹뚝 잘라버리면서 창의성과 통합형 인재 운운은 어불성설이다. 지금이야말로 21세기형 플라톤의 아카데미아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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