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를 열어갈 대권주자는?
열린사회를 열어갈 대권주자는?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17.01.15 14:53
  • 업데이트 2017.02.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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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를 열어갈 대권주자는?

우리를 열린사회로 이끌 최적임자는 누구일까? 안희정 충남지사,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이재명 성남시장(왼쪽부터).

선택의 시각이 다가오고 있다. 선거일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그 시각이 점차 다가옴을 느낀다. 적군처럼 진군해온 ‘무진의 안개’처럼 선택의 시각도 우리에게 그렇게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다.

문재인, 이재명, 안철수, 안희정, 박원순, 김부겸, 유승민 그리고 반기문... 최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귀국하면서 때이른 선거판이 부쩍 달아올랐다. 누굴 선택해야 할까? 이미 선택했고요? 뚜렷한 정치적 소신에 따라 이미 낙점해둔 분들이라면 이 글을 더는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여와 야, 진보와 보수 후보를 떠나 어떤 기준을 갖고 후보를 선택할까 하고 고민하는 분들은 이 글을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열린사회를 지향하는 정치웹진 인저리타임은 열린사회의 이념에 비춰 후보를 검증하고 평가할 것임을 밝힌다. 이 기준은 유권자가 바른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열린사회는 무엇인가? 열린사회는 비판적 합리주의 철학자 칼 포퍼가 제시한 개념인데, 전체주의 사회의 반대 개념이라고 간단히 이해해도 무리가 없겠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민주화를 함께 추구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열린사회의 특징들을 보면 더 쉽게 감이 잡힌다. 열린사회는 그 어떤 형태의 전체주의와 독재를 거부하는 민주사회이며, 개인의 인격과 자유, 그리고 상호비판이 존중되는 자유사회이다. 이를 흔히 자유민주주의 사회라고 한다.

열린사회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의 조화를 추구하는 사회이다. 모든 시민은 정치와 정치인을 비판할 수 있으며, 경제적 약자에 대한 보호를 국가에게 요구할 수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민주화를 함께 추구하는 사회라는 뜻이다.

열린사회는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고통을 요구하지 않으며, 소수의 행복을 위해 다수의 고통을 요구하지도 않는 민주사회이다. 열린사회는 또 1%의 행복을 증진시키기에 앞서 99%의 불행을 치유하는 인간적인 사회이다. 말로만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 해소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회라는 말이다.

칼 포퍼가 나치의 만행에 치를 떨면서 염원한 열린사회 개념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 인간적인 사회를 가로막는 ‘열린사회의 적들’이 많기 때문이다.

인저리타임이 지향점을 열린사회로 정한 것도 창간 당시 박근혜 정부의 ‘반 열린사회’적 행태가 우려스러울 정도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대통령이 걸핏하면 ‘비상시국’ 운운하며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청와대 측근들에 대한 국민의 합리적 의혹마저 분열세력으로 매도하는 일이 예사였지 않은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이 같은 우려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줬다. 사태의 핵심 원인은 바로 박근혜 정부가 열린사회와 대척점에 있는 사실상의 전체주의적 사고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만약 사태가 만천하에 드러나지 않고 계속되었다는 어떻게 될까? 결국 국민을 ‘개, 돼지’로 취급하는 전체주의적 사회로 더욱 치달았을 게 뻔하다.

칼 포퍼는 전체주의인 나치의 만행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자칫 금수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열린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다.”

이제 ‘열린사회의 적들’의 정권이자 사실상의 전체주의 정권인 박근혜-새누리당 정권과 그 잔재는 우리 역사에서 두 번 다시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개, 돼지가 아닌 인간으로 남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를 열린사회로 이끌 최상의 적임자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