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수제자 에우독소스 ... 수정천구의 탄생
플라톤의 수제자 에우독소스 ... 수정천구의 탄생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17.01.23 14:35
  • 업데이트 2018.07.0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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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수제자 에우독소스 ... 수정천구의 탄생

플라톤의 수제자 에우독소스의 지구 중심 천체 모형. 그는 최초로 투명한 수정천구를 도입했다. 중심의 지구에서 차례로 달, 수성, 금성 그리고 태양이 있고, 다시 차례로 화성, 목성, 토성 천구, 그 위에는 항성천구가 그려져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플라톤은 문하생들에게 천체의 외관상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원운동의 원리를 파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플라톤의 의도는 천문 관측을 장려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천문학을 수학의 한 분과로 연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는 “우리들은 천문학을 기하학과 마찬가지로 작도기술의 도움을 빌려 추구할 뿐, 별이 반짝이는 천공에 관해서는 손대는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문하생들은 스승의 의도를 잘 알면서도 계산의 자료를 얻기 위해 천문 관측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플라톤의 수제자인 에우독소스(Eudoxus of Cindus, BC 408~355)는 천체운동을 기하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플라톤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천체 관측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에우독소스는 수량적인 천문학과 사변적인 우주론을 통일하고, 천체의 위치를 결정할 때 관측에 중점을 둔 최초의 인물입니다.

에우독소스 이전에 이미 바빌로니아인은 하늘의 복잡한 주기적 현상을 여러 가지 단순한 주기적 운동으로 분해하는 방법을 발전시키고 있었습니다. 에우독소스는 이 과정을 알고 있었고, 또 자신이 단독으로 발전시켜 그것을 산술적 형식에서 기하학적 형식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에우독소스는 스승인 플라톤의 우주 모형(피타고라스 우주 모형)에서 결정적인 두 가지를 수정했습니다. 하나는 행성의 순서이며, 다른 하나는 수정천구를 도입한 것입니다. 피타고라스 우주모형에서 행성의 순서는 지구-달-태양-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입니다. 에우독소스는 이를 지구-달-수성-금성-태양-화성-목성-토성 순으로 바꾼 것입니다. 즉 수성과 금성을 태양의 안쪽 궤도에 배치한 것입니다. 이것은 천동설 천체 모형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에우독소스. 출처: 위키피디아

특히 에우독소스는 개개의 단순한 주기적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구형의 투명껍질(수정천구)을 처음으로 도입했습니다. 수정천구의 조합으로 여러 천체의 복잡한 주기적 운동이 아주 잘 설명되었습니다. 각 천구는 어떤 한 가지 운동을 나타냅니다. 어떤 천구는 하늘의 외관상 회전을 뜻하며, 다른 천구는 1개월, 1년 또는 기타의 회전주기를 설명했으며, 그 밖의 천구가 그 이외의 주기적 현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모든 천구는 모두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동심천구이며, 안쪽 천구의 회전축은 그 바깥쪽 천구의 표면에 끼어 있습니다. 이 방법으로 에우독수스는 27개 천구를 사용하여 하늘의 여러 운동을 설명했습니다. 즉, 항성에는 1개 천구를, 태양과 달에는 각각 3개 천구를, 다섯 개의 이미 알려진 행성에는 각각 4개 천구를 할당했습니다.

관측이 계속되면서 새로운 주기적 현상이 발견됨에 따라 체계는 확장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에우독소스의 문하생인 칼리푸스(Callipus)는 기원전 325년 무렵 각 천체에다 여분의 천구를 하나씩 더하여 34개의 천구로 구성된 우주모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에다 22개의 천구를 추가했습니다.

그러나 동심천구 모형은 피할 수 없는 난점을 처음부터 수반하고 있었습니다. 이 설에 따르면, 천체는 언제나 지구로부터 똑같은 거리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금성이나 화성과 같은 행성은 외관상 밝기가 변한다는 것은 훨씬 이전부터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것은 이들 행성이 지구에서 멀어지거나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일식은 때에 따라 개기일식이 되거나 금환식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이 관측되어 있었습니다. 이것 또한 지구로부터 태양과 달과의 상대적 거리가 변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같은 에우독소스 체계의 난점은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한결같은 속도로 원운동을 한다는 가설에 비롯었습니다. 에우독수스 체계의 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헤라클레이데스(Heraclides of Pontus, BC 388~315)는 수성과 금성 두 행성은 지구 주위가 아니라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주장으로 이들 두 행성의 외관상 밝기의 변화를 설명했습니다. 이는 수성과 금성이 결코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운행하지 않는다는 관측 사실에 기초합니다.

헤라클레이데스는 또한 피타고라스학파의 히케타스와 에크판토스의 견해를 채용해 지구는 날마다 그 축의 주위를 자전하고 있다고 하여 하늘의 외관상의 일주운동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헤라클레이데스를 지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플라톤의 제자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도 모두 에우독수스 설을 채용했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했기 때문입니다.

지구 중심 천동설 천체 모형(왼쪽)과 오늘날의 태양 중심 지동설 천체 모형 개념도.

에우독소스 우주 모형의 난점을 극복하는 또 다른 중요한 시도는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us of Samos, BC 310~230)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태양 중심 지동설'이 그에 의해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구는 날마다 자전하고, 태양 주위를 1년에 1회 원궤도를 그리며 공전합니다. 그리고 태양과 항성은 정지해 있고, 행성은 태양을 원점으로 원운동합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저자인 그리스 철학자 플루타르코스(Plutarchos, 46~120)에 따르면, 스토아학파의 우두머리인 클레안테스는 아리스타르코스를 불경죄로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리스타르코스의 저작 ‘태양과 달의 크기와 거리’는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는 지구에서 태양과 달까지의 상대적 거리를 잰 최초의 인물입니다.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 중심설이 인정받지 못한 것은 그리스인들이 지상계와 천상계는 구성 물질에서나 운행 법칙에서나 완전히 다르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념은 저급하고 비천한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서 정지해 있고, 고귀하고 완전한 천체는 천상계에서 한결같은 원운동을 반복한다는 생각입니다.

아리스타르코스 이후에도 지구 중심 천구설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해 모든 그리스인들은 ‘지구의 우주 중심과 완전한 천체의 원운동’ 관념은 끝내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 중심설은 1800여년 후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