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고의 징조와 '우주 쇼'
변고의 징조와 '우주 쇼'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17.02.02 20:21
  • 업데이트 2017.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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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고의 징조와 '우주 쇼'

서쪽 하늘에 선보인 달, 화성, 금성의 정렬 개념도.

엊그제 초승달과 화성 금성 등 세 개의 천체가 일직선에 늘어서는 '우주 쇼'가 벌어졌다.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은 "1일과 2일 오후 6시부터 9시 사이에 서쪽 하늘에서 초승달·화성·금성이 일직선상에 놓이는 현상을 맨눈으로 관측할 수 있다"고 밝혔다. 천문연은 다음 우주쇼는 올해 10월 17일 새벽 5시 무렵 동쪽 하늘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같은 우주 쇼는 지난 2004년 3월 이후 13년만이다. 당시 태양계를 구성하는 아홉 개의 행성 중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다섯 개의 행성인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을 모두 볼 수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이들 다섯 개의 행성(오행성)은 저녁에 서쪽하늘에서 동쪽하늘에 걸쳐 그야말로 우주 쇼를 펼쳤다.

오행성이 일렬로 늘어서는 현상을 그랜드 얼라인먼트(Grand Alignment), 이들 행성이 십자가 형태로 교차하는 현상을 그랜드 크로스(Grand Cross)라고 한다. 2000년 5월에는 다섯 개의 행성이 거의 한 곳에 모이는 그랜드 얼라인먼트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2004년 3월의 천문현상은 느슨한 형태의 그랜드 얼라인먼트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이번 달과 화성, 금성의 정렬은 다소 초라한 얼라인먼트라고 해야 할까?

오늘날 이색적인 천문현상은 ‘우주 쇼’라며 구경거리로 여겨지지만 예전에는 일종의 변고의 징조로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몇 해 전 방영된 KBS1 TV 드라마 ‘장영실’은 천문현상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잘 전해줬다. 별똥별소나기(유성우)는 국가 변고의 조짐이며, 목성(木星, 옛 歲星)이 달에 가려 지는 월탄세성(月呑歲星)은 나라에 큰 환란이 닥칠 징조라고 한다. 노비 출신인 장영실은 관측기록을 들어 유성우 등 천문현상은 천체의 운행에 의한 것일 뿐 인간세상의 변고와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가 천문·역일 등을 담당하는 서운관 관원들에게 치도곤을 당한다.

또 당시에는 천문현상의 예측과 해석도 중국(명나라) 역서를 따랐던 것 같다. 월식이 언제 일어나느냐고 왕이 물으면 서운관 판사는 “대국의 역서에 따르면…” 한다. 해(태양)는 예로부터 동서를 막론하고 왕을 상징했다. 달이 태양을 가리는 일식은 왕권에 대한 경고로 여겨질 만하다. 그래서 왕들은 구식례(求食禮)를 올려 일식이 더 이상 일어나지 말기를 기원한다. 구식례를 올리려면 일식 시각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 알다시피 일식·월식이 일어나는 시각은 장소에 따라 다르다. 명나라 역서를 기초로 한 서운관의 일식 추보(예보)가 맞을 리 없다. 구식례가 소나기로 난장판이 되자 왕이 분기탱천하는 장면은 재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때가 조선 초기 즉 15세기 초엽인데, 천문현상에 대한 이 같은 오해는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에서도 갑자기 나타나는 혜성과 아주 드문 현상인 초신성은 특히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다. 당시 유럽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에 의하면, 천상의 세계는 완전하고 영원불멸하다. 따라서 천문현상의 변화는 곧 완전함의 손상, 즉 변고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과학이 만개한 오늘날에도 천문현상에 대한 오해가 없지는 않다. 1999년 5월 그랜드 얼라인먼트가 일어나 지구 종말이 온다는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의 예언에 지구촌이 술렁이기도 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고대 천문학자들의 예언에 근거한 것이다. 일부 고대 천문학자들은 오행성이 한데 모인 데서 우주가 시작해 다시 모이면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2000년 5월 다섯 개 행성이 일직선으로 모였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태양에 비해 행성들의 중력이 매우 작기 때문에 오행성이 한 줄로 모인들 천체역학적인 영향은 극히 미미하니 당연한 일이다.

오늘날 지구촌의 사람들이 이색 천문현상을 변고의 징조가 아니라 '우주 쇼'라며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선각자들의 마르지 않는 지적 호기심과 지칠줄 모르는 탐구 덕분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