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책사에서 꼰대로
김종인, 책사에서 꼰대로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17.04.07 19:15
  • 업데이트 2017.04.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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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책사에서 꼰대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대한민국 제19대 대선판의 소진(蘇秦)을 자임하고 나섰다. 소진은 중국 전국시대를 풍미한 세객(說客, 책사策士로도 불린다)이다. 군웅활거시대에 횡행한 합종연횡(合從連衡)의 외교전략 중 합종을 성사시킨 인물이다. 당시 전국7웅 중 최강자인 진(秦)에 대항해 연(燕)·제(齊)·초(楚)·한(韓)·위(魏)·조(趙) 등 6개 나라가 연합(합종)한 외교전략이다. 소진은 이에 성공해 6개 나라의 공동재상에 올랐다.

김종인 전 대표는 5일 ‘위기돌파 통합정부 대통령’을 기치로 이번 대선의 합종에 나선 것이다. 최강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 맞서기 위해 국민의당 안철수,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그리고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과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세력을 연합하는 합종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세객은 어지러운 중원을 주유천하하며 제후들에게 자신의 정책과 책략을 설파해 신임을 얻으면 곧바로 제후의 특급 참모나 재상으로 출세한다. 소진의 합종책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문수학한 장의(張儀)의 책략인 연횡(連橫)에 의해 무너졌다. 세객의 무기는 자신의 지식과 세 치 혀다.

김종인 전 대표의 삶도 세객과 하등 다를 게 없다. ‘경제민주화’ 지식 하나로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을 넘나들며 책략을 피력해 중용됐다. 가깝게는 2012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표를 지냈고, 다섯 번의 비례대표 국회의원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했다. 이만하면 소진과 장의의 재상 자리가 부럽지 않을 듯하다. 게다가 소진과 장의는 재상자리에 오른 지 각각 10년, 1년 만에 죽었다. 그러나 김 전 대표는 1981년 전두환 정권에서 전국구(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시작해 20대 국회의원까지 무려 36년 동안 대접을 받고 있다.

이제 김종인 전 대표가 세객에 머물지 않고 직접 왕이 되겠다며 나섰다. 중국 역사에는 이 같은 세객과 책사는 없었다. 자신의 부국강병과 적자생존 책략을 실현하지 못하면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김 전 대표는 부국강병책인 경제민주화를 실현하지 못하고도 건재하다. 오히려 그는 그 책임을 정권 등에 전가해왔다. 이번엔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뛰쳐나와 직접 통합정부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다. 세객으로서 분수를 모르는 짓이다.

김종인 전 대표는 ‘위기돌파 통합정부 대통령’이라는 기치를 내세웠는데 대의가 뭔지 잘 모르겠다. 소진의 합종책은 힘의 균형을 통한 평화 유지라는 대의가 있었다. 김 전 대표는 출마선언문에서 ‘통합정부’와 ‘최고 조정자로서 통합조정의 소명’을 강조했다. 그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끝내야 한다면서 “통합정부는 어떤 개혁조치도 가능한 국회 의석이 모아진다”고 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기하고 제왕적 국회를 만들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통합정부의 최고 조정자가 되겠다는 것은 내각제 정부의 제왕적 총리가 되겠다는 심산이다. 대의는 안 보이고 노욕만 꿈틀거린다.

올해 78세인 김 전 대표의 출마선언문을 훑어보면 꼰대 냄새가 푹푹 난다. 잘 알다시피 꼰대는 원래 어르신과 선생님을 이르는 은어인데, 요즘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사람’을 이른다. 이 같은 행위를 ‘꼰대질’이라고 한다. 꼰대의 특징은 ‘내가 해 봐서 아는데…’ 식의 화법을 쓰는 등 자신의 경험과 성과를 전가의 보도로 내세운다.

김 전 대표는 “이번 대선은 유능(有能)과 무능(無能)의 대결”이라고 전제한 뒤 위기에 처한 국가는 아무나 경영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 다음이 생뚱맞다. 그는 “‘3D 프린터’를 ‘삼디 프린터’라고 읽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정 책임자에게 무능은 죄악“이라고 거품을 무는 게 아닌가. MB정부의 ‘아륀지’가 연상되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무능은 죄악’이라는 심각한 명제를 던지면서 고작 예를 든 것이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삼디 프린터’ 발음이라니. 아니, ‘삼디 프린터’가 어때서? M16의 경우 ‘M식스틴’ 하면 총을 잘 쏘는 사람이고 ‘M십육’이라고 하면 총을 아예 모르는 사람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무능은 죄악’이라는 발언의 저변에는 오만과 자만, 자아도취가 깔려 있다. 국정운영의 자질로서 지엽말단적인 영어 발음 하나를 갖고 ‘이런 건 무능이야, 심각한 무능이야’ 라며 강요하고 가르치려 드는 꼰대의 특성하고 드러낸 것이다. 참, 문재인 후보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김 전 대표가 문 후보의 심각한 무능이라고 찾은 게 겨우 ‘삼디 프린터’라면 문 후보야말로 결점이 없는 후보임을 반증해준 셈이다.

김종인 전 대표는 또 국민의료보험제도, 재형저축, 인천공항, 서울외곽순환도로 등의 성과를 나열한 뒤 “성과는 역량이 확인된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미래의 안목’을 자화자찬했다.

과거 경험과 성과를 내세우면서 미래의 역량을 확신하는 것이 바로 꼰대들의 특성이다. 물론 업적이 없는 것보다야 낫다고 할 수 있겠다. 선사시대와 1, 2차 산업시대만 해도 경험은 미래의 유용한 자산이다. 인간의 삶과 일, 인간관계의 방식이 과거와 근본적으로 바뀌고 그 변화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옛날의 경험이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과거 성과는 미래의 성과를 담보할 수 없는 것이다. 30, 40년 전의 업적을 과신하며 미래를 장담하는 것은 허풍에 불과하며, 무지의 소치다.

전국시대 세객과 책사들의 변설과 책략을 기록한 전국책(戰國策)의 명문장 가운데 이런 게 있다. 기기로열노마(騏驥老劣駑馬). 천리마도 늙으면 노마만도 못하다는 말로,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늙으면 평범한 사람에게도 못 미친다는 뜻이다. 소진이 제나라의 민왕(閔王)에게 한 말이다.

78세의 김종인 전 대표가 이 글귀를 새긴다면 적어도 꼰대 소리는 듣지 않을 것이다.